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Jul 24. 2024

이혼, 하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3

아침엔 아무렇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괜찮아진 건가 싶을 정도로. 물론 오늘아침에는 평소와는 달리 약을 두 배로 증량해 먹는 바람에 조금 더 졸립고 피곤하긴 했다. 그치만 두 배의 약을 먹었기 때문이었을까. 게 불편하고 힘든 점은 없었다. 뭔가가 어색했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오늘이. 다만, 일진은 좋지 않았다. 새벽에 두 배로 증량한 약을 먹는 바람에 아침에 출근 준비가 늦어졌고 그 바람에 요즘 같은 때에 꼭 챙겼어야 할 우산을 집에 그냥 두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서 가지고 나오기에는 시간이 빠듯한 상황. 다행히 빗줄기가 약했고 그냥저냥 전철역까지 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중간부터는 비가 후두둑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이런, 제길. 회사 근처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휴. 다행스럽게도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지 않았는데 전철역을 나오기 무섭게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 무슨 소란이람. 홀딱 젖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를 꽤 맞은 뒤에야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 비는 오늘 내가 흘릴 눈물이 미리 떨어진 것이었음을.




고작 2시간을 일하기 위해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회사에 갔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전에 협력업체와 몇 차례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나 스스로도 느껴졌다. 내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는 것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갑질을 했다거나 욕을 했다거나 심한 말을 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목소리가 무척 차갑고 냉정했다. 아마 오늘 오후에 있을 아내와의 이혼 확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조금 정신없게 일할 수 있어서 고마워했어야 했을 수도 있는데, 도리어 나는 안 그래도 피곤한 내가 도리어 번거롭고 귀찮다고 여겼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렇게 오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해서는 아내와의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전철역에 내려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아내로부터 좌회전만 하면 끝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역시. 시간 맞춰서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다. 아내에게 나도 거의 다 왔다고 답장을 보냈지만 생각보다 전철역에서 식당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다. 아내가 먼저 식당에 도착해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내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앉아서 조금 기다리고 나니 아내가 식당으로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달만의 재회였다. 한 달 전의 식사와 비슷했다.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묻고, 회사 생활은 어떤지 확인하고, 각자 조카 이야기를 나누고. 아, 한 가지 서운했던 것이 있었다. 아내에게 지난 토요일에 성가대 공연을 했다고 보여주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거절했다. 하긴, 우린 이제 가족이 아니지. 이 날 아내의 첫마디는 '살 좀 찐 것 같은데?'였다. 실제로 내 몸무게는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어쨌든 그런 긍정적(?) 언어를 들었기 때문인지 오늘 점심은 울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토마토와 데운 떡을 먹는데 토마토마저 잘 넘어가지 않는 게 느껴졌었다. 이혼 스트레스 때문인가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점심엔 오히려 아내가 남긴 반찬과 아내가 많다며 처음에 덜어 준 밥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그리고 아내의 차를 얻어 타고 같이 법원으로 향했다.




세미나를 듣기 위해 대법원에도 가 본 적이 있는 나이지만, 정말 내 용건 때문에 법원에 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주차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법원에 들어가려는 차들로 만원이었다. 결국 아내와 나는 그냥 길가에 차를 대고 들어갔다. 법원 건물 안에도 생각보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고, 엘리베이터 한 대는 사람이 많아서 그냥 보내야 할 정도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혼하려는 건가. 그랬다. 협의이혼대기실은 사람으로 가득 차서 앉을 곳 하나 없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살짝짝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내와의 영원한 작별이란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준비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이혼신고서]까지 준비해 온 나였지만 손수건이나 휴지를 챙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아내가 휴지를 가지고 있어서 내게 건네 주었다. 2시 반이 되자 이혼 심판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우리 이름은 언제 불릴까. 첫 절반이 다 가도록 우리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3/4이 될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호명이 거의 끝나갈 때쯤엔 혹시 착오가 생겨서 우리 부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착오가 있을 리가 있나. 거의 끝번호이긴 했지만 나와 아내의 이름도 연달아 호명되었다. 우리는 대기번호 51번이었다.


3시부터 선고를 해서 1분에 한 가정씩 결정이 난다고 해도 아내와 내 순번까지 오려면 50분이나 걸릴 셈이었다. 대기실 안의 좌석은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차 있었고 아내에게 우리는 그냥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리고 선고가 시작되고 몇 분 되지 않아... 한 남성이 꺼이꺼이 울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가 울릴 정도의 큰 울음소리였다. 그 아내는 그를 위로하고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는 아마도 [이혼신고서]에 적어야 하는 인적사항만 적고는 바로 떠나는 듯했다. 그 남성을 보고 나니 그때부터는 나도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결정은 일찍 끝났다. 아마 우리도 3시 30분이 되지 않아 끝났던 것 같다. 나와 아내가 거의 마지막 번호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이혼신고서]를 준비해 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의외로 법원에서 [이혼신고서]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어르신들께는 꼭 두 분이 함께 구청에 가시라고 안내했고 젊은 사람들은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듯했다. 기입만 잘 되어 있다면 꼭 둘이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만약 한 사람이 간 상태에서 신고서에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접수가 안 된다. 안내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해서 이야기한 것일 거다. 나는 내 인적사항은 물론 부모님 한자까지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아내는 본인의 등록기준지도 몰랐다. 본관을 한자로 쓸 수도 없었고,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도 자신없어 했다. 덕분에 우리는 1층 카페에서 이별의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다. 나는 내 인적사항부터 모두 적고 아내에게 전달해 주었고, 아내는 '이건 뭐지?' 하고 몇 가진 나에게 확인해 가며 자신이 기입해야 할 것들을 모두 적었다.


