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야, 반가워!
그 어떤 작명보다도 일촌명에 심혈을 기울이고 겨우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눌러 승인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일촌이 되고 나면 괜스레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들락날락 거리며 방명록을 남기곤 했다.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 다이어리를 통해 이름만 쏙 빼놓고 마음을 전하고, 좀 더 감성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감성 필터를 마련하기도 했다. 잔잔한 음악과 한 줄 메시지로 미니홈피를 통해 지금 내 감정선을 전했다.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와 같은 병맛 문장 구성을 선보이고 퍼가요~(하트)를 남발하며 그다지 필요도 없는 남의 사진을 광적으로 수집하던 그때 그 시절, 싸이월드가 부활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없는 나의 싸이월드에는 그토록 공들여 맺어둔 일촌들과 미니룸이 남겨져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미니룸에는 사자 한 마리와 함께 쉬고 있는 나의 쪼그만 미니미가 있었고, 아직 복구되지 않은 사진첩과 다이어리의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일촌을 주욱 둘러보니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름들도 보인다. 음, 미리 끊어둬야 하나..?
싸이월드 이전에는 다모임, 프리챌과 같은 서비스가 있었다. 그 서비스들은 내가 재학 중인 학교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던 놀이터였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이 서비스들을 통해 친분을 유지하고(또는 새로운 친분들 만들고) 상대의 성향이나 주변 친구들을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원하면 구글이나 소셜로 원하는 사람의 자취를 찾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때는 이런 커뮤니티성 서비스들로 친구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모임, 프리챌을 시초로 좀 더 한국형 '개인화 소셜 네트워킹'초점에 맞춰 등장한 녀석이 싸이월드였다.
다모임, 프리챌보다는 좀 더 개인화에 집중한 이 서비스에 나는 큰 매력을 느꼈고, 과제 때문에 서비스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당시 싸이월드 기획자였던 '이람'기획자의 인터뷰를 보게 됐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처음 기획자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미래의 직업으로 삼기를 꿈꾸었더랬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남들 다 물류 기업에 대한 준비를 한창 할 때(난 무역학과 출신이다.) 홀로 싸이월드를 제공하는 SK컴즈를 꿈꾸며 스펙을 쌓아갔다. 당시에는 구글보다 더 원했던 회사였던 것 같다. 그 회사에 가겠다는 일념 하에 여러 공모전, 외부활동을 참여하며 이력서를 한 줄 한 줄 채워 넣어갔다.
SK컴즈는 못 갔지만 웹에이전시에서 처음 기획자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그렇기 신참이 됐을 때, 여전히 SK컴즈에 대한 꿈(?)을 놓지 못해 당시 SK컴즈 상무님이셨던 한명수님((현)우아한형제들 CCO)께 이메일 보내가며 꿈에 다가갔다. - 당시 한명수님은 친절하게도 내 메일에 회신도 주셨다.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 참 오래전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결국 못 간 SK컴즈는 꿈의 기업으로 남게 됐다. 이후 네이버 계열사에 이직을 했는데, 맡게 된 네이버 포털 연계 개선 건이 네이버 이사님까지 보고가 필요한 건이었다. 그렇게 이사님 성함을 검색하는데 아니, 이사님 이름이 싸이월드의 그녀 '이람'이 아니던가?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가며 이사님께 메일을 보냈던 날이 기억난다. 이런 것을 성덕이라고 하던가! 이사님은 모르겠지만 나의 작은 기능 개선에 대한 평가로 '너무 좋은 기능인데요.'라는 피드백에 혼자 기분 좋아 날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벌써 13년, 난 여전히 기획자로 살고 있다.
나를 그 오랜 기간 기획자로 살도록 눈뜨게 해 준 그 싸이월드가 다시 부활한다. 나는 싸이월드가 왜, 그토록 좋았을까? 오늘만큼은 기획력이니 사용성이니 다 날려 보내고 당시 그 감성 그대로를 꺼내어 싸이월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도 일촌을 맺으면 괜히 절친의 기분을 주었다. 개인에게 집중된 폐쇄적인 이 관계가 특별한 기분을 더해 주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처럼 구글링을 통해 나를 찾아올 수 없었다. 내 번호를 확실히 알거나, 나와 일촌인 사람들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 물론, 생년월일과 이름을 정확히 알면 검색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렇게 저 넘어 좋아하던 남학생을 조회하기도 했었지. 어차피 들어가도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그 학생의 현재 감정 상태가 어떤지, 여친은 생겼는지 그렇게라도 찾아 들어가곤 했었다. 감정에 꽤 충실한 편.
