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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pr 16. 2024

세상의 도움을 받는 방법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번외편

우리가 살면서 나라의 도움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일제강점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을 잊고 살면 안 되겠지만 국가는 공기와 같아서, 만약 내 나라가 없다면 엄청난 서러움에 시달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내 나라가 있는 동안 그 존재를 느끼며 고마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의식이 필요하다. 유럽의 많은 복지국가들은 많은 세금을 걷지만 대신 국민들에게 그만큼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가의 존재를 체감시켜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떨까.




나는 2007년 군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고 건강보험료를 내었다. 4대 보험료를 처음 납부하게 된 셈인데 처음에는 4대 보험료를 얼마나 내는지 전혀 몰랐다. 월급쟁이 생활만 이어 온 탓에, 어차피 4대 보험료가 공제된 급여만 입금되었던 까닭이다. 그러다가 2012년 첫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복학하면서 처음으로 집으로 건강보험료 고지서가 날라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액이었다. 아니, 나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심지어 아픈 데도 없는데 이렇게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는 게 말이 돼? 심지어 나는 학생인데. 다행히(?)도 나는 동생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을 수 있었고, 이후 재취업하면서 다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4대 보험료에도 조금씩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건강보험료를 꽤 낸다. 물론 수백씩 내는 친구도 있다고 하는데 그와 비교하면 장난이지만, 평소에 내가 병원 다니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은 늘 손해다. 국가의 공공부조란 그런 것이다. 지금은 내가 손해인 것 같지만 언젠가 나이가 들고, 또 크게 아플 일이 있으면 혜택을 보는 날도 있겠지. (없으면 더 좋겠지만)




내 글은 늘 장황한 편이지만 이렇게 긴 서두를 꺼낸 까닭은 따로 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이혼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리고 또 지금도 받고 있다. 내가 유럽에 살아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생각엔 우리나라도 유럽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복지서비스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걸 항상 수혜자가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내 경우엔 내가 그런 서비스를 찾는 쪽에 부지런한 편이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나도 모르고 있는 서비스도 있겠지만. 어렵고 힘들 땐, 세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도움도. 한 번은 적지 않게 내는 건강보험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잠깐 있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받고 있는 서비스가 건강보험료에서 지불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국가로부터 적지 않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상담의 경우부터 살펴본다. 내가 아는 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대략 최소 세 군데 기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새해가 되면서 바로 자치구 가족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방자치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자치구마다 사정은 다른 것 같다. 그때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기본 6회 상담까지만 제공해 주었다. 나는 추가 상담을 요청해서 4회를 더 받아서 모두 10회를 채울 수 있었는데, 작년에 아내와 같이 받았던 부부상담은 이웃한 구의 가족센터를 이용했는데 그곳은 10회가 기본인 듯했다. 또 놀라웠던 건 처음에 상담을 요청했던 건 작년이었는데 작년 예산은 다 소진되었다고 올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1월 2일에 첫 상담을 받았던 것이 기억 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는데, 10주도 넘는 상담도 다 끝났구나. 새삼 참 시간이 빠르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가족센터 상담이 끝나가면서 다음 상담받을 곳을 준비해야 했다. 가족센터도 물론이지만 대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상담을 받는 곳은 대기기간이 엄청나다. 돌이켜 보면 재작년에 아내와 부부상담을 신청했었는데 대기하는 몇 달 사이에 관계가 좋아져서 받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나라의 의도인가.)  나는 이런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가족센터 상담이 끝나기 3주일쯤 전부터 미리 다음 상담을 알아보았다.


지금 나는 근로복지공단의 지원을 통해 이어서 상담을 받고 있다. 좋소기업(좋은 소기업이라는 뜻입니다. 결코 욕이 아닙니다...)을 다니는 덕분이다. 재직 근로자 300인 이하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1년에 7회까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또 신기한 게 기금의 성격 때문인지 2월 마지막주부터 상담을 신청할 수 있었다. 나야 어차피 3월 중순까지는 가족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상담사분께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요일에 상담을 받으려면 두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경우 상담사분을 지정해 주는 대로 하면 시간과 요일은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가 내게 이야기해 준 자격 요건이 있었기 때문에(아무래도 요즘 상담쪽 자격증이 너무 넘쳐나다 보니) 상담사분은 지정했고 시간과 요일은 내가 양보하는 쪽을 택했다. 상담소가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갈 때마다 연차를 소진해 가며 다녀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상담을 신청하기 전에는 원래 심리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려 했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미리 전화를 한다고 했었는데, 3주 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 사이에 사람이 말라 죽을 듯) 다행히도 나는 이걸 대비해서 근로복지공단 상담이라는 후보지를 남겨 둔 상황이었지만, 만약 이곳의 상담만 기다리고 있다면 그걸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게 힘들 듯하다. 심리지원센터에서는 심리검사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고 했고, 전화하고 3주쯤 뒤에 가서 심리검사를 받았고 이후로 나는 계속 대기 중이다. 평일 낮 시간 같으면 빠르면 한 달만에 연락이 오기도 한다는데 심리지원센터는 서울에 있는 곳이 몇 곳 없어서 평일 낮 시간은 택할 수가 없었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갈 수도 있다고 시간을 체크해 두기도 했지만 최소 두 달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근로복지공단 상담이 끝날 때쯤 심리지원센터 상담을 이어서 시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내가 대기 몇 번인지도 알 수 없고, 그저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그 외에도 나는 중간에 자치구 보건소의 자살예방센터에서도 상담을 받았다. 이곳은 상담 전문가 분이 상담을 해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힘들 때에는 누군가 귀 기울여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처음에 너무 힘들 때 친구나 선후배를 부여 잡고 끝없이 하소연할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많은 인연들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지만 힘들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에 비해 보건소 자살예방센터 상담사 님은 아무래도 그 일이 직업이다 보니 친구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던 듯하다. 최대 4회기까지 받을 수 있고, 이후에도 필요하면 더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어느 날은 정말 공황장애처럼 상태가 안 좋아져서 긴급 상담을 요청하여 받았던 적도 있다.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도움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우리가 낸 세금 혹은 건강보험료 등으로 운영이 된다. 그래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바람에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상담사 선생님이 계속 바뀌신단 거다. 내 경우에는 보건소에서 상담하시던 분이 있었고, 가족센터에서 상담해 주시던 분이 계셨으며, 지금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또 다른 분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매번 그때마다 새로 라포(rapport)를 형성해야 하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리 합리적인 과정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자비를 부담하고 한 사람에게 계속 상담받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료 상담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자비를 내야 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상담사 분은 만나지 못하기도 했고, 또 솔직히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로복지공단 상담이 끝나고 심리지원센터 상담을 시작하면 또 새로운 분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무료로 제공받는 서비스인 만큼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 외에 나는 서비스를 받아 보진 못했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 같은 곳도 있다. 보건소도 마찬가지였는데 평일 일과시간에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정신건강복지센터 또한 같다. 그래서 그곳은 따로 이용하지 못했다.




