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이 브런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어느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까.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 변명만 늘어놓게 마련이다. 많은 브런치 독자들이 내게 응원과 격려의 글을 남겨 주었고, 또 성원해 주었지만 냉정하게 나는 그걸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그럴 만한 위인이 못 된다. 그동안에는 이혼하는 과정에서 나의 입장만 주구장창 변명해 왔다면 이번엔 어찌 보면 아내의 입장에서 한 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려고 한다. 나는 이혼하면서 아내를 그렇게 배려한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가식덩어리 같으니라구.
솔직하게 돌아보면 결국 나는 항상 내가 먼저였다. 아내를 엄청 사랑해서 모든 걸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아니었다. 이혼과정부터 되돌아보자. 실은 알고 있었다. 아내가 나와 같이 상담을 받고 교회에 나가는 걸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아내는 하루라도 빨리 갈라서고 싶어 했다. 그나마 내가 지금 멘탈을 부여잡고 있을 수 있는 건 나름대로 해 볼 만큼 해 보았다는 노력, 아니 자기합리화 덕분이지 않을까. 결국 아내가 그렇게 끔찍해 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는 내가 먼저였다. 정말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우리집의 계약기간은 원래 2월 13일까지였고, 그 전후로 새로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면 되었다. 나는 시간을 끌고 싶었고, 3월 말에 들어온다는 세입자가 있었지만 아내는 너무 늦다며 반대의 뜻을 표했다.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 까닭에 2월 20일쯤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먼저 구해졌다. 그때 얼마나 많이 낙심했던가. 두 달 정도를 앞두고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젠 정말 아예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2월 20일쯤 들어오겠다던 세입자가 입주 시점을 2주 정도 당겨 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마 아내가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자고 했을 것이다.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지만. 결국 2월에 들어오겠다며 2주를 당겨 달라고 한 집과의 계약은 취소되었고, 나는 부동산에 꼼수를 알려 주었다. 그냥 매물을 거두고 3월 말에 입주하겠다는 사람으로 계약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시간을 벌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가끔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은 난다. 처음엔 하루에도 몇 팀씩 집을 보러 왔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집을 보러 왔다는 이야기를 내가 전혀 하지 않은 까닭이다. 적당히 잘 눙쳐서 해결하고는 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노력할, 후회를 남기지 않을, 아내와의 마지막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차라리 빨리 헤어지고 회복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그러나 나는 다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아내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나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가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 이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이기에 어느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정확하게 답은 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아내의 생일쯤에 통영에 3박 4일을 다녀왔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아내가 혼자 강릉으로 여행 간다고 해서 정말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지만 그 와중에 나는 또 아내가 집을 비우는 3박 4일을 어떻게 하면 나도 나름대로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다. 나는 항상 내가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완전히 멘탈이 무너져서 아내가 강릉으로 여행을 가든 말든 폐인처럼 집에서 혼자 쓰러져 있는 건 내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면, 브런치만 보면 항상 아내를 생각하고 끔찍이 여겼던 것 같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나에게 정말 혐오가 인다.
아내와의 이혼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실은 나는 의지하는 한 형을 찾았었는데, 사실 그 형은 가장 모범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뭔가 배우고 긍정적인 에너지도 얻고, 내가 많이 깨닫고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의외로 그 형은 처음부터 내게 변호사를 찾아갈 것을 권했다. 어찌 될지 모르니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며. 마침 대학 때 기숙사에 같이 살았던 형이 이혼전문변호사로 정말 유명한 변호사다. 이번 일로 그 형과 더 가까워지고 많이 연락하기도 했지만, 원래도 가끔씩 연락하고 1년에 몇 번씩 보던 사이였기 때문에 난 법적 조언을 얻는다기보다는 하소연도 하고, 형에게 결혼과 이혼에 대한 조언도 얻을 겸 그 형과 지난 연말에 특히 더 가까이 지냈었다. 형은 매번 귀찮고 번거로웠을 내 연락을 마다않고 잘 받아 주었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아내를 믿는다. 아마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변호사를 찾아가거나 하진 않았을 것 같다. 아내는 작은 회사에서 재무, 회계, 인사, 총무 등등의 모든 행정 관련 업무를 다 맡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 회사와 연결된 변호사 정도는 아내도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변호사를 찾아가서 상담했을 것 같진 않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물론 내가 어디 가서 돈을 주고 변호사를 사거나 상담하거나 한 건 아니었고, 그 형과도 가능하면 가정을 지키는 쪽으로 늘 이야기하고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혼과정에서 내가 그 형으로부터 아무런 법률적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브런치에도 쓰지 않았나. 심지어 나는 재산분할과 관련한 합의서도 썼다. 아내가 쓰자고 한 게 아니었다. 그 형의 조언이었다.
'형,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아내가 그럼 나에게 더 실망할 것 같은데.'
'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정 그러면 내가 시켜서 쓰라고 했다고 해.'