일촌평을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나중이 돼서는 헤어진 남친, 등 돌린 친구들의 이름이 목록에 쌓여 전부 삭제를 하고 다시 쌓기도 했지만 일촌평에 남겨주는 '타인이 나를 인식하는 모습'에 장난스러운 일촌평들은 '나 친구 좀 많다'하는 과시의 상징이기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스타 댓글로 유명인이 댓글 달면 팬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처럼, 동네에서 인기 좀 있는 사람이 일촌평을 달거나 방명록이라도 오픈해서 남기는 날에는 'Today'가 폭발하기도 했다.(UV, PV 또는 방문자수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내 일촌의 일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일촌평처럼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내 일촌과 친구이면 계속 친구의 싸이월드로 일촌타기를 해서 넘어가 구경을 하곤 했다. 이 친구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군 하며 상대방의 관심사나 동선을 파악하기도 했다. 사용자 행동 패턴 분석이랄까.
꼭 친해지고 싶던 아이만 찾아봤을까. 싫어했던 아이, 가까웠던 선후배, 친했던 학원 선생님까지도 싸이월드를 하던 많은 주변의 사람들을 염탐(?)하고 그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 성격에서는 그런 게 왜 그렇게까지 궁금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렇게 타고 들어가 사진 구경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개임을 알면서도 일기를 썼다. 용도에 맞게 나의 데일리 스토리를 적어내기보다는 공개라는 사실을 이용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소설에 가까운 다이어리였다. 이불킥이라는 단어는 이때가 시초가 아닐까 싶다.
싫어하던 아이와 다이어리로 싸운 기억도 있다. 대놓고 감정 소모를 할 용기가 없는 두 사람이 그렇게 소심하게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를 시기하며 싸우곤 했다. 지금이야 그 친구와 잘 지내고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표현해야 했었다. '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해!'를 대신해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고나 할까.
방문을 남기라고 만들어둔 방명록은 친구들과의 수다 떨기 또는 약속잡기 루트로 사용됐다. 주말에 뭐하냐, 쇼핑가자 등등 방명록에 달린 글에 답글을 달아가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스케줄을 예약했다.
비밀 방명록은 주로 친구들의 연애상담이나 친구 험담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누구랑 사귀기로 했다, 나 헤어졌다, 쟤는 왜 너랑 일촌이냐 등등... 비밀도 사건사고도 참 많을 나이었던 것 같다. 잠시 썸이라도 탔던 남자사람이랑 싸이월드를 공유했다간 그가 써놓은 방명록을 지우거나 아무도 못쓰게 방명록 자체를 닫아두었던 것 같다. 매우 귀찮은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시대 젊은이(?)들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지만 나처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성향의 친구들은 음악으로 감정선을 표현했다. 남친 생기면 연애 노래, 헤어지면 이별노래, 봄이 되면 봄노래, 센티해지면 잔잔한 노래. 좌측의 썸네일과 하단의 상태 메시지를 남기면 그야말로 감성 폭발 세트.
얼마 전 예능에서 도토리 시절 노래로 에픽하이, 윤하 등 그 시절 브금의 대표주자들이 노래를 부르던데 그때는 정말 많은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에픽하이 그리고 프리스타일의 천국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인디밴드로 불리는 가수들도 당시 싸이월드를 통해 유명해지도 했다. 나는 '가을방학'을 참 좋아했다.
가진 돈이 만원이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도토리로 열심히 미니미, 미니룸을 꾸미고 감성 폭발을 위한 노래도 잔뜩 사면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메타버스 시초는 미니룸이 아니었을까. 내 기억에 네이트온에서는 도토리로 문자도 보낼 수 있었다. 도토리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했다. 적어도 싸이월드라는 세상 안에서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렇게 돌아보니 싸이월드가 주려던 그 시절의 제공 가치는 '개인의 감정 소비와 관계의 연속성'이었던 것 같다.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일반 커뮤니티와 달리 나를 중심으로 감정을 소비하고 학교에서 만나던 내 주변인을 온라인에서도 지속해서 만나는 장소. 그들을 통해 주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순환들. 온라인에서 함께 웃고 울고 설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기에 싸이월드는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공간이었는가 보다.
요즘 시대처럼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진 세상에서 싸이월드가 다시 먹힐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화 아날로그 감성이 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관계 중심으로 굴러가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만큼 서로에게 '관여'하는 게 불편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허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모쪼록 여러 수난시대를 겪어오며 겨우 겨우 살아남은 싸이월드. 그 감성 잘 살려서 오래 남아주길, 나의 어린 시절 기억처럼 요즘 친구들에게도 훗날 자신에게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싸이월드를 다시 살려준 싸이월드 제트, 응원한다.(참고: 회사와 아무 관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