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내가 비교될 때
최근 타 직군에서 PO로 전향한 회사의 주니어가 내게 커피챗을 신청했다. 그녀는 전향 이후 다른 PO들과 비교하며 자신은 PO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의기소침해져 있었고 다시 이전 직군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이라고 했다. 이것도 저것도 잘하고 싶은 그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타 직군에서 PO로 전향을 했다면 시야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PO로만 살아오던 또는 크로스 직군과 협업한 기획자로 살아오던 사람들과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야가 다른 것은 경험의 차이인 것이지 역량이 없는 것 같다거나 소질(?)이 없다고 섣불리 판단할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경험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회사에서 직무를 나눈 것은 괜히 하는 짓이 아니다. 물론 너무너무 소규모 회사의 경우 일당백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고 나발이고 일단 사용 가능한 툴이 있다면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이자 운영자이자 여러 역할을 하겠지만 중소규모 이상의 회사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더불어 PO들 사이에서도 서로 잘하는 역량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누군가는 정량적인 분석이, 누군가는 정성적인 직관이, 누군가는 둘과 무관하게 찬란한 창의성이 뛰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PO사이에서도 역량차이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타직군이면 잘하는 분야의 역량이 많이 다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 PO직군이 들어오면서 참 이상한 현상이 생긴 게 하나 있다. PO는 ‘미니 CEO’라는 함정에 빠져서 디자인과 개발 빼고 모든 일을 도맡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다 잘하라고 강요를 받기도 한다. 쿠팡이나 토스의 PO는 이 모든 것을 다 잘한다며 비교를 수없이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거 계신 분들 좀 나와보시죠.)
미니 CEO가 마음가짐을 대표처럼 애정을 갖고 일을 하라는 것이지 진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했을 때 퍼포먼스도 만족스럽고 성과나 포상까지 따른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험상 그런 곳은 흔치 않다. 때문에 PO라고 해서 죽기 직전까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니 스스로를 그만 옥죄면 좋겠다. (저는 PO라기엔 열정이 부족한 거 같아요 따위의 발언은 이제 접어두자)
물론 아주 희소하게 슈퍼 능력을 지닌 슈퍼맨들이 목격이 되기도 한다. 기획력도 탄탄하고 제품 완성도도 높으면서 사업적인 인사이트에 회계, 컴플라이언스 지식까지 탑재한 탑티어 능력자가 정말 대기업급 규모의 큰 회사에 하나 정도씩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정도 능력이 되면 회사에 붙어있지 않는다. 내 회사를 차리겠지 뭐 하러 있겠는가.
회사를 다닌다면 직무별 역량차이는 당연하게 있는 영역이며 PO를 하려면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중요한 것은 본인이 잘하는 강점을 찾아서 그 강점을 기반으로 일을 잘 차근차근 해내는 것이다. 절대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필요는 없으니 그것으로 너무 부담을 갖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에게는 한계치가 존재한다. 때문에 완전하게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다.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PO는 모든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은 지향하라는 의미지 절대 PO직군의 모두가 그렇게 모든 걸 잘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탑티어 인재가 있더라도 회사에서는 절대로 마주할 수 없을 것을 나는 안다.
모든 일을 잘하려고 하다 보면 도리어 모든 일을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잘하는 강점 하나를 기반으로 조금씩 역량을 넓혀가며 차곡차곡 쌓아가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섣부른 포기나 스스로 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그럼에도 모든 걸 잘하고 싶은 우리 주니어의 열정과 의지를 맘 속 깊이 응원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