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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Oct 17. 2024

채용 담당자에게 보내는 글

안 좋은 기억은 오래갑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직한 지 벌써 1년 남짓 지나기도 했고 최근 자주 경험하게 되는 커피챗에 대해 할 말이 좀 생겨서 기록을 남겨놔야겠다 싶었다.


나는 본디 한 회사에 오래 있지 못하는 성향이다. 그러다 잘 맞으면 5년 이상도 가지만 대체로 쉽사리 회사에 정착하지 못한다. 물론 꼭 1년은 겪어보는 편이지만 그 이상 지나면 드릉드릉하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고 두 번째는 더 좋은 제안을 통해 옮기기 때문이다.


후자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 시니어가 되어서인지, 요즘 채용 트렌드가 그래서인지 커피챗 제안이 자주 온다. 이전에는 정말 채용을 위해 소위 스카웃 제안이 왔었지만 이제 가벼운 만남(?)을 통해 핏을 먼저 체크하고 잘 맞아 보이면 그때부터 채용 제안을 시작하는 것 같다.


매우 좋은 제도라는 생각을 했다.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데 그걸 먼저 맞추는 것이니. 소개팅도 그렇지 아니한가. 일단 만나서 너랑 나랑 잘 맞는지 체크하고 몇 번 보다가 연애로 이어지듯(성공률은 낮은 것 같지만) 회사도 몇 번 대화하고 본격적으로 채용에 적합한지 알아보는 것.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라서 좋다.


그러나 많은 회사들이 한 놈만 걸려라 식의 낚시성 커피챗 제안을 하는 것 같아서 그 바닷속 물고기로써 한 소리 하고 싶다.


최근에도 꽤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커피챗 제안을 해왔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이직 의사가 없다, 안 하겠다는 거 굳이 나를 설득하며 진솔하게 얘기하는 모습에서 그럼 얘기나 나눠볼까 싶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실제 커피챗 진행을 약속했던 날, 갑작스럽게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며 일정을 다음에 다시 잡겠다고 한다. 알겠다고 태연하게 얘기했지만 상당히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 ’다음‘은 없었다.


커피챗은 가볍게 만나는 자리이지만 그 회사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렇기에 나는 대체로 커피챗을 할 때 많은 정보를 구태여 시간 내어 찾아본다. 대표가 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이끌고 갈 건지, 그 미래에 대한 구성원의 생각은 어떤지, 이 비즈니스가 왜 매력적인지 등 많은 인터뷰와 회사 소개를 찾아보게 된다. 대체로 제안을 받아들이는 회사들은 이름은 들어봤을 회사들이라 정보는 많다.


그렇기에 그 정보들 속에서 내가 궁금한 것, 예를 들면 이 비즈니스가 시작된 이유, 진솔되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함께할 구성원들은 이 사업에 진정성이 있는지 등 다방면으로 질문을 구상하고 정말 마음이 뛰는지 찾아보기 위해 노력한다. 아쉽게도 아직 단 한 번도 마음이 뛰어서 꼭 가고 싶다 하는 커피챗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그만큼 준비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준비가 무색하게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약속이 무산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잡기로 한 약속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물론 그분도 이유가 있겠지. 원래 공석이던 자리가 채워졌거나 나보다 괜찮은 후보자가 탐색됐거나 등 회사차원에서 굳이 시간을 쓸 필요가 없어졌을 수 있고, 코로나가 걸렸거나 하는 개인적인 사유일 수도 있다.


사유가 어떻든 나 같은 예비 후보자(?)는 그다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다시 만날 것을 대비해 준비했던 질문을 더 심화하고 연락을 대기하게 된다. 이직을 위해서도 아니고 갈 회사가 급해서도 아니고 꼭 가고 싶어서도 아니다. 날 찾아서 보내준 그 정성 하나하나의 제안에 진심을 담기 때문이다.


내가 좀 유별나게 준비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기에 내게 주었던 제안은 깔끔히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 사유가 다른 분을 채용하게 됐어요 든 제가 이직하게 됐어요 든 알려는 줘야 기대를 없애지 않겠나. 마치 불합격이 됐는데 별도로 불합격됐다는 얘기도 없이 그냥 수개월이 흘러가는 것 같달까.


더욱이 너무나 뛰어난 네임드 인재들을 모시기 위해 나 같은 일개 직장인에게 투입할 시간이 모자라서 취소하는 것이라면 ‘네트워킹을 위한’이라는 거짓 발언도 삼가였으면 한다. 네트워킹 뜻을 모르는 것도 아닐 건데 말이다. 애매한 인재면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보단 그냥 처음부터 목적을 얘기하는 게 낫다.


취소된 이유가 명확하면 준비했던 커피챗이 무산된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회사로 이직하려고 응한 게 아니니까 괜찮다. 그러나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려서 홀려놓고 하루아침에 취소?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위와 같은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 한 두 번은 그래, 나 말고 얼마나 많은 후보자가 있겠어. 그 사람도 사람인데 까먹을 수 있지 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그들은 그게 직업 아니던가. 회사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HR팀 아니던가.


이직은 이 세상 직장인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뜻이 있어서 반드시 어떤 직장을 가야겠다 생각하는 사람 제외하고는 대부분 좋은 처우와 권한에 마음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게 직장인이다. 그렇기에 작게라도 연결고리가 생기면 언제든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그렇게 한 번 물게 된 회사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경험에 의해 회사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기억에 그려낸다. 안 좋은 기억이 각인되는 경우 그 회사에 아무리 맘에 드는 자리가 생겨도 지원할 의사가 안 생기고 일단 거르게 된다. 어쩌면 그 자리에는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 적합한 인재 하나를 잃는 셈인 거다. 그렇게 약 5개 정도의 회사는 내 머릿속에는 각인되어 절대 가지 않을 회사가 됐다.


링크드인에서 활동하는 많은 스타트업 대표를 포함해 채용 담당자, 헤드헌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세상에 많은 훌륭한 인재가 있겠지만 그만큼 훌륭한 회사도 많다. 선택권은 양쪽에게 다 있는 것이고, 어느 한쪽이 유리한 상황도 아니다. 적어도 서로 약속한 것은 이행하고 이행 불가하면 명확하게 약속의 불이행에 대한 사유를 서로 납득하길 바란다.


하도 답답해서 글로 좀 써봤다. 이제 마음 쓰는 것도 지겨워서 커피챗은 당분간 응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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