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 Sep 01. 2022

왜라는 질문을 왜 하는지부터 알아야지

Why syndrome

대표님 프로젝트 보고를 위한 자리. 불철주야 열심히 프로젝트 실행 보고서를 준비했다. 지난 기획자 십여 년 생활에서 그나마 자신 있던 것이 '문서화'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였기에 나름대로 자신감 있게 미팅에 참석하여 노션을 켰다.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어젠다는.."


입사이래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역할이었기에 긴장 반, 기대 반 리뷰를 마쳤다. 흐름도 나쁘지 않았고 리뷰 시간이나 속도적인 측면도 적당했다고 생각한 찰나, 대표는 나를 향해 묻는다.


근데, 이거  한다고 했었죠?


(뭐? 저 새끼가..?)

실컷 보고를 하고 나니 김 빠지게 묻는다. 이 부분은 분명 보고 앞단에 요약해서 설명했는데, 너무 초반이라 기억이 안 나는가 보다. 나는 문서에 정리해둔 배경을 다시 설명하고 해야 되는 근거들에 대해 데이터를 비롯한 각종 자료를 제시했다. 충분한 설명을 했지만 대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미간을 실룩거리더니 다음의 어젠다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뭔가 찝찝하게 보고를 끝내고 나와서 한숨을 푹 쉬었더니 내 리더가 옆으로 와서는 묻는다.

(아참, 이전 글에서 그토록 찾던 나의 리더, 다행히도 내게 믿고 따를만한 멋진 리더가 생겼다!)


리더: 오늘 제법 잘 끝났네요. 그쵸?
나: 네? 그런 거예요? 대표님은 이거 왜 해야 하는지 모르시는 것 같던데요.
리더: 아녜요. 원래 대표님이 why에 엄청 집착하는 스타일이라서 스스로 이해하려고 계속 파고든 거예요.
나: 아 그렇군요...
리더: 그리고 애초에 본인이 하자고 던졌는데 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잘 끝났으니까!


어쨌든 보고는 무사히 통과됐고, 조금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워크샵을 진행하게 됐다. 조금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있을 때도 대표는 왜죠? 왜 이걸 지금 해야 되죠? 왜 그렇게 생각하죠? 등.. 정말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만큼 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기획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이먼 사이넥은 항상 Start with Why? 를 고민하며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표님은 집착 수준으로 Why에 집착을 했다. 그런 모습이 의아하던 찰나, 리더는 내게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의 역사를 짧게 설명해주었다.


매우 한정된 리소스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던 스타트업. 대표는 완벽하게 컨센서스가 맞기 전까지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다양한 시야로 Why를 파고들어 여러 조각들을 맞춰왔다고 했다. 그게 정말 될 것 같으면 자신이 밀어줘야 되는데 니들이 알아서 해 식의 플레이는 하기 싫었던 것이다.


리더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 이해가 됐다.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니 그토록 심사숙고 끝에 돈 쓸 곳을 결정해야겠지. 이해를 하고 나니 대표를 '저새끼'에서 '대표님'으로 다시 정정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를 했으니 말이다. Why가 이렇게 중요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표님이야 그렇다 쳐도 너는 대체 왜 그러세요?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막말로 지돈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더 좋은 제품 잘 만들라고 구성된 제품팀에서 문화처럼 굳어진 질문이 하나 있다.


왜 해야 하죠?


처음에는 특정 인물의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내보니 꽤 많은 비율의 사람이(특히 PO) 저 질문에 집착한다. 그냥 이 회사 종특인 것인지 다른 회사도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되는 이유가 아무리 명확해도 꼭 묻고 넘어간다. 마치 어느 교육기관에서 '꼭 묻고 시작하세요'라고 커리큘럼으로 가르친 것만 같이. 하다못해 버그 픽스나 오타를 수정하는 일에도 묻는다. 왜 고쳐야 하죠? 정말 돌아버리겠다.