나름대로 나는 법학사도 있고, 수임료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형에게 그런 일까지 시킬 수는 없었다. 심지어는 만날 때마다 밥도 얻어먹는 주제에. 결국 재산분할합의서는 내가 직접 작성했고, 그 형은 한 번 검토만 해 주었다. 이 와중에도 나는 변호사 형 핑계를 대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 나도 내 몫을 더 챙기고, 아니 그냥 내가 생각하는 내 몫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닐까. 결국 다 내 생각만 한 셈이다. 그 형은 초반부터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거라며 지금 정도의 조건이라면 내게 무척 좋은 조건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면서 작은 건 다 양보해도 괜찮다고. 다른 사람들의 이혼 사연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좋은 조건에 헤어진 것 같기는 하다. 그만큼 아내가 절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아내의 이삿짐을 챙겨 주고, 이사가는 날 점심값 좀 보태고 이런 작은 일과 작은 돈에 내가 엄청 마음을 쓰는 사람인 척 가식을 떨고 지냈다. 아내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알면 얼마나 내가 혐오스러울까.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 구하는 문제 같은 건 항상 내가 알아서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우리가 이혼할 때는 내가 집을 쉴 때이기도 했으니까 집이 나가고 들어오는 문제는 모두 내게 일임되어 있었다. 나는 3월 말에 집이 나갈 거라는 걸 12월 말부터 알고 있었다. 일찍 알았다고 해서 특별히 뭐 하는 건 없었지만. 2월 초쯤 되어 우리가 헤어지는 게 확실히 결정되었을 때, 아내에게 집이 나가는 날을 이야기해 주기 전에 나는 내가 회사를 쉬는 동안 먼저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솔직히 말할까.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한 1월 말쯤부터는 가끔씩 부동산을 보면서 어디로 이사 가면 좋을지, 어디로 이사 가야 할지 살펴보고 있었다. 직접 연락하고 찾아간 건 아니었지만. 아내에게 집을 알아보라고 했을 때, 그때 나는 이미 내가 살 지금 집에 대한 결심을 50% 정도는 굳힌 상태였다. 아내는 그제서야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 계약도 내가 먼저 했다. 아내는 가계약을 하는 날이었는데 나도 같은 날 가계약을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네가 집을 구하게 되면 나도 그땐 어쩔 수 없이 집을 구할께'라고 했던가. 심지어 본계약은 내가 먼저 했다. 기가 막힌다. 나는 늘 내가 살 궁리는 찾아놓고, 아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었다. 과연 아내라고 다 몰랐을까. 몰랐을 수도 있다. 아내는 둔한 사람이고, 우리는 어차피 한 집에서도 남남처럼 지냈으니까. 그저 그런 나의 가식적인 모습에 치가 떨릴 뿐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내에게는 상의도 하지 않고 도움을 구하려고 아내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찾아갔던 일하며, 실은 처남에게 찾아갔을 때도 아내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처남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아내가 더 화를 낼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아내와의 이야기에서 처남도 대충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처남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찾아갔을 것이다. 그냥 아내에게 혼나지 않을 핑곗거리만 만들 수 있었을 뿐이다. 처남이 알았든 몰랐든 난 찾아갈 생각이었고, 아내가 가장 의지하는 예전 영국 교회의 전도사님에게도 그분이 아시든 모르시든 찾아가서 매달려 볼 생각이었다. 아내의 입장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채. 그뿐인가. 완곡하게 돌려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아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었다. 아내가 나중에 나에게 기도문을 받아보고 나서는 너무 완곡하게 적혀져 있어 크게 화 내진 않았지만 이 또한 어찌 보면 아내를 얼마나 곤란하게 만들 행동인가. 그런데 나는 내 생각만 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생각이 난다. 어차피 이혼하게 될 거라면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이혼당하느니 이거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런 내 마음속에 아내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가끔 축하를 받는다. 아내와 이혼했음에도 가족수당을 수령한다면 부정수급이 되기에 이혼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족수당을 받지 않으려고 몇 달 전부터 아내가 가족수당을 주는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다고 밑밥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내가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직하게 된 걸 축하한다고 하고 있다. 내가 이 정도로 치밀한 놈이었다. 물론 회사에는 너무나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상당히 오래 짱구를 굴려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이 와중에도 내 체면 상하지 않고 이렇게 살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게. 덕분에 회사에다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내도 회사에는 알리지 않고 있지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것에는 그 점도 한몫했다. 전혀 나와 같이 살 생각도 없고, 같이 사는 사람도 아니지만 겉으로 남들에게는 아내와 같이 사는 척을 해야 했기에. 너무 생뚱맞은 곳으로는 이사를 갈 수 없었다. 참, 내가 이러고 산다.
너무 부끄러워서 더 이상은 이야기할 수도 없다. 이런 사람밖에 안 되었으니까 부인이 이혼을 마음먹었지. 아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 선한 척 다 하면서도 이렇게 항상 내가 먼저였던 자신이 정말 혐오스럽고 부끄럽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를 정말 사랑해서 모든 걸 다 주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던데. 난 처음부터 그럴 수 있는 위인은 못 되었다.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아쉽고 서운해서 못 견디겠다는 거냐. 참, 자기연민 쩐다. 정말 기가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