아마도 이혼이 결정되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내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랬다. 여러 차례 아내에게 '미안했다'는 말과 '고마웠다'는 말을 반복했고, 아내도 '괜찮다'는 말과 '나도 고마웠다'는 말을 해 주었다. 다만 한 가지 놀란 점이 있었다. 아마 아내가 나에 대한 감정이 식으면서 변한 부분일텐데 '언제 이혼을 결심했느냐'는 나의 질문에 '서서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만약 내가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이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이 점은 몇 달 전과 달라진 대답이다. 그때만 해도 '지금 이혼 안 해도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사람은 그렇게 감정이 누그러지고 식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예전에 부산에서 변호사 형이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사자들에게는 당장 3개월도 긴 시간인 것 같지만, 정말 충분히 긴 시간이라고 하려면 반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나도 그렇게 시간을 벌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내의 결심이 워낙 단호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 형의 말대로 아내도 반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이다.


아내는 이날 바로 구청으로 [이혼신고서]를 접수하러 가겠다고 했다. 브런치를 읽으면서 이혼 과정에서 이혼 당일의 힘듦에 대해 많은 글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접수하는 과정에서 하루이틀 정도는 망설이는 이야기들을 보았던 터라 막연히 아내도 [이혼신고서]를 접수하기까지 며칠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심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랬구나. 아내는 이만큼이나 이혼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늘 남겨지는 것은 나이듯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의 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헤어졌다. 아내에게 가끔씩은 연락하고, 가끔씩은 밥도 먹고 그렇게 지내자고 했고, 아내도 좋다고 답했다. 이런 게 아마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냥 하는 말'이겠지. 그리고 또 [이혼신고서]를 접수하면 알려 달라고, 그것이 처리되거든 그때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아내로부터 나는 한 번의 연락이라도 더 받고 싶었나 보다.


오늘 아내는 내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미안해 할 필요도, 고마워 할 필요도, 자신에 대한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너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라고. 그리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앞으로 만날 사람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부모님에 대해서도. 주옥 같은 말이다. 제 이혼을 앞두고 쓴 글에 적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더 힘든 건 어쩌면 아내와의 결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확신이 부족했던 결혼생활이었다. 점차 확신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고, 혹시 그것이 부족했다면 아내와 솔직하게 대화해서 풀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걸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내에게 오늘 특별히 고마움을 표한 게 있다.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서 고맙다고. 그나마 내게는 결혼생활 마지막 몇 달이 후회를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아내는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내게 그 시간을 허락해 준 것이 정말 고맙다. 물론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아내는 나와의 결혼생활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물론 사람마다 생각하는 최선의 수준은 다르지만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오늘도 동의할 수 없다. 당연히 아내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 이혼이 결정되던 그 순간에도 아내에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너는 정말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냐고. 아내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솔직히 나는 그때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최선은 당연히 다를 것이다. 누구나 다 나처럼 극단적인 최선을 가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난 [눈물의 여왕]을 두 번이나 정주행해서 보았고, 아마도 누적 시청 시간으로 따지면 100시간도 훨씬 넘을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 누구와 결혼을 하든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해야겠구나. 아내도 나도 우리 모두 결혼에 어설펐고 성급했다. 그 결과, 이렇게 된 것이다.




아내를 보내고 나서도 혼자서 많이 울었다. 아내를 떠나 보내고 오래지 않아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상담소에서도 끝없이 울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도 아내만큼이나 오늘 내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럴 시간이겠지. 다행히 아직 상담이 2차례 더 남아 있다. 조금씩 정신을 회복하면서 상담사 선생님께서 내게 해 주신 좋은 말씀을 다시 듣도록 해야지.


상담이 끝나고 나서도 혼자서 계속 울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무척 피곤한데, 아마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오늘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눈이 벌개지고, 퉁퉁 부어서 앞을 보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다. 내가 원래 눈물이 헤픈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울었던 날이 있었던가. 아내와 별거하던 날에도 많이 울었지만 그날은 오후에 부모님께서 짐을 날라 주러 오셨기 때문에 많이 울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게 정말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를 제어하는 셈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그렇게 나를 잡아 줄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굳이 참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오후에는 정말 내내 눈물만 흘렸던 것 같다. 내 생애 다시 또 이렇게 우는 날이 있을까. 제발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내 생애 가장 힘든 날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여차저차해서 또 하루가 가고 있다. 내일은 일어나면 또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 있기에 오늘보다는 조금 낫고, 또 다른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내를 잊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걸리겠지만. 오늘 상담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그런 말이 있었다. 아내도 내가 잘 지내기를,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랄 거라고. 이렇게 힘들게 지내고만 있다면 아내도 가슴 아파 할 거라고. 그렇다. 맞다. 아내도 나의 행복을 기원했었지. 그리고 나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그의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했던 생각이 난다. 잘 지내야 한다. 그리고 잘 서야 한다. 나를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그게 아내도 원하는 일이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아내의 마지막 소원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전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