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야사를 좋아하시나요?
저도 야사를 무척 좋아해요. 뒷이야기의 재미도 있지만, 어떤 순간의 선택과 의지, 그리고 그 결과가 늘 궁금하거든요.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가끔 '왜?'에 꽂힐 때가 많아요.
그럼, 꼬마 마녀의 야사를 보기 전에 먼저 찐 야사부터 들려드릴게요.
위 사진은 제가 아가씨 시절, 시 100편을 기념으로 묶어 만든 작은 시집이에요. 제목은 《꼬마 숙녀의 바다》였죠. 첫 페이지에는 책장을 빨리 넘기라는 의미로 문고리 이야기를 적어 넣기도 했고, 소제목을 워드로 뽑아 그림까지 그려 넣기도 했어요. 여기저기 투고하며 상도 받곤 했어요.
브런치 작가를 준비할 때 '꼬마'라는 단어를 다시 가져오고, 숙녀보다는 마녀 이미지가 더 어울릴 것 같아 《꼬마마녀》라는 필명이 탄생했어요. 중세의 마녀는 큰 항아리에 이것저것 넣어 아픈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었죠. 저도 그런 마음으로 제 항아리에 개구리 뒷다리만 뺀 여러 재료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보고 싶었어요.
15살 무렵에 시 100편 넘게 썼고(그 시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요), 아가씨 시절엔 200편 넘게 쓴 것 같아요. 신랑을 만났을 때도 시를 썼는데, 제가 고른 두 편에 담긴 느낌을 신랑이 정확히 읽어주어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그 이후는 숫자를 세지 않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도 다작을 했다는 사실이에요. 꼬마마녀의 찐 야사, 재미있으셨나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꼬마 마녀의 야사로 들어가 볼게요. 지금 제 '항아리'의 모습을 잠깐 보여드릴게요.
제 항아리에는 늘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가 들어가요. 그날의 감성에 따라 맛도 달라지고, 마치 오늘의 스페셜 메뉴처럼 그때그때 다른 향을 그려요. 재료는 여러 곳에서 공수해요.
직장 생활, 영화와 책, 사진, 대화, 요리, 반려동물… 그리고 가끔은 감정 이입이라는 특수 조미료도 사용하죠.
예를 들어, 부부 싸움 중 신랑이 저를 ‘쌈닭’ 같다고 한 말에서 시 《쌈닭의 유래》가 나왔고, 제 시 《달빛 소금쟁이》에 DEAR CIEL 작가님이 “피겨 스케이팅 타는 것 같다”고 달아주신 댓글 덕분에 소금쟁이의 구애를 그린 《달빛 세레나데》가 탄생했어요. 이렇게 누군가의 주파수에 제 더듬이가 접속될 때도 있어요. 그게 꼬마 마녀의 작은 마법이겠죠. '쌈닭의 유래'는 출간 예정 시집 《시큼에서 상큼 사이》에 실렸고, 소금쟁이 시 1탄은 브런치에서 11월 말까지만 보실 수 있고, 2탄은 곧 시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요리를 좋아해서 요리 재료로 시를 쓰기도 해요. 김밥, 미역, 간장, 된장, 고추장…(된장은 아직 항아리에서 익는 중이에요. 언젠가 맛있게 끓겠죠? ㅎㅎ)
미역은 사투리로
"그래도 내사마 부산 미역 아이가",
간장은 대화체로
"얼마나 짝퉁이 많기에 너는 진간장이냐"
이라고 썼어요. 김밥과 고추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렸어요. 어떤 항아리인지 궁금하시면 출간될 시집에서 확인해 보세요.
아직 시를 잘 아는 건 아니어서, 대화체·사투리·은유·삼행시·서정시·장시 등 여러 항아리를 번갈아 사용해요. 아직 서툰 항아리가 있다면 바로 ‘장시’예요. 이번에 생태시를 넣어 장시 항아리에 숙성시켜봤는데, 이도 저도 아닌 맛이더라고요. 그래도 약간의 휘핑된 시럽 맛은 봤으니, 조만간 다시 장시 마법을 부려보려 해요.
감성 사진을 좋아하는 저는 필을 받으면 사진처럼 한 장면이 먼저 떠올라요. 감정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그 장면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요. 때론 며칠씩 걸릴 때도 있어요. 그렇게 쓰고 나면 그 장면에 딱 맞는 항아리로 자연스럽게 빚어져 있더라고요. 여러 항아리를 써보고 싶지만, 어느새 손이 자주 가는 '애착 항아리'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ㅎㅎ
퇴고는 시에 따라 바로 하기도 하고 며칠 숙성하기도 해요. 그 사이 새로운 장면이 떠오르면 또 다른 시가 태어나고요. 퇴고에서는 마지막 숨 고르기를 해요.
가끔 "시 한 편 써봐"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 저는 늘 이렇게 말해요. "시는 술술 나오지 않아." 물론 술술 쓰는 시인도 있겠지만, 저는 늘 난산과 숙성을 거쳐야 해요. 주변에 보여줄 때는 쉽게 쓴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시 속에는 저의 시간과 감정이 조용히 숨어 있죠.
예전에는 작은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시를 썼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쓰고 퇴고까지 해요. 90% 정도 다듬어진 시는 다시 하얀 노트에 연필로 옮겨 적어요. 그리고 온전히 흐름을 읽어보며 마지막 단어의 숨결을 확인하죠. 마지막 단어의 힘은 정말 커요. 그 한 단어가 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하거든요.
꼬마 마녀의 항아리 이야기는 재미있으셨나요? 시인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시를 어떻게 써요?”라는 질문이에요. 출간 시인을 꿈꾸는 지금 이런 대답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제 방식은 이래요.
"느끼는 대로 쓰세요
다작하고, 다독하고,
필사해보세요
그리고 필사한 시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보세요.”
제 방식이 모두에게 정답일 수는 없지만, 도움이 된다면 여러분의 항아리에도 살짝 넣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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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출간 예정 시집 《시큼에서 상큼 사이》를 위한 연재 시 4편은 모두 마무리됐어요. 앞으로 올리는 시는 출간 시집에 실리지 않는 작품들이에요. 꼬마마녀의 시는 12월 10일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어떤 항아리로 찾아뵐지는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