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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그렇게도 좋다

아이와 함께 봄 만끽하기

by 도토리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아주 어릴 적에는 단순히 내 생일이 봄이었기에 좋아했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유독 추위를 많이 타다 보니 겨울은 패스, 여름은 짧고 얇아진 옷차림에 내 콤플렉스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계절이라 패스, 가을은 그냥 이유 없이 자주 울적해지니 패스... 그나마 봄이 다른 계절보다 낫다는 정도였다.


봄을 좋아한다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 좋다던 봄을 매번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 같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라지만, 학생신분을 졸업하고 나서도 여전히 직장인으로서 학교에 남아있던 나에게 1월은 끝이고 3월이 항상 시작 같았다. 내향형인 나는 매 3월마다 학생일 때는 새 학년에 어떤 친구들과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라는 걱정에, 교사일 때는 어떤 아이들과 어떤 학부모님을 만날까라는 걱정에 바짝 긴장하며 살았다. 그래서 봄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나 보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 봄 하늘과 어우러지는 봄꽃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다양한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노래를 불러대는지 꽃이 있는지도 몰랐던 아파트 화단 회양목에 꿀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꽃가루를 모아대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하며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심 갖지 못했던 봄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이제 막 8-90cm를 웃도는 아이의 키에 맞춰 내 몸을 숙이다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길가에 여기저기 피어 있는 민들레와 쑥, 본받아야겠다 싶을 만큼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개미와 벌, 산책하는 강아지와 따스한 햇살아래 일광욕하는 길고양이들, 잘 가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으' 하는 아이의 손끝을 따라가 보면 보이는 새와 나비들... 그중 무엇보다도 신기한 건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오므려져 있던 꽃봉오리였는데 하루아침에 확 펴져 만개한 꽃들이다. 봄꽃은 벚꽃이 최고인 줄 알았건만 소담한 목련은 푸른 봄하늘이랑 너무 잘 어울려 예쁘고 조그만 개나리는 꼭 우리 딸아이 머리핀으로 만들어주고 싶을 만큼 올망졸망 귀엽다. 가을 내내 우리 아이들이 열매 주웠던 산수유의 꽃은 저렇게 생겼었구나.


나는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눈에 봄을 담고 기억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하얀 민들레가 어디 없나...'후' 불게 해주고 싶은데... 나비는 어디 갔지 나비 잡기 놀이해야햐는데... 벚꽃 다 떨어지면 이제 어쩌나 벚꽃 보며 '벚꽃팝콘' 동요 부르는 거 참 좋아하는데....

"떨어지는 벚꽃 잎 잡으면 소원이 이뤄진대!"

아이랑 같이 벚꽃 잎 잡으려고 체면도 잊은 채 달리고 뛰고...

"여기 이거 다 쑥이야. 이걸로 너희가 좋아하는 쑥떡도 만들고 쑥국도 끓여 먹어. 뜯어서 냄새 맡아볼래?"

괜히 맨 손으로 쑥을 캐다가 손 더러워지기 일쑤

아이를 키우며 나도 아이처럼 산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동안 놓치고 지나쳤던 것들이 새삼스레 신기하고 경이롭고 재밌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꾸 아이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 30년 넘게 살면서 내가 온전히 즐기고 느끼고 좋아해 주지 못한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서이다. 30년 동안 이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고 사랑해 주었다면 얼마나 내 삶이 더 알차고 즐거웠을까. 이제야 이렇게 봄을 사랑하고 즐기는 법을 알게 되다니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 아닌가. 그래도 뒤늦게라도 아이를 통해 이런 시선을 가지게 된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물론 아직은 휴직 중이라 내 마음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 어쩌면 내년에 또다시 이런 마음을 잊고 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참 그거 너무 슬픈데... 부디 그때도 아이들을 통해 봄을 만끽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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