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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12. 2024

몰입에 대하여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1

태업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나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은 맞다. 어차피 어떻게 일을 해도 급여는 똑같고, 아니 도리어 보상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 싶다. 물론 나는 내가 해야 할 정도의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일을 빨리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의 두  배, 세 배를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보상을 두 배, 세 배로 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회사에도 물론 좋지 않겠지만, 나도 좀 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부터는 한결 성실하게 일하는 중이다. 대단한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의 회사라도 당장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어딘가 하며 감사해 하고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지난 몇 주간은 정말 바빴다.




아내를 만나고 나서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일을 해야 했다. 대학생과 사회인이 다른 것은 그런 점이 아닐까. 사회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부여된 몫은 해야 한다. 나름대로 텀을 둔다고 두었지만 6월 말과 7월 말에 마감해야 할 일이 각각 하나씩 있었고, 그 사이에 또 6월달에는 다른 곳과 업무제휴한 일을 병행해서 처리해야 했다. 그 건으로 전라도 광주에 출장까지 다녀와야 했고.(물론 나는 출장을 매우 좋아한다.) 약을 먹고 지내면서도 꾸역꾸역 할 일은 해 나가야 했다. 다행히도 일과 사람에 너무 몰입했을 때는 아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들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광주에 가서 만난 전 회사 부장님은 막연하게 지켜보셨던 나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셨고, 또 지난주 월요일에는 오랜만에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사 분께도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 단순히 사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주를 보신 분이나 의사 선생님이나 상담사 분이나 그 외에 수많은 나의 선배, 친구, 후배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던 셈일텐데  이제는 그것이 귀에 인이 박혀 내가 알아듣게 된 거겠지. 그런 덕분에 아내를 만나고 한 며칠은 미칠듯이 힘들었지만 또 금세 많이 나아졌다. 약도 다시 조금 줄였고.




6월 말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은 서류 제출 때문이었는데 서류상으로만 6월 말로 되어 있으면 되는 까닭에 7월 초까지 그 일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미루면 안 되는 탓에 지난주에는 어떻게든 마감을 해야지 하며 정신없이 일을 하던 와중이었다. 화요일은 운동을 가는 날이라서 야근을 할 수도 없고 퇴근시간엔 그냥 퇴근을 해야 했다. 남은 일을 내일 하는 것은 뭐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막상 퇴근 준비를 하고 있자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7월 2일. 그날은 하나뿐인 처조카의 네 번째 생일이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미루고 있었을 뿐.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느라 하나뿐인 처조카의 생일임에도 '아, 나는 이렇게 천천히 회복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막상 하던 일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려고 하니 마음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그랬다. 나는 완전히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냥 일에 몰두하느라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처조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케익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불을 끄는 걸 정말 좋아했다. 내 생일에도 함께 같이 불을 끄고는 했었다. 불과 십 분 전까지도 아무 생각도 않고 일만 잘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회사에서 울컥 울음이 올라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 아내는 처조카 생일을 챙겨 주었다는 걸 알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처남까지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케익이라야 뭐 몇 푼이나 하겠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케익 쿠폰을 처남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처남에게도 정말 오랜만에 하는 연락이었다. "오늘 우리 ** 네 번째 생일이네요! 누나가 싫어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보네요. 가족들 모여서 ** 생일 잘 축하해 줬죠? **이랑 한 번 더 케익에 초 꼽고 촛불 불어요^^" 처남이 쿠폰을 거절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답장이 금방 왔다. 처남은 잊지 않고 챙겨 주어서 고맙다며, 조카 생일을 전 주가 아니라 생일이 지난 뒤인 주말에 함께 축하해 주기로 했다며 꼭 고모부가 사 준 케익이라고 이야기해 주겠다고 전했다.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장인어른, 장모님께도 이제 나는 무척 불편한 이름일텐데. 처조카의 생일을 떠올리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운동도 갈 것이고, 약도 안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바로 그런 생각은 집어던지고 약을 챙겨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헬스장에 가서는 죽기 전까지 굴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상담을 하면서 깨달았는데 의외로 내가 어느 한 가지에 몰입을 하게 되면 아내와의 일을 잊고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5월에 그렇게 휴일이 많을 때 힘들었던 것이고, 지금도 오히려 나는 주말보다 평일이 더 편하다. 회사 일을 처음처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우리 회사가 무슨 삼성전자도 아니고, 내가 하루종일 정신을 잃을 정도로 일을 해야 하는 날은 1년에 며칠 정도로 손에 꼽는다. 대개의 경우 다음과 네이버도 넉넉하게 보고, 중간에 주간지도 잠깐씩 섭렵하면서 일해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어서 그렇게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다. 싫어하는 사람을 봐야 하는 스트레스는 아마도 익숙해지지 않겠지만 그 또한 이제는 많이 면역이 되었고. 6월 말까지 끝내야 할 일은 오늘 회계 정리까지 전부 끝났고, 이제는 7월 말까지 끝내야 할 일을 진행하면 된다. 물론 그 뒤에도 일은 계속 있지만 당장 부닥친 일은 끝난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겹쳐져 있는 덕분에 나는 마음의 힘듦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다.


