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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n 21. 2024

아내와의 재회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28

아내와 별거를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났다. 천천히 나아지고 있었다. 우선 약의 복용량이 많이 줄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1/4 정도까지. 물론 지금의 4배를 먹었던 날은 유난히 힘들었던 단 하루에 불과하긴 하지만. 수십 차례 받았던 상담. 마지막 상담을 그저께 시작했는데 이제는 상담을 받으면서 '이걸 꼭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회사 일에 집중을 하고, 사람들을 예전보다 많이 만나다 보니 확실히 처음보단 좋아졌다고 느낀다. 두 번째 상담을 해 주셨던 상담사분과는 3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상담을 진행했는데, 마지막 상담 때도 내가 눈물을 보였던 것 같지만 그분께서도 처음보다 정말 많이 안정을 찾으셨다고 했었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그 첫 상담은 별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내와 법원에 이혼서류를 접수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한 달쯤 전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마음이 많이 아리긴 했지만 다시 또 한 달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좋아졌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제 사무실에서 이혼서류 접수에 필요한 증명서들을 뽑는데 심장이 너무 아팠다. 오전까지만 해도 희희낙락하면서 괜찮았던 까닭에 점심 때 약도 걸렀었는데, 어쩌면 약을 걸렀기 때문에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게 약을 찾아 먹었고, 저녁에 운동을 가서는 더 힘들게 몸을 혹사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자기 전에는 약 봉투를 여럿 챙겼다. 오늘 내가 얼마나 힘들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평소보다 두 배의 약을 먹기로 하고, 아내를 만나러 가기 전에는 또 바로 약을 먹고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동안 아내가 자신보다 내가 꾸물거리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 미리 가서 기다려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법원에 가는 날인데' 그리고 아내와 석 달만에 재회하게 되는 셈이었다. 아침부터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어떤 옷을 입을까 생각했다. 정말 더웠지만 자켓도 입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자켓을 입고 나가려고 보니까 너무 더웠다. 결국 자켓을 다시 벗어놓고 출발하게 되면서 시간이 조금 빠듯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식당에 10분 전에 도착했지만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걸음을 조금 재촉해야 했다. 그렇구나.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도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또 하나 깜빡했던 게 있다. 자켓 안에 약을 넉넉하게 챙겨 놓았었는데 자켓을 벗는 바람에 결국 약을 정량만 챙긴 셈이 되었다. 이때는 몰랐다.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역시나 아내는 일찍 도착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아내가 도착하려면 그래도 한 5분은 더 걸리겠지? 싶었는데 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아내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내를 맞았다. '담담해야 한다', '담담해야지' 이 생각을 백 번도 넘게 했는데, 자리에 앉은 아내의 첫마디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너 표정도 많이 안 좋아'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그 말이었는데 그 말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갑자기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런 제길. 최대한 담담하게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내와는 석 달만에 만난 것이었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 8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낸 무게감이 바로 이런 것인가. 어제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난 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묻고, 조카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생각보다 식사를 금방 낸 까닭에 바로 법원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좀 일렀다. 아내에게 차나 한 잔 하고 가자고 했다. 차를 마시는데 아내에게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는 게 느껴졌다. 이혼도 대기표 뽑듯이 접수를 해야 한다는 인터넷의 짤이 생각났고, 우리도 조금 일찍 법원으로 갔다. 생각보다 접수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리는 대기 3번이었다. 그 정도 순서야 뭐 금방 오겠지.


기다리면서 서류를 정리하고 도장을 찍었다. 두 번째 팀이 접수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른 창구에서 우리를 불렀다. 서류를 먼저 봐 주겠다면서. 아마 무엇이 틀리거나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야 뭐 빠진 것 하나없이 완벽하게 준비했으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도 도장 찍는 곳 한 곳을 빠뜨렸다. 알려 주는 대로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고 나서 바로 창구를 옮겨 접수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숙려기간 뒤의 기일을 받았다. 생각보다 숙려기간이 길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은 7월 24일과 8월 7일. 아내에게 '8월 7일은 너무 늦지?' 묻고 7월 24일에 오는 것으로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법원에서 나누어 준 협의이혼서류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7월 24일에는 법정에서 만나야 한다. 2시 30분까지 오라고 되어 있길래 아내에게 그날은 1시에 같이 점심을 먹고 오자고 했다. 아내도 좋다고 답했다. 법원 민원관 정문 바로 앞으로 아내의 차가 보였다. 한 2년 정도는 자주 보았던 차. 나도 꽤 많은 거리를 같이 탔던 차. 그런데 이제는 같이 타자고 할 수 없겠지. 그렇게 아내와 헤어졌다.