전국 모든 지역이 똑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의 경우에는 1년에 3회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까지도 지원받을 수 있다. 대신 최근 1년 사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는 조건이 붙는다. 나는 올해에는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덕분에 작년에는 힘들 때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면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떤 곳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 또 대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병원에 대한 편견과 약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그 편견과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진료비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같은 진료과 전문의인 친구에게 동네 병원 리스트를 보내주고 추천을 받았었는데, 작년에는 친구도 마땅히 잘 아는 곳이 없는지 추천을 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몇몇 곳을 전화해서 진료시간을 확인하고 예약했다. 진료시간이 10분에서 15분 정도로 엄청 짧은 곳도 있는 반면,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은 길게는 한 40분까지도 상담을 해 가시면서 진료를 해 주신다. 나는 시간을 할애받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전화했던 병원 중에서 30분 이상 상담이 가능하다고 한 곳으로 선정해 예약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약도 잘 안 들었고, 선생님과 잘 맞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점점 의사 선생님과 라포가 형성되어 가고 있기도 하고, 또 40분까지도 상담을 해 주신다는 말에 다른 분께서 좋은 병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그럼에도 예전 집 근처까지 가서 그 병원을 다니고 있다.


1년에 3회까지 무료인 것은 연 단위로 나뉘기 때문에 작년 12월 30일까지도 병원에 갔던 게 생각이 난다. 그리고 올해에는 작년에 진료받은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하고 순전히 사비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재작년에 실비보험에 가입을 해 두었던 것이 있어서, 아마도 올 연말까지는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때 병원비를 청구할 계획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있으면 5년까지 실비보험 가입이 안 된다던데, 나도 3년 뒤에는 실비보험 갱신이 안 되려나. 그럼 한 몇 년은 정말 아프지 않고 조심해야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상담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사람이 이렇게 화학약품의 노예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이 마음의 안정에 미치는 효과는 엄청 나다. 나는 그래서 어디를 가든 미리 약부터 챙긴다. 지금 내가 약을 먹지 않았을 때의 불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다행히 가장 많이 먹었을 때보다는 많이 줄었고, 앞으로는 약을 더 줄일 예정이다. (물론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야겠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나와 같은 상처를 약을 먹지 않고 이겨 내는 사람도 많다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나약한 사람인 것을. 그래도 그나마 약을 먹으면서라도 버텨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도 잘은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히 유럽의 선진국들과 비교해 우리나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당장 상담만 해도 그렇다. 기관마다 제공해 주는 횟수나 조건이 다르고 또 고용하고 있는 사람도 다르기에 나는 세 군데 기관에서 세 명의 상담사를 만나야 한다. 상담의 효과를 크게 반감시키는 조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서비스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마찬가지다. 세 번까지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나처럼 심각한(?) 경우에는 택도 없이 부족하다고 느끼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가장 아쉬운 것은 이 모든 걸 해당하는 사람이 직접 부지런히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원스톱서비스센터 같은 서비스는 아직 난 만나보지 못했다. 보건소 자살예방센터에서 심리지원센터를 연결해 줬지만 그것 또한 소개였다. 바로 상담이 연계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한계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는 전혀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혼'이라는 키워드로 브런치에 접근해 주시는 분이 대다수이게 되었다. 최근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생각한 것이 그 문제이기도 하고, 이것이 삶의 워낙 큰 문제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맨날 나의 쓸데없는 푸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뭔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다른 지역에서 살아본 것이 아니라서 아마도 서울과 수도권에 제한되는 사례일 수도 있을텐데, 부디 이 글이 같은 처지에 처해 있는 막막한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다른 좋은 서비스가 있다면 저에게도 알려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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