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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23. 2024

이혼전야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2

글을 쓰려고 태블릿을 켜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회사에서 받아 집안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태블릿을, 아내는 왜 그냥 방치하느냐며 자기가 써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 태블릿의 비밀번호는 아내의 생일이 되었다. 택시 어플도 쓸 줄 모르는 내가 태블릿 비밀번호를 바꿀 줄 알 리가 없다. 가로, 세로 화면 전환조차 잘 몰라서 헤매다가 겨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쓰는 중이다. 앞으로도 이 태블릿의 비밀번호는 오래도록 아내의 생일이겠지. 그런데 이제 내일부터는 아내가 아니라, 전 아내가 된다.




어느덧 돌이켜 보니 별거를 시작한지는 벌써 넉 달 가까이 지났다. 정확히는 기억 나지 않지만 아내가 이사했던 것이 3월 스물 며칠이었던 것 같다. 그렇구나. 그렇게 시간이 금세 흘렀구나. 한마디로 벌써 백일도 넘는 시간이 지났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내 정신도 많이 회복된 것 같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진리'라던 어떤 선배분의 말이 맞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하루에 11정이 넘는 약을 먹고 있고, 매주 상담을 다니고 있다. 병원도 꾸준히 가고 있고. 그러나 두 번째 상담을 받았던 상담사분이 두 번째 상담을 끝내면서(모두 7회기였다)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그분과의 첫 상담은 별거를 일주일 앞두고 이루어졌었고, 마지막 상담은 결혼기념일 직후였는데 그 두 달 반 사이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내가 가장 발전했다는 것을 체감할 때는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서 이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너무 힘들 때는 상대에게 그 말을 하고 싶지 않고 마음을 먹었어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끝없는 하소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잘 아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이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아내가 잘 지내는 척(그러고 보니 이건 거짓말은 아닐 듯)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면 뭔가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만큼 괜찮아졌다는 것도 느껴진다.


그런 나를 가장 자극했던 건 역시 지난달 법원에서 있었던 아내와의 만남이었다. 약도 독하게 먹고 갔고, 마음도 굳건하게 다졌건만, 만나자마자 아내가 '너 얼굴 많이 상했는데?' 하는 한마디에 왜 그런지 모르게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내를 만나고 나서 한동안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내일 아내와의 만남을 앞두고 어제 아내에게 연락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아내는 약간 발작 버튼처럼 된 것 같다. 아내와 만나는 것이 반갑고 기대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부담이 되고 힘든 일이기도 하다. 내일은 아내와 평생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날이 될텐데 어떨지 모르겠다.


브런치에 여러 번 적었지만 아내와 나는 그래도 비교적 원만하게 헤어지는 편이라서(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다. 아내가 이사를 나가는 날에도 당근 거래는 내게 부탁했었으니) 헤어진 뒤라도 지인과 친구의 중간 정도로는 연락하고 만나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처음에는 많이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나의 지난 인연들을 무 자르듯이 자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처음 좋아했던 여자 후배와 그리고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 후배 등등 많은 사람들과 여전히 연락하고 가끔 만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아내와는 그렇게 지내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나 스스로 느껴진다. 아내를 만나는 게 내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헤어지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밥 먹고 만나고 지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데, 내가 그걸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 내와의 관계가 끝난 건 끝난 거다.




어제는 여러 가지로 멘붕이 왔다. 주말에 병원에서 다섯 번이나 전화가 왔었다. 요즘 무선 이어폰을 하나 마련해서 돌아다닐 때면 그걸 쓰고 있는데, 역시나 택시 어플도 잘 못 쓰는 내가 무선 이어폰이라고 친숙할 리 없다. 연결해서 음악을 듣는 것까진 하는데 중간에 전화가 오거나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전화가 끊어지고, 전화를 잘 받지 못한다. 토요일에 병원에서 두 번이나 전화가 왔었는데 전화가 왔을 때마다 다시 병원으로 전화했더니 업무시간이 아니라고 받지 않았다. 일요일에도 세 번이나 전화가 왔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짜증이 나서 마지막에는 그냥 이어폰을 끄고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기다렸는데 역시 한국 사람은 삼세 번인지 더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ㅠ)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었다. 이럴 수가. 지난 11월부터 나를 진료해 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을 갑자기 그만두셨다고 한다. 헐. 그간 상담은 무료 상담을 쫓아다니느라 상담사는 몇 번 바꾸었지만 한 번도 의사 선생님은 바뀐 적이 없었다. 지난 11월부터 바로 지지난주인 7월 중순까지 7개월 가까이 같은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잘 맞는지, 잘 해 주시는 건지 잘 몰랐고, 약을 많이 쓰시는 편이기도 했지만 이 의사 선생님은 정말 상담을 잘해 주셔서 오래 진료를 볼 때는 4, 50분씩 진료를 보기도 했었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도 10분 이상 진료를 보는 일이 잘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연을 이야기해도 40분씩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면 좋은 곳이라고 계속 다니라고 했었는데, 덕분에 오랜 기간 라포가 잘 형성된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관두시다니. 병원 말로는 오래 진료를 보셨던 환자들에게는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돌리신 듯했다. 그런데 난 그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짓인지는 모르겠는데, 또 인맥하면 honest 아닌가. 어제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친구는 그 의사 선생님의 한 학번 선배였다. 잘은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사이고, 한 학번 차이라 다른 친한 후배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갑자기 병원 관두신 걸 알리고 싶지 않으셨을 수도 있는데 내가 쓸데없이 여기저기 알린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가 되기도 하는데, 일단은 친구에게 그동안 진료를 잘 봐 주어 고맙다는 인사나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가 후배를 통해서 자기가 알아보겠다며 혹시 병원을 옮겼다면 그것도 알아봐 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참 몇 년만에 연락해서는 면목이 없다. 이렇게 필요할 때만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을 제일 싫어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결국 그렇게 된다. 그 의사 선생님이 다른 병원에서라도 계속 일을 하실지 아니면 쉬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목요일에는 그대로 그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원장 의사 선생님은 10분 이상 진료를 보지 않으신다고 한다. 나의 지난 긴 사연을 10분으로 요약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올 수 있으려나. 그래도 당장은 어쩔 수가 없다. 약이 다 떨어졌다. 다른 정신과 의사 친구가 동네 병원을 새로 추천해 주었다. 보니까 이 동네에도 멀지 않은 곳에 정신과가 두 곳 있어서 목요일에 가 보고 오래 상담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이번에 병원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제 아내와 이혼결정까지 끝나면 나는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지가 멀지 않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을 관두시다니. 사실 그동안 내가 환자이긴 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기도 해서 내심 걱정도 됐었다. 그런데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아내는 갈비찜을 좋아했다. 내일 아내와 평생 마지막으로 할 식사는 그래서 법원 근처에 있는 갈비찜집으로 정했다. 오마카세를 대접하고도 싶었는데 점심이 2부라서 1시 30분에 시작한단다. 우리는 법원에 2시 30분까지 도착해서 출석 확인을 해야 내일 이혼할 수 있다. 식당에서 법원까지는 이 더위에 걷기에는 좀 그래서 아내에게 차를 태워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태워주겠다고 한다. 이게 서양 사람들처럼 이혼하는 우리 부부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려나.