퇴근하면, 점심시간에는, 주말에는 여유가 있어서 힘들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한동안 그랬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한동안은 주말에도 회사에 꽤 열심히 나갔고. 그런데 새로 들어간 성가대에서 다음 주 토요일에 공연을 한다. 아마도 지난달부터였던 것 같다. 지난달부터 두 달 정도는 바쁘게 연습하고 있다. 특히 나는 원래 성가대를 했던 것도 아니고 노래도 잘하던 편이 아니어서 더욱 힘들다. 마음이 많이 힘들 때에도 성가 연습에 집중하면 모든 걸 잊게 된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머릿속으로 '이걸 고쳐야지, 아 저것도 고쳐야 하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노래하는 게 이렇게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당장 어제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하다 왔다. 내일도 아침 11시 반부터 3시까지로 연습이 잡혀 있는데, 아마 3시에 끝나지 않겠지. ㅎㅎ 상담사 선생님도, 의사 선생님도 당장 이렇게 몰입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하셨다. 문제는 몰입한 일이 끝난 다음일 것이다.


그래서 상담사 선생님은 당장은 일단 성가대 공연에 집중하고 이게 끝나면 그다음에 무언가 몰입할 취미나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권하셨다. 돌이켜 보면 그럴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난 겨울까지도 난 말을 탔는데, 낙마 경험이 워낙 많다 보니 말을 타면 늘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승마 또한 성가대 연습과 마찬가지여서 자세나 태도 등에 잘못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운동에 집중할 수조차 없었다. 이것도 바로잡아야 하고, 저것도 바로잡아야 하고. 그런데 하나를 잘하려다 보면 다른 하나는 다시 틀리게 되고.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원래부터 신앙이 깊었고, 그런 데다가 코로나 이후부터는 기타라는 새로운 취미를 찾아서 지난 3월에는 공연도 했었다. 지난달에도 물어보니 기타 연습은 꾸준히 하는 것 같았고,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있는 듯했다. 사람 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내는 나보다는 덜 힘들 것이다. 원래부터 강한 사람이었고, 고민이 많았지만 어쨌든 아내의 선택으로 우리 가정은 깨어지게 되었다. 물론 내가 기름을 끼얹은 탓도 크지만. 아내가 다시 밝고 명랑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나와는 다르게 지난 과거보다는 오늘과 내일에 집중하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그와 더불어서 아내는 일하고 남는 여유 시간에 몰입할 거리를 잘 찾았던 덕분에 나처럼 쓸데없는 자책과 회한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아내가 떨어지면서 내게 '승마 다시 해~'라고 권유하기도 했던 것 아닐까.


어쨌든 오늘로 바쁜 일을 한숨 돌렸고, 다음 주 토요일이면 성가대 공연도 끝나게 된다. 그러면 기일이 그다음 주 수요일로 다가온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성가대 공연까지 끝난 뒤에 내가 과연 그 사나흘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정말 걱정스럽다. 별거를 할 때, 아내와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게 내겐 가장 큰 위안이었고, 지난번에 처음 법원에 갔을 때도 아내를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는 게 내겐 정말 큰 위로가 되었었다. 이제는 아내와 평생 마지막 작별을 할 일만 남았다. 물론 우리는 원수처럼 헤어지는 건 아니어서, 원한다면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의사 선생님도 나도 알고 있다. 그게 내 회복에 전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평생을 아내와 영원히 작별할 거라는 걸 내가 몸으로 느끼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때 내가 몰입할 일조차 없을 때, 과연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걱정된다.


이제 불과 열이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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