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6
'이혼'이 브런치의 3대 글감 가운데 하나라는 이야기도 읽었고, 내 관심사이다 보니 그렇게 주로 '이별'이나 '헤어짐'과 관련한 글이 많이 뜨고는 한다. 그런데 난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그런 글들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일상에서 얻게 되는 소소한 교훈이나, 난 사회 뉴스에 관심이 많으니 세상에 대한 비평문들, 이런 것들을 올리려고 시작한 브런치였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란 제목도 처음엔 한두 편에서 그칠 줄 알고 쉽게 지었던 제목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이혼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혼'은 내 인생 최고의 문제로 떠올랐다. 당연하지. 누구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보통 큰일인가. 그렇게 벌써 36편째 글을 쓰고 있다.
지지난주였나. [가족관계증명서]를 뽑으려고 했더니 발급이 되지 않았다.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해당 서류는 가족관계 관련 부서에 연락하시어 발급받으셔야 합니다' 뭐 이런 멘트가 나왔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행정 서비스가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빠를 줄은 몰랐다. 접수하고 만 이틀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리고 쭉- 아내의 연락을 기다렸다. 헤어지면서 아내에게 부탁했었다. '처리되거든 연락 좀 줘'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렇게라도 아내로부터 연락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로부터는 지난주 내내 연락이 없었다. 혼인신고도 처리되는데 며칠 걸리는 걸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혼신고도 마찬가지인가 싶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담당자도 하계 휴가를 갔을 수도 있고, 며칠 더 기다리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한 번 확인해 보았다. 그새 처리가 다 되어 있었다.
아내에게 연락했더니 아내는 통보를 받아서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마 내게 연락하기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도 내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리고 또 내게도 연락이 오는 줄 알았나 보다. 담당자가 그렇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내 전화번호는 중간의 4자리가 거의 이어진 형태인데 그래서 헷갈리는지 4자리를 그냥 이어서 적는 사람들도 조금 있다.(거의 이어질 뿐 그냥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아마 나에게도 통보가 되었었다면 그런 실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아내와 이렇게 되고 나서부터는 부모님 댁에 가는 마음이 편치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7년 정도 짧지 않은 결혼생활을 한 까닭에 집에도 아내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사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려면 항상 예전에 아내와 함께 살던 동네를 거쳐 가라고 나온다. 그쪽 동네를 지날 때면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지나가던 추억이 떠올라서 더더욱 힘들어지고는 했었는데... 이번에 집에 다녀오면서 나도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11월부터 약은 습관처럼 먹고 있고, 어딜가든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하고 챙기는 게 약이다. 약 없이 버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사흘치 약을 챙기고 여분으로 하나 더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내가 약을 이틀치밖에 챙기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나마 여분으로 한 봉을 더 챙기긴 했지만 그래도 3회분(2끼+자기 전)이 모자란 셈이 된다. 무척 당황했다. 집에서 부모님과 있다 보면 티나게 약을 먹을 수도 없고, 늘 부모님이 신경 쓰여서 더 힘든데, 약이 없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의외로 괜찮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게 있다. 처음 내가 약을 먹게 될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는 항상 '필요시'라고 적어서 주셨다. 하루 4회분의 약을 주긴 하셨지만 괜찮을 땐 먹지 않아도 된단 뜻이다. 그랬던 것이 상태가 안 좋아지고, 약이 익숙해지면서 '필요시'라는 말을 '아침'과 '점심', '저녁' 그리고 '취침전'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약의 복용량이 늘어났다. 약이 모자란 상태에서 하루이틀을 지내 보니 의외로 내가 약 없어도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겨울에는 약이 없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많이 괜찮아졌구나 싶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오늘 아내에게 이혼 처리가 완료되었다고 연락하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나를 자극할 요소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 '필요시'였던 건가. 아내와 연락을 하고 나서 바로 약을 찾아 먹었다. 아내에게 연락하기 전에 먼저 약을 먹고 했어야 했는데.
아직 멀었지만 나름대로 나는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병원도 다니고 있고, 상담도 이번 주에 한 곳에서 끝나는데 다음 주부터 다른 곳에서 다시 또 상담을 새로 시작한다. 성당 성가대에 들어가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 사귀고 있고, 운동도 일주일에 비록 한두 번이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가 가장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약속도 많이 잡는 편이다. 가끔씩은 현타가 몰려 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나름대로 괜찮아지려고 애쓰고 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최근에는 올림픽이 특히 많은 도움이 된다. 법원에 다녀오고 나서 가장 힘든 그 시간에 올림픽이 개막하면서 매일같이 늦은 시간까지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을 내 일처럼 긴장감을 가지고 응원하다 보면, 내가 지금 처해 있는 현실도 다 잊혀 진다. 그래서 새삼 2024년 파리올림픽에 고마운 마음마저 가지고 있다.(참고로 저의 최애는 양궁 임시현 선수입니다. 가까운 데 사는데, 길에서라도 한 번 봤으면...)
