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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n 25. 2024

정답을 안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0

아내와 재회한 후유증인 건지, 밝고 명랑한 아내를 보았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인 건지, 이혼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에 느껴지는 힘듦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닷새가 지나도 전혀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 예전에 정말 힘들 때는 상담하는 시간,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과 면담하는 시간이 정말 기다려졌었다.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금요일에 아내를 만나고 나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토요일에는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의외로 아내는 바로바로 답장을 해 주었고. 아내가 했던 말 중에 그런 말이 있었다.


"과거는 잊고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자" 


의사선생님이나 상담사 분이나 친구들에게 들었을 때보다 아내의 말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았다. 아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 걸까. 무엇 하나 틀린 것 없는 정말 맞는 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오늘에 집중해야 하고,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아내가 밝고 명랑해 보였던 건 아마 지나간 과거보다 오늘과 내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리라.




수많은 마음수양 서적도 읽었고, 템플스테이도 몇 번 다녀왔으며, 매주 성당 미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아마 부처님께서 하셨던 말씀인 것 같은데 처음 오는 화살은 맞을 수밖에 없지만, 사람이 힘든 건 그냥 그 화살을 한 번 맞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자꾸 화살을 쏜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제는 나도 점점 그걸 깨달아 가고 있다. 나는 왜 힘든가. 8년을 함께했던 아내와 헤어진다고 하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지. 그러나 그건 현실이고 이미 아내와 석 달이나 떨어져서 살았다. 문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자꾸 화살을 쏜다는 데 있다.


합리화 같지만 그나마 지난 몇 달 동안 많이 나아졌는데 연상-기억-후회-자책의 연속이다. 이젠 정말 그만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할 만큼, 수도 없이 생각을 곱씹고 반복한 것 같은데 그렇게 뭔가 하나의 생각이 끝났는가 하면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그럴 때 사찰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 이 생각이 떠오르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냥 그 생각을 흘려버리면 되는데 문제는 나는 그 생각에 계속 집착해서 자꾸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는 데 있다.


주말에는 부모님댁에 있는데 뜬금없이 (도대체 나도 그 이유를 아예 모르겠다.) 아내와 제주도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와 나는 제주도를 아마 열 번 내외 정도는 같이 간 것 같고, 제주도에서 같이 보낸 시간을 더하면 30박 40일 정도는 될 것이다. 제주도에서 아내와 보냈던 시간이 모두 행복하고 즐거웠던 건 아니다. 오히려 아내와 나는 성향이 잘 맞지 않아서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즐겁지 못했던 편이었다. 아마도 이 브런치에도 기록을 남겼던 것 같은데 오죽하면 아내가 '하루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치?' 라고 이야기했겠는가. 그런데도 한 번 아내와 같이 제주도로 떠났던 기억이 떠오르자 그 생각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여러 가지 연상작용이 떠올랐고, 여기에서 또 나의 가장 큰 장점이 발휘되었다. 이왕이면 상대방에 대해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만 남기기.


분명 당시에 나는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도 적지 않았을텐데 갑자기 아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며 추억을 쌓았던 즐거운 추억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약을 먹어야 할 때인가. 그렇게 주말 이틀을 그럴 때마다 약을 먹으면서 겨우 버텼다.




확실히 어제부터는 회사에 다시 나오기 시작하니 조금 낫다. 결재받아야 할 문서도 많고, 마감해야 할 일도 산적해 있다. 아내와의 기억과 나의 잘못에만 집중하지 않으니 훨씬 낫다. 특히 어제 저녁엔 모임이 있었고, 오늘 저녁엔 또 운동을 간다. 좋은 일정이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여야 덜 힘들다.


그러나 이건 온전한 해법이 아니다. 사실 온전한 해법은 아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냥 흘려보내고,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는가.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할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의사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명확한 처방을 내려주지 않으셨던가. 자책이 너무 심하시고, 자기비하도 너무 심하시다고. 후회야 어쩔 수 없지만 지나치게 나를 자책할 건 없다. 아내도 마침 나에게 이야기했다. "미안한거야 나도 너한테 미안한거 많지" 지금 난 아내에 대한 모든 게 미화되어 있고, 모든 원인을 내게 찾고 있어서 (어차피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으니까) 계속 자책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것이 객관적인 관찰 결과가 아님은 명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를 탓하자는 건 아니다.) 자기비하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배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 선배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막말로 내가 잘못했다고 쳐도 형사, 민사상의 문제가 될 법한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좀 나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일단 해법을 알았으면 한 단계 온 거라고. 자기자신에 대해 알면 그다음은 금방 따라온다고. 아니. 나는 지난 40년 동안 나를 겪으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게 있다. 저요? 정답도 알고, 해법도 압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그걸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살았다면 아마 이혼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저도 정답처럼 해답처럼 살고 싶죠. 그런데 사람 성향이 안 그런데 어쩌겠어요. 노력이요? 그렇죠. 노력이야 해야죠. 그래서 요즘 미친 듯이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아닙니까.


주말에 만난 선배는 나를 걱정하며 이야기했다. 결국 시간이 약이고 시간이 해결해 줄텐데, 내 성향을 보았을 때, 내가 계속 곱씹고 과거를 떠올리며 힘들어하면서 나 스스로가 회복의 시간을 늦출 것 같다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왜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나. (차은우처럼 생기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이런 나약하고 어리석은 나를 접하게 될 때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왜 이런 유전자를 주었느냐며 부모님을 탓하게 된다. (진짜로 부모님을 탓한다는 건 아니고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은 아는 정답처럼만 살고 싶다. 그렇게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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