나도 이혼을 처음 해 보는 것이라서 몰랐는데 브런치를 읽다 보니 [이혼신고서]라는 것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호언장담했는데 분명히 아내는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이혼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신고서]를 내야 하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따로 이야기해  주진 않았지만. 오늘 사무실에서 [이혼신고서]를 2장 출력했다. 앞뒤를 어떻게 하는 게 맞을지 몰라서 일부러 위로 넘기게 한 장, 옆으로 넘기게 한 장 그렇게 두 장을 출력한 것이다. 내일 아내에게 내 인적사항과 우리 가족 인적사항을 적어 주고 들려서 보내야지. 바로 신고하려고 할 것 같긴 한데, 언제 신고할지는 모르겠다. '너가 해'라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아내가 여자인데 실은 뭐 내가 아내의 집주소며 다 알고 있긴 하지만 그런 개인정보와 인적사항을 적어서 내게 주는 게 아내는 찜찜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내가 신고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3개월 이내에 [이혼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이혼은 취소된다. [이혼신고서] 양식을 보는데 참 신기했다. 오묘하게 [혼인신고서]를 꼭 닮았다. 하긴 둘이 한 쌍으로 연결되는 것이긴 하지.


혹시 몰라서 아내와의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등을 모두 떼어 보는데 이렇게 이혼이 실감이 날 때면 마음이 정말 힘들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래도 그동안엔 약을 먹으면서 버틸 수 있었는데 단순히 약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오랜 기간 의사 선생님과 형성한 관계에서 오는 믿음도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계시지 않다니.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 않지만 목요일에 10분 안에 후다닥 진료를 보고 약 처방을 받고 나오면 그때는 실감이 나려나. 어쩌면 내일도 힘들지만, 모레는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내와는 점심 때 만나기로 했는데 지난 협의이혼신청서 제출 때와는 달리 내일은 출근하려고 한다. 아침부터 집에 혼자 있으면 괴롭고 힘들기만 할 것 같아서, 2시간 일하려고 왕복 3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라리 그냥 회사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직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건 옷차림.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지난 일요일에 미용실에 가서 파마까지 했는데, 내일 수트를 입고 가고 싶은데 너무 더울 것 같다. 내 수트는 하복이긴 하지만 요즘은 정말 너무 습하다. 사람이 너무 더워 보이면 그것도 참 없어 보일 일인데. 어떤 옷차림으로 아내를 만나러 가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일 일정은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다. 법원에서 아내와의 이혼 결정이 끝나면 내일은 상담이 예정되어 있고, 상담이 끝나면 가까운 후배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혼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있는 후배라서 내일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오라고 했다. (그 후배가 무슨 죄인지) 그래도 이렇게 힘들 때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힘이 난다.


아직은 내일이 오지 않아서 내일이 어떨지, 내가 어떤 모습일지 쉽게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저 약을 많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잘 버텨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글을 쓰겠지만 지난 토요일에 성가대 공연이 있었다. 한 달 정도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크게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모두가 만족하는 공연으로 끝낼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내가 더 기쁜 것은 성가대 공연을 준비하느라 아내와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을 많이 잊을 수 있었다. 노래를 못했기 때문에 더 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고치면 저것이 틀리고, 저것을 고치면 이것이 틀리고. 이것저것 쫓아가느라 내가 지금 이혼과정 중에 있다는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아내와 결혼한지 7년 하고도 한 달 그리고도 보름이 넘게 지났다. 그 가운데 넉 달은 별거 기간이었지만. 드디어 거기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부디, 이것이 내 인생의 마침표는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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