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신랑의 입맛을 많이 닮았다. 간장게장, 순댓국, 곱창 등 여러 가지를 잘 먹는다. 그에 비해 나는 된장국과 김치찌개 정도만 먹다가, 이런 음식을 먹은 지 몇 년 안됐다.
아이가 어릴 때 식당에 가면,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엄마, 꽃게 살 발려줘” 아이의 말 한마디에 신랑은 딸아이 그릇에, 나는 아들 그릇에 열심히 꽃게 살을 발려주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에 밥이 식는지도 모르는 채, 눈으로 꽃게 살도 같이 먹으며, 웃곤 하였다. 살점 하나라도 놓칠까 열심히 발려주다 보면, 두 손은 어느새 양념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며, 식당에서 먹는 꽃게 양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지금처럼 무한리필점이 많이 없을 때라 양껏 먹이기도 힘들었다.
“엄마, 엄마가 해주면 안 돼? 맘껏 먹어보고 싶어” 아이의 말에,
“할 줄 모르는데, 했다가 맛없으면 어떻게 해?”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냐. 엄마가 해 준 요리면 다 맛있어”
“엄마 꽃게 손질 안 해 봤는데...”
“엄마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말 한마디는 나를 자극시켰고, 나는 그렇게 용감한 엄마가 되었다. 실은 꽃게나 생선은 나하고는 거리가 먼 재료들이다. 비린 맛과, 냄새 때문에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습관은 결혼 후에도 계속되고 있었으며, 겁도 많은 편이라 살아있는 해산물은 만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신혼시절에는 된장찌개와 카레 밖에 할 줄 몰라서 요리책을 보고 하나씩 해보았다. 아이가 하나, 둘 생기고 건강도 잃게 되면서, 그나마 보던 요리책도 보지 않고 늘 하던 것만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망둑어 낚시를 갔다 온 아이가 망둑어 매운탕이 먹고 싶다는 말에 망둑어도 손질하게 되었고, 게장도 먹고 싶다는 말에 나는 또다시 슈퍼우먼이 되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에 좀 더 좋은 부모, 멋있는 부모로 성숙해 가기도 한다. 아이는 때로 훌륭한 스승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공자의 말처럼,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 자식이라고 하여 아이에게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생물 꽃게를 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비닐봉지에 싸인 꽃게는 계속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내 얼굴은 점차 흙빛이 되었다. 꽃게 다리가 떨어질 수도 있기에 한 마리씩 꺼내야 하는데, 손질할 통에 봉지채로 쏟아부었으며, 꽃게는 그 기회를 놓칠까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꽃게가 하얀 거품을 뽀글뽀글 품어대고 있으면, 저걸 어찌 손질해야 하나 걱정이 마구 몰려왔다. 처음에는 집게발에 물릴까 걱정되어 목장갑 위에 고무장갑도 끼었고, 찬물에 기절시키면 덜 움직일까 싶어 그렇게 손질도 해보았다. 양념게장의 경우는 뚜껑과 몸체를 분리해서 양념해야 하는데, 뚜껑을 분리할 때 발버둥 치는 꽃게의 움직임에 심장은 단거리를 뛴 선수처럼 쿵쾅거렸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생물 꽃게는 꽃게의 안 좋은 균을 죽이고, 찰진 살을 위하여 몇 시간 냉동했다가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는 꽃게 값이 금값이라, 냉동 꽃게를 가지고 간장게장을 만들었다. 저렴한 가격에 양껏 살 수 있고, 속이 꽉 찬 것으로 고르면, 진정한 밥도둑이 아닐 수 없다.
<간장게장 만드는 방법>
양조간장 1,200ml, 사이다 750ml, 물(밥공기 한 그릇), 청양고추 4개, 홍고추 2개, 양파 1개, 생강 큰 거 4개, 청주 50ml(소주로 대체 가능), 마늘 10개, 매실원액 50ml
-. 사이다 빼고 나머지 재료들을 넣고 끓여주세요.
-. 끓기 시작하면, 아주 약한 불에서 20분 정도 더 끓여주세요.
-. 불을 끄고, 사이다를 넣어서 젓고, 식혀주세요.
