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Oct 25. 2024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

여전히 괜찮지 않습니다

사흘이 지나면 아내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낸지 정확히 1년이 된다. 그때는 정말 그 말이 실현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한때 열심히 노력하고, 별거하고, 아내와 결국 법적인 남남이 되고 나서도 시간이 꽤 흘렀다. 그렇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 완치될 수 있을지, 회복에 중점을 두고 나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 스스로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혼하시는 친구로부터는 또 다른 자극은 없냐고 물어보셨었는데, 보름 전까지는 괜찮았다. 친구는 예전에 물어보았을 때도 자신은 감정정리가 다 되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도 의사 선생님께 특별한 일은 없고 지금은 괜찮다고 답변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바로 다음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 보름 사이에 친구와 그래도 꽤 통화를 한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도 있었고, 감정 호소도 있었다. 친구는 자신은 감정정리가 다 되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막상 뒤늦게 감정의 후폭풍이 밀어닥친 듯했다. 생각보다 자신도 힘들다고. 그 말을 듣는 나도 정말 힘들었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친구가 걱정되어서라기보다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아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내가 이혼하고 어땠는지. 아내가 내게 보여준 모습만 알 수 있을 뿐이니까. 그러나 막연히 나는 아내는 당연히 잘 지내고 즐겁게 지내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친구에게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내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아내도 한동안은 힘들지 않았을까. 그래도 우리는 8년을 만났고, 그중 7년은 부부였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또 별거 전부터 이별을 직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견뎌가던 나와 다르게, 아내는 실제로 별거를 해야만 실감이 날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아내는 친구처럼 더 늦게 폭풍이 밀려왔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그저 내 상상일 뿐이지만, 친구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이 모든 생각이 밀려와서 그때부터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조카가 세 살이라서 요즘 동생이 조카를 내게 맡기는 일이 잦아졌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조카가 내 집에 와서 나랑 둘이 3시간 정도를 보냈다. 처음엔 TV를 틀어줬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조카가 TV도 지루해졌는지 블럭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내 집에 블럭이 있을리가 있나. 어린 조카는 책장에서 숫자가 써져 있는 책을 꺼내서 블럭처럼 깔고 놀았고, 그다음엔 냉장고에 붙어 있는 마그넷에 관심을 보였다. 조카가 마그넷에 관심을 보여서 서랍장에 넣어 놓았던 아내와의 신혼여행 기념품을 꺼내서 손에 쥐어 주었다. 아내와 내 이름이 적힌 신혼여행지에서 산 마그넷이다. 그런데 자석이 붙어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조카가 자석만 따로 떼려고 하다가 마그넷을 조금 깨 먹고 말았다. 그냥 마그넷일 뿐이다. 별것 아니고. 그리고 나는 그것 말고도 아내와의 추억을 기념할 수 있는 물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순간 공황처럼 마음이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바로 약을 찾아먹었다. 아내와의 기억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조카는 방실방실 웃으며 잘 놀았지만, 함께 놀아주는 내 마음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저께도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조카의 하원을 부탁해서 조카를 데리러 갔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조카를 하원시키기는 처음이었지만, 실은 나는 어린이집에서 여러 번 처조카를 하원시켜 본 경험이 있다. '고모부~' 하고 달려 나오며 나를 맞이했던 처조카. 혈족인 고모보다도 고모부를 더 좋아했었는데. 조카를 데리고 동생네 집으로 향하는데, 처조카와 함께 처남네 집으로 향하던 때가 기억이 나서 마음이 무척 좋지 않았다. 쓸데없이 기억력은 왜 이렇게 좋담. 게다가 내가 처조카를 데리고 처남네 집으로 갔던 것도 거의 대부분 가을이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내 혈족인 조카와 간지럼도 태우고 얼린 요구르트도 먹이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지만, 내 마음 한켠은 어두웠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처조카가 생각났다.




어제는 자정이 넘어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옛 생각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원래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지만 요즘 부쩍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자주 실감하고, 그래서 외롭다는 감정을 자주 느낀다. 그래서였을까. 실은 아내와 같이 살 때도 둘이지만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는 했지만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갈 때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쓸쓸한 감정에 휩싸인다. 텔레비전이라도 보고 있을 때는 그래도 비교적 집중되어 좀 덜한데, 텔레비전을 끄고 방에 들어가서 자려고 누우면 비로소 오랫동안 참아왔던 외로움이 밀려드는 느낌이다. 아마 그래서 어제도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한 번도 가을을 탄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실제로 늘 우울하고 다운되어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가을을 탄다기보다는 사계절을 다 탄다고 해야 옳다. 지금 가을은 햇볕도 잘 나고, 하늘도 맑고 쾌청한 편이고, 온도가 적당해서 내 경우에는 여름에는 하지 못하던 점심 산책도 지난 9월 중순부터 다시 하고 있다. 아마 비타민D도 훨씬 많이 합성하고 있을 거고, 그렇게 실제로도 햇볕을 훨씬 많이 쬔다. 그런데 이토록 우울한 건 왜일까.


브런치를 본 사람이라면 티가 나겠지만 아내와 헤어지면서 나름대로 나는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있었고, 실제로도 적극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가대에 들어간 이유도 없지 않다. 그런데 상담을 받고, 심리검사도 해 보고, 병원도 다니고 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공부해 나가면서 이제는 점점 깨달아 가고 있다. '아, 내가 보통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좋지만, 내가 그걸 너무 바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런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에 더 외로움을 깊이 느끼게 된 것일까.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 내 외로움을 채워 주면서 대화도 어느 정도 잘 통해야 하고 그런데 또 내 나이도 적지 않고. 이제 누군가를 만나기는 거의 어렵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혹여 내가 좋다는 사람이 있어도 '네가 나를 감당할 수 있겠니?'라고 묻게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에 이르고 나면 안 그래도 외로운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실은 나는 이 점은 나의 무척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장기 기억은 주로 좋았던 것만 남기는 부분이다.(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가?) 아내에게 내가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낸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고, 실제로도 1년쯤 전에 아내는 웃음을 잃고 늘 우울한 표정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아내의 이미지는 나를 향해 활짝 밝게 웃고, 늘 나를 사랑해 주던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 기억만 떠오르고 나면 그립고, 우울함을 금할 수 없고, 또 눈물도 솟구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가져가는 건 분명히 장점인데. 지금도 이게 장점인가.




차분하게 생각해 봤을 때 아내와의 관계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과 기름은 비눗물을 넣기 전에는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좋았던 시간이 없었던 것도, 좋았던 기억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잘 맞지 않았지만 한때는 좋은 관계였고, 좋은 사이였고,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아내는 평생 내게 주어진 단 한 명의 배필이었을지도 모른다.


혈액형 따위는 믿지 않지만 B형 아기는 처음 보는 곳에 데려다 놓았을 때 처음엔 잘 놀지만, 어느 순간 어색한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엉엉 운다고 한다. 조카 이야기를 들어도 어린이집에 처음 보냈을 때는 잘 놀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부모를 더 찾게 되는가 보다.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지난 몇 달간 분명히 잘 회복하고 있었고,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이제서야 조금씩 현실을 자각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충분히 괜찮아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았다. 외롭고 그리고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