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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Feb 18. 2022

선택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가설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

기획자는 자고로 치열하게 사용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말이 쉽지, 사용자 생각 안 하는 기획자가 어디 있나? 어떤 기획이든 목적과 타깃을 항상 생각하고 있고 타깃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는데 가설이 내 맘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뿐이다. 대체 왜 그럴까, 이유가 뭘까?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유년시절에는 초콜릿을 먹을지 사탕을 먹을지 고민을 하기도 하고 같은 반 친구 중에 철수랑 친해질지 민철이랑 친해질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고3이 되어서는 어느 대학을 갈지(아, 물론 내 선택보단 선택받아야 가는 거였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어느 회사를 갈지(아.. 이것도 선택은 아닌..) 음.. 돌이켜보니 선택하지 못했던 것도 많았군.


아무튼!


모든 인간은 '선택'을 하게 되고 선택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된다. 초콜릿과 사탕을 앞에 두고 '사탕'을 선택한다면 사탕으로 손을 뻗어 잡을 것이고, 철수와 민철이 중 민철이와 더 짝짜꿍이 잘 맞으면 민철이에게 말을 건네게 될 것이다. 이처럼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당사자가 이것을 하겠다고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선택이라는 것이 이처럼 단순했다면, 일하기도 참 편했을 텐데..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연애가 아주 적절한 예시인데, 예를 들어 오랜만에 친구들과 여행을 간 남자친구에게 지금 시점에 연락을 하는 것이 옳은 판단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즉, 결과가 '불확실'하다.


일단 내 마음 가는 대로 '연락하기로 선택'하여 연락을 했다가 시큰둥한 남자친구의 반응에 화가 날 수 있다. 나는 내가 화가 날 것을 예측하고 선택한 행동이 아니었을 거다. 여기에서 또 선택의 문제를 맞닥뜨린다. 왜 그렇게 시큰둥하냐고 말을 뱉는 것에 대한 선택이다. 그 말을 뱉음으로써 기분 좋게 갔던 남자친구의 여행이 망쳐지는 경험을 선물하고 둘은 매우 사이가 나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는 결과적으로 싸우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연락 하나에 모든 상황들을 촘촘하게 예측하며 '연락을 했을 때' or '하지 않았을 때'를 도식화해가며 연애를 할 시간은 없다. 연애할 때 인간의 선택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행하는 것 또한 무의식의 연속이다. 행동을 어찌 완전하게 예측한단 말인가. 그걸 예측했다면 난 과거에 그렇게 멍청한 연애를 하지 않았을 거다!






너무 몰입했다. 기획자로 돌아가서... 이처럼 흐리멍덩한 안갯속을 후후 불어가며 헤쳐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기획자. 참 어려운 직업이다. 기획자는 이런 일련의 선택들을 잘 정의하고, 논리 정연하게 구조화한 뒤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제공하는 역할들을 해나간다. 그렇게 사용자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기획이다.


미래를 다녀오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가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렵사리 세워진 가설이 기획자의 예측대로 사용자들이 행동을 해준다면, 더욱이 좋은 평까지 받는다면 기획자는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 이처럼 사용자를 잘 이해하고 '좋은 가설'을 세우는 것, 그것이 기획의 핵심 중 하나다.


수많은 행동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니즈를 비교적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패턴이 모이기 전까지는 정말 수많은 가설의 검증이 이뤄져야만 한다. 그걸 인내해야만! 사용자들에게 좀 더 멋진 가치를 선물할 수 있다.





기획자들은 그 누구보다 가치 있는 선택을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설은 꼭 좋은 결과만 항상 가져오지도 않고, 아무리 연습해도 좋은 가설을 쉬우기란 쉽지가 않다.


인간의 모든 상황은 산수나 수학처럼 명료하게 수치화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는 1+1=2야 라는 산술적 논리보다, 1+1은 뭉치면 하나야!라고 말하는 게 알맞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그것을 가설로 세워서 어떤 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완벽할 수 없고 완전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많은 회사에서 조금 어색한 가설이라도 빠르게 출시(MVP)하고 보완해가는 과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좋은 가설'을 세워 제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나도 여전히 연습하고 훈련 중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자들이 '선택하게 되는 이유'를 만들면 된다.(이게 맘처럼 안돼서 그렇지...) 사용자를 단순히 생각하기만 하고 기획을 해서는 안된다. 별다른 근거 없이 내 감에 의해서 '사용자는 이렇게 할 것 같다'는 잘못됐다. 그건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일 뿐이다.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매우 추상적일 수도 있고 데이터 드리븐에 근거한 제법 명확한 가설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에 근거한 가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선택'을 이해해야만 한다. 데이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대체 왜! 이 사용자는 내 것을 선택할 것인가? 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4인치 드릴 공구를 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1/4인치 구멍을 뚫고 싶은 것뿐이다.”(“People don't want to buy a quarter-inch drill. They want a quarter-inch hole.”)

-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  


위 내용은 마케팅에서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지만 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기획을 하는 데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수많은 대체제 안에서 사용자의 '선택'을 받는 것, 그 행동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사용자는 벽에 액자를 걸기 위해 사실 꼭 드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드릴을 구성하는 좋은 재료, 완벽한 성능, 신박한 기능, 멋진 외관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용자는 그저 1/4인치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도구라면 그것이 쇠젓가락이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내가 드릴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쇠젓가락(또는 뚫는 그 어떤 도구)을 상대로 내 드릴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쇠젓가락이 구멍이야 뚫어낼 수 있겠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사용자로 빙의해서 쇠젓가락으로 벽을 뚫어본다. 으아, 내 힘으로는 안될 것 같다. 그렇다! 그 힘을 드릴이 대신 제공해줌으로써 구멍을 아주 쉽게 뚫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드릴'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다. 그 이유부터 이해하고 가설이 시작돼야 한다.


물론 꼭 모든 선택이 위의 예시처럼 단순하게 이유가 갖춰지지 않을 거다. 심미적으로 홀린 듯 '그냥 예뻐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고 '당장 배고파서 아무거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획자라면 단순히 '사용자를 위해서'라는 추상적인 접근보다 선택의 본질을 생각하며 좋은 가설을 세우려 노력하고 연습하자.




패션 이커머스는 특히 그 선택하는 이유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다. 구매자 입장의 취향, 트렌드, 개성 등 많은 것들을 따져봐야 하고 판매자 입장에서는 쉽게 팔고, 알리고, 관리하는 포인트까지 따져봐야 한다. 그저 남들 다 하니까 우리도 대세에 탑승해야 하지 않겠어? 따위의 가설은 좋은 가설이 아니다. 그러지 말자 제발.


최근 판매자 입장에서의 업무를 두고 깊게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신나게 달려들었다. 자료들도 방대하게 찾아보고 이러지 않을까 저러지 않을까 가설들을 세워본다. 그러나 고민의 고민을 거듭할수록 터무니없는 가설을 세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욱 늘어놓는 나를 발견하면서 참 많이 반성했다. (그렇게 문서는 문서보관함으로.. 잘 가...)


현재는 PO라는 직군이기에 꼭 기획자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획자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PO든 PM이든 기획자든 직군명이 조금씩 다를 뿐, 고민하는 포인트는 늘 같아야 한다. 도대체 사용자들은 왜, 이것을 선택하고 왜 필요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사용자로 하여금 행동하게 할 것인가!


'사용자 선택의 이유'라는 근본을 잃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오늘도 불태워보자! 불금!!




덧. 스타트업 적응하기 정~말 빡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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