당신이 지금 나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나는 일을 시작하지 않겠어 와 같은 비장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묻는다. 이것은 우선순위 판단을 위한 질문이라며 매일 같은 질문을 하며 힘겹게 스스로 설득을 위해 노력한다. 아마도 이것이 합리적인 결정을 위한 질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질문 후에는 굉장히 날카로운 양 전문가스럽게 질문했다고 생각하는 듯 어깨를 으쓱댄다. 양팔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마치 미쿡에서 몇십 년 살다온 것 같은 제스처로 한 손을 꺼내가며 지금 이것을 수정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서 묻는 거라고 되묻는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물어봤다.


왜 하기 어려운 거죠?

안 해야 되는 이유가 있나요?


당황을 했는지 말을 잇지 못하다가 리소스가 부족해서라고 서둘러 대답한다. "앱 릴리즈를 태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웹 수정이고 딱 봐도 반나절도 안 걸리는 작업인데 리소스 문제라는 게 이해가 안 되네요."라고 하니 뭐 그러면 자기가 개발자랑 리소스를 얘기해보겠다고 한다. 결정은 내가 해!라는 듯한 말투로 말이다.


안 그래도 말도 안 되게 잘게 쪼개진 도메인 제품팀이 갑갑한데, 이런 친구들을 만나면 속이 터진다. 물론 정말 너무 바빠서 당장 처리하기 어려울 수는 있다. 근데 이것을 리소스 문제로 논할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바쁘면 가서 논의를 하고 언제 정도 가능할지 확인하고 빠르게 고쳐서 제품 퀄리티를 높이는데 집중하는 것 또한 그대의 역할이 아니던가.


왜부터 시작하라는 것은 사실 최근에 들어서 생긴 사고방식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배우고 자란 사고방식이다.


육하원칙(六何原則)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기획을 하면서도 이 기초적인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문제를 풀어나가고 스토리를 구성하면 탄탄해진다. 어찌 보면 항상 이렇게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기획자의 기본기이고, 그중 하나가 '왜'였을 뿐이다. 지금껏 이런 고민 없이 기획을 해왔다면 그 자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두리뭉실한 기획서가 됐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기획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이전부터 늘 고민하며 살던 것인데, 하도 성공한 스타트업 인터뷰나 사이먼사이넥, 마티케이건 등 여기저기서 왜부터 시작했고 왜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하니 아무래도 잘못 습득한 것 같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왜'는 상대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물론, 때에 따라 고객 인터뷰나 협업자의 의도 파악, 리소스 배분을 위해 질문이 필요할 수야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왜 해야 하는지 상대에게 묻기보다 스스로 먼저 한 번 생각해보자.


왜 이것을 하자고 했을까?


왜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것을 정말 왜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고 탐구하라는 의미다.


왜라는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더 잘 해낼지' 알아내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다. 우선순위 판단을 위한 질문이라도 안 할 것을 걸러낸다기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먼저 할 것에 대해 판별하기 위함이다. 그 어떤 기획자도 PO도 사업팀도 '쓸데없이' 요청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요청을 하는 것이고 그 필요의 당위성은 요청을 받는 자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협업'의 자세다.


무분별하게 왜 해야 되냐는 질문은, 자신은 이거 해야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질문은 상대에게 '그냥 하기 싫어'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되는 질문이고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어떻게 부족한 리소스에서 이 협업 요청을 잘 풀어낼 수 있을지 심도 있는 고민을 할 때 비로소 나와야 되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왜 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잘게 쪼개 두었던 테스크를 일부분을 통합해 본다거나 반대로 크게 잡아둔 것을 잘게 쪼개 본다거나 하는 시도들을 할 수 있기에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일을 좀 더 거시적인 시야로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Why'를 묻는 것이 중요한 거지 질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질문하는 PO들을 마주할 때마다 뺀질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주니어들은 아직 단련이 덜되어 미숙하기에 나오는 질문일 수 있다.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왜 하는지 심도 있게 고민하도록 돕는 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시니어라면 그토록 쉽게 질문해서는 안된다. 모든 일의 Why는 스스로 이해하고 찾을 수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너무 두서없이 이야기한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잘 정돈해서 말한다. '왜'라는 질문을 하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Why가 있지만, 모든 일에 있어 반드시 질문을 할 필요는 없다.


해야 되는 일은 그냥 하는 거다. 왜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왜 하는지, 스스로 충분하게 고민하고 Why에 대한 답을 꼭 찾아보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