-. 꽃게는 통에 꽃게의 배 부분(삼각형 모양)이 위로 올라오도록 해서 차곡차곡 쌓아주세요.
-. 식힌 간장 물을 꽃게가 잠길 때까지 부어주세요.
-. 상온에서 하루 정도 숙성하세요.(그때의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 꽃게를 먹기 시작하면, 김치 냉장고에 넣어서 하루정도 더 숙성해주세요.
숙성 후 다른 통에 2~3일 먹을 양의 꽃게만 담고,
나머지는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었다가 자연해동 후 드시면 돼요.
(꽃게는 간장 물에 담가진 채로 계속 놔두면 간장물이 계속 스며들어,
꽃게가 점점 짜져요)
-. 뚜껑을 딴 후 뚜껑은 밥에 비벼서 먹고, 가슴 털은 잘라서 버리고, 다리는
먹기 좋게 자른 후, 간장 국물을 자른 꽃게 살 위에 골고루 뿌려서 먹으면 돼요.
나는 비린 맛의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간장게장을 담기 이전에는 양념게장만 먹었다. 맛있는 게장을 담기 위해서는 맛도 봐야 하기에 조금씩 먹다 보니, 지금은 한 마리 정도 먹는다. 내가 담가서 일까? 자꾸만 간장게장으로 젓가락이 가곤 한다. 때론 아이처럼 손질하면서, 작은 다리를 집어먹곤 한다. “음, 이번도 잘 되었어”라고 말하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게장 종류를 담지 못하는 친정엄마에 비하면, 나는 파워풀한 슈퍼우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간장게장에 신랑은 할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던 사람도 신랑이라, 할머니의 게장은 여러 추억이 어우러져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단맛을 내는 재료도 들어가지 않아서, 처음에는 맛있게 간장게장을 먹지만 나중에는 게장이 괸다고 한다. 식구도 많았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그런 게장이라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 맛에 홀릭한 신랑은 간장게장은 원래 짠맛이라고 단정 지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십 년 넘게 추억의 산물로만 있던 게장은 나의 달달한 사랑 맛을 얻은 후, 가끔은 술안주로도 애용된다.
숙성된 간장게장
간장게장의 뚜껑을 따고 먹기 좋기 몸통을 자르면서부터, 살이 꽉 차있는 몸통과 노란 알들에 침이 고인다. 냉장고에서 게장을 꺼내올 때부터 아이는 나의 껌딱지가 된다. 간장 게장을 자를 때도 한 점씩 얻어먹기 때문이다. 자르다 떨어진 작은 살점도 아이 입에 쏙 들어간다. 아이는 나의 사랑 맛에 자꾸만 다리 하나 더를 외친다. 자른 꽃게 살 위에 간장 물을 끼얹어 놓으면, 간장 물을 한 번 더 입어서 인지 게장의 살은 보기만 해도 영롱한 간장 게장 느님이다. 한 입 무는 순간 입 안 가득 살들이 퍼지면서, 간장의 짭조름한 맛과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그 순간 얼른 뚜껑에 밥을 비벼서 내장의 고소함까지 더해지면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게장 한 마리 더를 부르는 순간이다. 간장게장은 진정한 밥도둑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이웃의 말처럼, 밥도둑이라면 간장게장에 수갑을 채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수갑을 옆에 두고 먹지 않아서 인지, 10마리의 꽃게는 이틀을 채 넘기지 못한다. 다음에는 수갑을 미리 장만해 두어야 할 거 같다.
처음에는 매번 새로 간장 물을 끓여 간장게장을 담갔다. 어느 날 하수구에 버려지는 꽃게의 사랑이 아까워 조금씩 간장 맛을 보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간장게장을 다 먹고, 국물이 깨끗하면, 간장 물을 끓여서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추가적으로 양념을 해서 간장게장을 담근다. 5분 대기조로 대기하고 있는 간장 물 덕분에, 냉동 꽃게나 냉동 새우로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한 번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간장게장은 무한한 사랑의 맛을 갖게 되었다.
오늘도 갓 지은 밥 한 숟갈에 간장게장을 먹으면서, 각자 색이 다른 사랑의 맛을 생각하지만, 간장게장의 사랑 맛은 무지개처럼 아련히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