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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y 27. 2024

눈이 부신 날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26

이사 온 뒤로 동네 성당의 청년성가대에 들어가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화음을 맞춘다기보다는 나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쉽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었는데 어제는 모임 뒷풀이가 거의 자정까지 이어져서 오랜만에 신나는 일요일 저녁을 보냈다.


아내와 떨어져 지낸지 이번 주면 두 달이 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약도 많이 줄였다. 한때 신경안정제를 가장 많이 먹은 날은 하루에 2mg을 먹은 날이 있었고, 이렇게 가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그다음 날에는 바로 0.75mg으로 복용량을 줄였었는데 0.75mg만 먹은 날은 불안증세가 너무 심해서 도무지 어쩌질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불과 한 석 달 전인데, 요즘은 정량을 0.5mg까지 줄였다. 그렇게 오늘도 아침에 0.125, 점심에 0.125를 먹고는 점심 산책길을 나섰다.


청명. 말 그래도 눈이 부시게 청명한 날이었다. 햇볕은 밝고 바람은 시원하고 시야는 탁 트였다. 서울 시내에 흩뿌려 있던 먼지도 별로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산책길을 막 나섰다.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오늘처럼 청명했던 노동절이었다. 그날 서울 시내를 산책하는데 아내와 처음 만났던 곳, 같이 갔던 미술관 등을 지나면서 예전 생각이 나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까닭에 아내에게 연락했었다. 아내는 하루 내내 답장을 하지 않았지만.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 다음 날 아침 다시 연락했더니 자긴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그 이후로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고 참게 되었다. 지난달까지는 그래도 일주일에서 열흘이 멀다 하고 힘들 때면 아내에게 그냥 연락했었는데, 아내가 썩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아서.


그런 아내에게 한 달만에 먼저 연락이 왔다. '안녕~? 잘 지내고 있어~?'로 시작하는 긴 메시지. 아내도 내가 걱정이 되었나 싶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연락에 오랜만에 무척 반가움을 느끼며 휴대전화를 열었더니... 본론은 별거를 시작하면서 두세 달쯤 뒤에 법원에 이혼신고를 하러 가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날짜를 잡자고 연락한 거였다.


이런 날이 올 것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물론 생각보다 빠르긴 했지만. 난 분명히 아내에게 헤어지면서 7월 1일에 같이 법원에 가자고 했었는데. 그리고 그때 아내도 동의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얍삽하지만 7월 1일은 우리 회사의 창립기념일이다. 7월 1일에 가면 그래도 휴가를 하루 아낄 수 있어서 7월 1일에 가자고 했던 것으로 정확하게 기억한다. 아내가 달력을 꼼꼼하게 보지 않는 게 신경 쓰이긴 했었지만. 아내는 아마 내가 지정해서 이야기한 그 날짜보다는 내가 두세 달의 말미를 달라고 했던 것에 좀 더 방점을 찍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두세 달에서 최대한 시간을 당겨서 생각해서 두 달이 지나면 갈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던 것 아닐까.


아내 회사는 휴일이 없는 금요일마다 재택근무를 한다. 다행히 아내도 당장 가자는 건 아니었고 내 사정이 있다면 몇 주는 미루어 줄 수 있다고 해서 결국 6월 21일에 같이 법원에 가기로 했다. 이게 내가 미룰 수 있는 최대한이다. 눈이 부시게 화창한 날에 아내에게 확실한 이별 통보를 듣고 나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작게 투정도 부렸다. 이런 얘기할 거였으면 진작에 운이라도 띄우지 그랬니. 약이라도 좀 든든히 먹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아내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아내도 나름대로 내가 한 달씩 연락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아내에게 그동안 많이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확히 반년쯤 된 것 같다. 처음 아내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던 날도 혼자 산책을 하던 중이었고 의외로 아내가 담담하게 이혼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결혼생활을 추억하는 모습에서 그날도 산책하며 혼자 많이 울었었는데. 그때는 우리 모두 갈등을 극복하려고 했다면 할 수 있었던 시점이었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을 받으면서 이야기했었는데 이젠 아내와 나 사이에 골이 너무 깊어져서 혹시 아내가 후회하여 마음을 돌린다고 해도 우리 관계를 다시 붙이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내심 갑자기 아내가 마음을 바꾸어 이혼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럼 난 어떻게 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고민도 잠시나마 했던 것 같다.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아내의 마음은 이토록 단단한데.


다음 주면 아내와 만난지 정확히 8년이 되고, 우리가 결혼한지 정확히 7년이 되는 날을 맞이한다. 우리는 서양 커플들처럼 헤어지고 있으니까, 그동안 아내에게 결혼기념일에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할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아무리 서양 커플 같다고 해도 지나치게 엉뚱한 생각이려나. 결과적으로 아내와 이혼신고를 제출하러 가는 날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굳이 결혼기념일까지 챙기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느 친구가 이야기하듯이 정말 하기 싫은 일이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동안 내심 차라리 빨리 해 버리고 회복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힘들었던 기억, 좋지 않았던 기억들도 분명히 다 차고 넘칠텐데, 막상 요즘에는 늘 아내로부터 받은 좋은 기억, 행복했던 시간, 아름다웠던 추억들만 떠올라서 정말 힘들다. 대학교 4학년 때였나.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한 서운한 기억, 부정적인 기억 위주로 떠올린다고 하셔서 내가 도리어 고마운 기억, 감사한 마음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 선생님께서 그래서 저 학생은 늘 웃고 있다고 말씀하셨던 순간이 떠오른다. 단기적으로는 아내에게 안 좋은 기억도 많지만 나는 장기 기억은 늘 좋은 기억을 간직하는 성향의 사람인가 보다.


결국 장기적으로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갈 거라면 오늘의 서운한 기억들은 빨리 지워 버려야겠다. 그 서운한 기억으로 인해, 좋은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고 그대로일텐데, 결국 나만 좀 먹게 될 수 있으니.


눈이 부시게, 아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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