나는 괜찮아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힘들게 힘들게 아내와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최대한 담담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아내와 헤어지자마자 나는 무너졌다. 지난 석 달간 괜찮은 줄 알았던 힘듦이 한 번에 몰려 왔다. 눈물이 봇물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렇구나. 나는 괜찮아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그냥 진통제를 먹은 것처럼 그 통증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구나. 늘 그랬지만 이 날 아내를 보고 나니 더 그랬다. 아내와의 좋았던 추억, 행복했던 시간 그런 것들만 계속해서 떠올랐다. 분명히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던 것이기도 할 거고. 아내에게 상처받은 것도 있었을 거다. 그래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내밀었던 것일 거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외롭고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점점 잊혀져 간다. 그리고 아내와의 좋았던, 아름다웠던 시간과 추억만 자꾸 내 머릿속에는 남아 있다.


아내는 10월에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아마 별일이 없었으면 나도 같이 가게 되었겠지. 오래전부터 스페인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아내는 적금을 들고 있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시간이 벌써 올해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아내와 같이 갔던 신혼여행, 불과 9개월 전에 장인어른 칠순을 기념해서 떠났던 처가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1년. 작 1년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이제 아내와 나는 남남이다. 처조카 이야기를 정답게 하는 내게 아내는 언제까지 처조카를 떠올릴 거냐는 염려를 내뱉었다. 그렇지. 이젠 남이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다정함과 따뜻함이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다가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다정함과 따뜻함은 결혼 이후에도 사람들로부터 깊이 사랑받는 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 좋기만 한 면이 있겠는가. 나는 나의 다정함과 따뜻함을 아내에게도 기대했고, 아내는 신혼 초반엔 거기에 부응해 주었지만 이후엔 그렇지 못했다. 다정하지 않고 따뜻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매번 서운함과 실망감이 쌓여 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따뜻함과 다정함을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래서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나를 부정해야 하기에.


아내에게 나는 예전의 남편처럼 아내의 가족들에 대해서, 아내의 생활에 대해서, 아내의 일상에 대해서, 회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내는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이니까. 원만하게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뉴스를 얼마나 많이 장악하고 있나.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어쩌면 아내도 나와 이혼을 결심하고 불안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내가 내게 그 정도로 신뢰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기도 하고.




지난주에는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반년 이상 관찰하셨으니 저의 자존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분명히 나는 문제가 많다는 답변이 나올 것이라 보았고, 어떻게 해야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지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의외로 선생님은 자존감은 의학용어가 아니라서 자신이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대신 자책과 자기비하가 매우 심한데, 그래도 자기효능감은 정상인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브런치에도 여러 차례 썼고, 많은 분들로부터, 그리고 브런치 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렇다. 이혼이 나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당장 우리가 이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감정이 식어서일 텐데 아내가 감정이 식지 않도록 내가 노력했어야 했던 건 맞지만 노력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살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아닌가. 그래도 나는 후회가 된다. 신혼 초에 아내와 나의 관계는 정말 좋았다. 왜 그 좋았던 관계를 지키지 못했을까. 그리고 아내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와 결혼하면서 '이혼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아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아내에게 우리에게 '이혼'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은 나였다. 그런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 밉고 후회되어 가슴을 치며 통탄하게 된다.


치료를 받으며, 그리고 상담을 받으며, 또한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하고, 나 스스로 홀로 설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고 정상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 아내는 아내일 뿐,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나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결혼해 주었다. 결혼식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내가 'honset씨, 앞으로는 내가 honset씨를 행복하게 해 줄 게요' 하면서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랬던 아내는 7년만에 결국 '포기'를 선언하고 나를 떠났다.


나도 어두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것일까. 사랑받기 위해서는 꼭 밝고 명랑해져야 할까. 나는 원래 어두웠던 것보다 이혼을 겪으면서 더 많이 어두워진 것 같은데 그럼 나는 영영 이보다 더한 어둠 속에서 살아야만 한단 말인가.


아내는 이혼 전에 마지막 만찬에서 이혼하게 되면 '밝았던 예전의 자신을 찾고 싶다'고 내게 이야기했었다. 오늘 내가 한 말도 넘는 눈물을 흘렸던 건 아내의 밝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너무 미웠다. 그렇구나. 아내는 이렇게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지. 그런 사람에게서 웃음과 밝음과 명랑함을 빼앗아 갔던 건 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만큼 밝아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행복해진 모습을 본 건 너무나도 다행스럽고 좋았지만, 지난 긴 시간 동안 내가 아내를 불행하게 만들었단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의사 선생님. 저는 자책하고 자기비하를 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늘 말씀드렸듯 저라는 사람이 별로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겁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아내와는 아직 한 번 더 만날 기회가 있다. 뭐, 그 이후로도 만나려면 못 만날 것도 없겠지. 우리가 원수처럼 헤어지는 것은 아니니. 의사 선생님께서 매번 한 번의 고비가 남아 있다고 하셨었는데, 솔직히 내심 서류 접수하는 게 뭐가 그렇게 큰 고비가 될까 싶었다. 그런데 오늘을 경험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아내와 법적으로 남남이 되는 건 엄청난 일이구나. 과연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한 고비를 내가 극복해 낼 수 있을까. 다가오는 7월 24일을 내가 버텨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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