어제는 부모님 댁에서 서울로 운전을 하면서 돌아오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에 나와 비슷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타지에 와서 처음 사귄 이성친구와 7년만에 헤어졌는데 너무 힘들고, 어떻게든 잡고 싶었지만 잡지 못했고, 과연 그 친구를 잊고 괜찮아질 수 있을지에 관한 사연이었다. 아마도 나보다 열댓 살은 어린 친구가 보낸 사연이었겠지. 별밤지기가 한 말이 꼭 내게 하는 말 같아서 무척 기억에 남았다. 이별이 겁나서 붙드는 관계는 건강하게 이어질 수가 없고 점점 스스로를 해치게 된다는 말이었다. 결국엔 자신도 잃게 될 거라며 스스로를 위해서 차라리 잘 일어난 일이라고.(지금 적다 보니 이거 완전 T같은 위로인데?) 헤어지고 나면 모든 게 다 그렇게 느껴지게 마련이지만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다만 내 경우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던 게, 이건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아내는 씩씩해서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고 잘 견뎌 내고 있지만, 그리고 지금 행복해 하고 있지만 우리 관계를 마무리한 건 나보다는 아내를 위해서 더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웃음이 많고 늘 행복했던 사람이 나를 만나고 어두워졌으니.
내가 지금 이나마 견딜 수 있는 건 그래도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끝없는 푸념과 하소연과 징징징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은 덕분에 고맙게도 난 이만큼이나 회복하고 버틸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또 많은 사람들과 멀어져 가고 있음도 느낀다. 자책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하지만 나 때문이다. 나도 이왕이면 힘든 얘기를 하는 사람보다 밝고 명랑한 사람이 좋다. 그런데 매번 끝없는 하소연과 푸념을 늘어놓는 나를 만나면 기도 빨릴 것이고 얼마나 힘들겠는가.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의절할 정도까지 가진 않았단 정도랄까.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두려움도 생긴다. 정말 어둡고 음울한 내 본 모습을 안다면 내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은. 성당 성가대에도 잘 적응한 것 같지만 실은 아무도 내 본 모습을 모른다. 갑자기 들어온 최고 왕고가 매일같이 죽는 소리만 한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라도 싫겠다. 지금 내가 가장 극복해야 하는 게 '자책'과 '자기혐오'인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다시 또 '자책'과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져 들어간다.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던 사람인데, '우쭈쭈~' 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오랜 시간을 그렇게 견디면서 아내도 많이 힘들고 지쳐 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시 또 좋은 사람을 내가 질리게 만들어서 떠난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또 내가 싫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내가 젊은 날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쥐뿔도 가진 것이 없어도 그렇게 충만한 자신감은 사람을 빛나게 해 준다. 언제부터 그것을 잃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런 자신감이 하나도 없다. 워낙 큰일을 겪었으니 하루아침에 내가 괜찮아지고 예전과 같은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게으르고 정체된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솔직한 속마음으로 나는 이런 수렁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지만, 나도 알고 있다.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걸. 그런데 어디에서부터 바꿔야 할지, 내가 꼭 바뀌어야 하는 것인지,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되는 건지도 궁금해진다. 사람이 달라지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던데, 그렇게까지 내가 모든 게 바뀌어야 하는 사람인 걸까. 난 그렇게 엉망이었나.
아내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날 사랑해 주었고, 그 오랜 시간을 견디며 버텨 왔던 것일 것이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면도 많이 있었을테지만 그래서 나는 결코 아내를 탓하고 싶지 않다. 의사 선생님이나 상담사 선생님께서 아내를 이상화하지 말라는 말도 많이 하긴 했고, 관계란 쌍방의 문제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잘하고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솔직한 모습을 모두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기도 했고. 결국, 내가 문제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고 나면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게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힘들어진다. 어쩌면 아내는 나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던 유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받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어떻게 사람이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해 이렇게 모르고 살았나 싶을 정도여서 놀랍기조차 하다. 결국, 내가 나 스스로를 구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쉬이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일단 문제를 알면 반은 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아는 문제를 모두가 풀 수 있다면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음 편을 마지막으로 매거진을 끝내려고 합니다. 그간 꾸준히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