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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pr 05. 2024

당연히 제 탓만은 아닐테죠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21

후회는 끝이 없지만 시간이 좀 더 넉넉했다면 하는 생각은 항상 지울 수가 없다. 아내가 이혼 결심을 하고 나서 별거에 들어서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석 달 정도. 당사자에겐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고, 아내는 그 시간 동안 충분히 힘들었다고 했지만 결혼이라는 결정이 평생을 왔다 갔다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때, 그리 긴 시간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 1월에 통영에 내려가는 길에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는 형을 만났다. 그때 형에게 달이면 충분히 시간 아니냐고 내가 지금 넘게 버티고 있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 나는데, 형은 그래도 여섯 정도의 시간은 두고 봐야 떨어져서 냉정하게 생각할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내가 변한 것처럼 확실히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변화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반에 부부상담을 할 때만 해도 아내는 뿌리 깊이 박힌 이혼 결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모든 문제는 나 때문인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마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이어 오면서 다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아내의 탓으로 돌렸던 반작용이리라.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기에 분명히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을 거고 아내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긴 했겠지만, 바싹 엎드려서 모든 것을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용서를 구해야 했던 내 상황에서 '이런 이런 것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것은 너도 잘못했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고, 나는 스스로에게도 상당히 이상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특히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이상화하며 좋았던 시간을 떠올리게 되다 보니 나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것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심해져 갔다. 그렇게 자존감이 무너졌다는 것이 지금 나의 가장 힘든 점 가운데 하나다.




이삿날 아내를 떠나보내고 찾아간 병원에서 원장 선생님께 가장 위로를 받았던 말 가운데 하나도 아마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원장님뿐만 아니라 심리상담을 하는 분들께서도 항상 내게 그 부분을 강조했었다. 결코 honest 씨만의 탓이 아니라고. 다만 이삿날 원장님께서는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조금 답답하셨는지 좀 더 강하게 말씀하셨던 듯하다. 상대가 바람을 피우고, 사고를 치고 그렇게 해서 이혼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모두 그 사람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상대가 그렇게 된 걸까요. 당연히 아닐테지. 아무런 잘못 없이도 이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내가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건 아니지만. 원장님과 심리상담 선생님들 모두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자책과 회한, 후회를 극복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계신다.


그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내와 나는 극단적인(?) 상태에서 헤어진 것이 아니다 보니 부부상담이 끝나고 나서도 종종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가끔 밥도 같이 먹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도 상황을 점점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막판에 나는 오열하면서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이야기한 것 너무 미안하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도리어 그 상황에서 왜 나는 자신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 이혼문제가 불거졌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내도 우리가 맞는 부분,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혼자서 많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결국 우리 부부는 별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머지않은 시일 내에 우리는 아예 남남이 될 것이다. 당연히 나만의 잘못도, 아내만의 잘못도 아니다. 이혼이 무슨 교통사고도 아니고 5:5, 6:4, 7:3 이렇게 서로의 잘못을 나눌 순 없을테고, 나는 여전히 내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내가 잘못한 까닭에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 나도 알고 있다. 그렇게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는 만큼, 또 객관적으로 보게 되기도 하는 거겠지.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그것 또한 괴롭다. 지금 와서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서도 꼭 내가 아내의 탓을 하는 것 같고, 내가 살자고 아내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어찌 보면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하고 회한에 빠져 있을 때는 아내를 또 신격화해 버리는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그런 점에서 상대를 대하는 마음은 편했던 것 같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엔 균형을 찾게 되는 것이려나.


서로가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사랑했다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텐데. 아니 아내의 이해가 조금 부족하고 덜 양보하고 덜 사랑했다면 내가 그걸 채워줬다면 그래도 우리는 이런 결말은 피할 수 있었을텐데.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오늘도 이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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