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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n 14. 2023

스펙, 연차보다 ‘사람’을 보자

다시 깨닫게 된 채용의 중요성

지지리도 일이 안 풀리는 날이 있다. 죽을 만큼 맞지 않는 내 상사와 마찰로 하루 종일 미간에 주름이 가시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이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 답답함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아무리 고뇌해도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차가운 레드불 음료캔을 집어 들고 조용하고 구석진 회의실로 향한다. 창 밖의 수많은 직장인을 보며 그래 나만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고생은 할만하지, 앓는 소리 하지 말자 라며 레드불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자리로 가서 겨우 힘을 내본다.


슬랙이 울린다. 상사다. 으아, 미치겠다. 또 딴지를 건다. 프로젝트 방향성에 대한 의심이다. 모두의 컨센서스가 하나로 향할 때, 심지어 대표마저 얼라인이 된 프로젝트를 마치 영화 ‘로키’의 시간선을 어지럽힌 변종처럼 자꾸 딴 길로 새 버린다. 그를 붙잡고 평온한 시간선으로 겨우 다시 들여놓는 설득의 노력을 수도 없이, 7개월째 반복해서 하고 있다. 연말 성과를 운운하며 이 프로젝트 성공 못시키면 모두 내 책임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지친다. 결국, 번아웃이 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언제 떠날까를 고민하며 괴로운 매일매일을 보내던 찬란한 어느 날, 새로운 입사자가 D가 들어온다. 인터뷰 당시에도 언변이 뛰어나 상사 눈에 하트가 들어온 상태로 맞이했던 사람이다. 사실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손발을 맞출 것이라는 계획이 없었기에 크게 관심을 갖진 않았다. 더욱이 언변이 화려하고 뛰어난 경우, 많은 경우에서 탄탄한 겉모습에 비해 근육이 부실해서 실망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기에 정말이지 솔직한 말로 온보딩을 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런데 입사 일주 전, D가 입사하면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나눠서 진행하거라 갑작스레 명하는 상사의 말에 당황을 했다. 아니, 인터뷰때는 퇴사자 백업으로 뽑겠다더니 왜 갑자기?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신중하게 봤을텐데.. 라며 후회를 잠시 했었더랬다. 그리고 곧 ‘아니다, 어차피 떠날 회사인데 뭐’ 라는 생각과 함께 좀 귀찮긴 하지만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회사에 마음이 붕 떠 있는 상태라 빨리 인수인계하고 떠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D는 입사를 했고 예의 바른 대학생의 느낌이 물씬 나는 뿔테안경을 쓴 젊은 친구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인터뷰를 하도 많이 봤던 터라 미안하게도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 뇌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같이 일은해야하니 기초적인 온보딩은 해야겠고, 일단 별 기대 없이 짜인 각본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 사람, 좀 독특하다. 궁금한 게 무지 많다. 뭐지 이 질문충은? 정말 끝도 없이 셀 수없이 질문을 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가보다 하고 친절히 대해줬는데 일주일 정도 흘렀나 바빠죽겠는데 왜 이런 거까지 질문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약간 귀찮았지만 그렇게 2주가 후딱 흘렀고 D는 퇴근 전 인사를 한다.


“달하님 덕분에 프로젝트에 더 깊게 얼라인이 되었어요. 그동안 정말 혼자 너무 고생하셨을 것 같아요. 다음 주에는 달하님 손을 덜 수 있게 좀 더 빠르게 흡수할게요!”


이 멘트를 듣자마자 지난 2주 동안 D에게 했던 내 부족한 마음이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너무 미안했다. 나를 존중하고, 내가 했던 일을 애정 있게 바라보고, 부족한 나에게 배우고자 열심히 행했던 질문을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대충 알려준 것은 아닐까, 그냥 나의 편견과 색안경이 진심으로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나와 ‘함께’ 일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고자 한 사람의 열의를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히 내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오픈을 앞두고 들어온 터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뭐든 자기가 알아가 보고 처리하겠다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고 주니어임에도 어른스럽고 장점이 많은 사람 같았다. 실제로 D의 흡수력은 대단했고 내 일손을 빠르게 덜어주었다. 나 역시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대화하며 서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프로젝트를 함께하기 시작했다.


D는 외부의 좋은 도구나 소식들을 가져오며 나와 공유하고자 했고 지난 경력이 길지는 않았지만 배워온 모든 것을 우리의 프로젝트에 접목시켜보려 했다. D가 공유해 주는 내용과 인사이트를 통해 그간 혼자 짙은 안개를 걷다가 어느 순간이 되자 확 걷어진 느낌을 받게 됐다. 외롭게 혼자 터벅터벅 힘없이 걷던 길이 가끔은 하소연도 하고 농담도 하며 즐겁게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


D는 지표 수립이 빈약한 내게 자신도 부족한 영역이라며 함께 채워나가자고 이런저런 자료를 공유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로 의견이 충돌되는 지점은 충분하게 얼라인 될 때까지 논쟁이 이어졌고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프로젝트의 지표 위계를 세웠고, 이제 세워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 벗고 뛰는 일만 남았다. 진정한 동료란 이런 사람이 아닐까.


너무 당연해서 말하기도 민망한, 그러나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을 해볼까 한다.


바로 ‘사람’이 전부라는 것. 회사라는 공동체 속에서는 그 사람의 화려한 스펙이나 경력, 인맥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일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을 맞이하는 함께하는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다.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모든 일을 ‘함께’ 나누고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 말이다.


상사의 눈에 하트가 들어서 뽑은 사람이라 처음부터 색안경을 낀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하며, 언젠가 이 회사를 떠날 때 꼭 D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덕분에 척박하고 외로웠던 이 회사의 생활을 잘 버티고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난 번아웃에 이미 접어들었지만) D덕분에 희미하게나마 기운을 내고 있는 중이다. 예전과 달리 급하게 당장 떠나야된다는 생각은 덜해졌으니 말이다.


스타트업은 특히, 주니어든 시니어든 연차도 스펙도 중요하지 않다. 가끔 스타트업은 ‘생존싸움’이기 때문에 소위 비즈니스 임팩트를 잘 내는 사람을 뽑으려 애쓰는 것 같은데 잘 판단하면 좋겠다. 제 아무리 보이는 게 월등하고 좋아도 사람 자체가 엉망이면 고쳐쓸 수 없다. 일을 되게 하려는 사람, 동료에게 힘을 부여하는 사람, 문제를 깊게 파고드는 사람,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끊임없이 소통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함께 일하기 전에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맞긴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채용할 때는 다른 것보다 이 사람은 동료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여 채용할 수 있도록 하자.


다시 한번 돌이켜보자. 너무 경험과 스펙에만 집중해서 인재를 찾았던 것은 아닌지. 사람,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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