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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27. 2024

이혼에서 배우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5

아내와 주고받은 카톡을 보다 보니 이번에 아내에게 처음으로 이혼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지난 10월 마지막주였다. 9개월. 계절에 세 번 바뀌었으니 길다면 길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폭풍과도 같았던 그 시간 동안 아내에게 매달리고, 설득하고, 별거를 시작하고, 그리고 마침내 이혼에까지 이르렀다. 아내와의 완전한 이별이 실감 나서 그런지 요즘엔 유독 아내 꿈을 꾸며 새벽에 깨는 일이 잦다. 그럼에도 이제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나를 진료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갑자기 병원을 그만두시는 바람에 회복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기도 한데,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는 것을 나 스스로는 올해 정도까지로 생각하고 있다. 아니,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차분하게 생각을 해 본다. 아내와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과연 정말 행복했을지에 대해서. 브런치에 내가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변명을 적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번 일 없이 아내와 계속 살았다고 해서 냉정하게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마 나는 늘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 속에서 감사함을 모르고 스스로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며 살지 않았을까 싶다. 나보다 훨씬 이성적인 아내가 판단하듯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파경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깨달음과 계기가 있지 않았던 이상은.


상담사 선생님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해 주셨다. 어떤 일을 겪고도 전혀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깨닫고 배워서 변하는 사람도 있다고. 아내 또한 내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인정했었다. 물론 마음은 떠난 뒤였지만. 요즘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것 또한 이혼이 내게 가져다준 변화가 아닌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충분히 많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잘하고 지내자는 생각을 했던 나였기 때문에 이번 일이 없었다면, 새로 사람을 사귀고 만나고 무슨 활동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당 성가대에 나간다고 하면 아내가 싫어하기도 했겠지만.(웃음)


아내는 헤어지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고 했다. 다음 사람에게도, 일에서도, 무슨 일에서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아내와의 관계에 정말 최선을 다했던가.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물론 아내가 생각하는 최선과 내가 생각하는 최선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내가 예전에 아내에게 '너는 정말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모든 최선을 다했어?'라고 물었던 것은 내심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늘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소진해 가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내와 보냈던 마지막 몇 달 동안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고, 아내가 내게 그 시간을 허여해 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하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 있었을지를 한 번 떠올려 보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늘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면 후회는 없겠지.




사람은, 아니 나는 왜 어리석게도 꼭 이렇게 경험을 하지 않고 미리 알 수는 없었던 것일까. 결혼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아내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사람을 만나며 간접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헛똑똑이었다. 가장 좋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본다면 처음부터 내가 아내와의 결혼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어리석어 미처 그렇지 못했다면 이번 일을 통해서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내로부터 용서를 받아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면 이 또한 이전과는 크게 다른 관계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받아든 결과지는 그 둘 다 아니었고, 결국 나는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지금 남아 있는 결과지 가운데 가장 좋은 쪽을 선택한다면 이번 경험을 통해서 깨달아 배워서 앞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떤 관계에서든 최선을 다하며 사는 쪽이겠지. 다 끝난 이야기지만 그게 아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에 들어왔더니 내게 '크리에이터'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딱지는 '가족 분야'였다. '이혼'을 연재하고 있는 내가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라고? 한동안은 놀랍고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고, '이혼 분야 크리에이터'가 있을 수는 없으니 '가족 분야'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로부터 그런 위로를 정말 많이 들었다. 물론 위로를 위한 위로이긴 하지만, 그렇게 '이혼하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혼한다면 대한민국에 남아 있을 부부가 어디 있겠느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란 단어는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게 맞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산다. 그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미처 다 생각하지 못하면서. 아마도 내가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가 된 것은 그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이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대해, 여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겪지 않았으면 좋을 일이었다. 그리고 혹시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내와 코드가 맞아서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정도의 사이였다면 그것 또한 좋았겠지. 그러나 이미 어쩔 수 없이 겪은 일이다. 여전히 나는 태풍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래도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태풍이 오지 않았던 때, 태풍이 보이지조차 않았던 그 시절이 그립고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젠가 태풍이 지나고 나면 내게 다시 그런 때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단순히 남녀 사이뿐만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삶에 있어서, 뼈를 깎는 고통을 느끼며 이번 일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결코 잊지 않고 명심하며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이번 일이 내게 준 유일한 선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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