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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e Feb 27. 2024

여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마흔이다.

마흔이 멀다고 느껴지지만 마흔은 조용히 찾아온다.

“ 생일 축하해요. 언니~”

“ 생일 축하해요. ‘ㅂ ㅎ’ 누나!”

“ ‘ㅂ ㅎ’? ‘ㅂ ㅎ’ 이게 모지... 아.. 북한인가? ”

“ 북한이래 ㅋㅋㅋㅋ ”     


마흔 살 생일 축하 톡을 받으면 생긴 해프닝이다. 그 후 일 년은 난 북한 언니로 살았다. 마흔한 살이 돼서 탈북(?)할 때까지.. 왜 그 순간 “불혹”보다 “북한”이 떠오른 건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내가 마흔이 되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공자가 말한 흔들림이 없는 나이 “불혹”이 된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 중엔 언니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아. 내가 나이가 많구나..’라는 생각을 잘 안 하고 살았다. 그러다 마흔이 됐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됐을 땐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서른아홉에서 마흔은 좀 달랐다. ‘이제 중년으로 접어드는구나!’라는 느낌이 들면서 ‘중년의 내 모습이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직 미혼이라는 점도 더 크게 느껴졌다. 낯선 우울함과 불안함이 종종 찾아왔다.     


여태까지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삶을 주어진 대로만 살았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막연히 나의 마흔의 모습이 지금과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마흔이 되면 어떻게 살고 있어야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 준비하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우울해졌다가 동시에 미래가 걱정돼서 불안해지곤 했다. 친구들과 얘기해 본 결과 대부분 그랬다. ‘마흔은 원래 그런 나이구나, 다들 마흔은 처음이구나 나처럼.’ 조금은 위안이 됐다.     


어릴 때 생각했던 40대와 40대 싱글녀인 현재의 나는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기로 했다.     


동양의 철학자 공자는 마흔을 흔들림이 없는 나이 “불혹”이라고 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40대의 모습은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고 안정적이고 단단한 느낌이다. 어떤 어려움도 부모님이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어른의 모습이다. 40대 싱글녀인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 봤다. 책임져야 할 자녀는 없지만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은 있다.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은 있다. 가끔 흔들림은 있겠지만 공자의 “불혹”을 흉내 내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중년을 맞이하며 찾아오는 불안이나 우울함은 아직 나를 흔들리게 한다.      


물론 지금은 안다.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마흔도 불안하고 힘든 40대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평균 수명 60세도 안 되는 공자의 시대와는 다르다. 공자의 “불혹”을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그 흔들림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의미로 말이다. 내가 왜 흔들리는지 생각해 보고 나머지의 시간을 준비해야만 한다마흔이 됐다고 “불혹”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흔을 시작으로 “불혹”의 내가 될 수 있다면 마흔이란 나이는 큰 의미가 있다.     


서양의 심리학자 “칼융”의 이론에 따르면 사춘기부터 30대 중반 정도까지는 자존심의 지배를 받는 시기라고 한다. 이때는 딱히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지 않아도 주변의 평가와 인정으로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다. 그러다 40에 가까워지면 조금은 달라진다. 살아온 세월이 쌓이고 경험이 늘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삶의 형태가 달라지며 나와 비교할 일도 생긴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된다. 40대쯤 되면 여태 자신이 외면했던 자신의 일부를 마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흔이 되고 보니, 꽤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자존심을 자존감으로 변화시켜 단단하게 다져온 사람이라면 40대를 덜 두려워하며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셌다. 나이 들면서 생각해 보니 자존감이 낮은 거였다. 남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나에게 상담을 해오는 친구들에게는 꼭 조언을 했다. 그건 다 내 기준의 생각일 뿐이고 상대가 원하는 답은 아닐 수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내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내 사람들만 진심으로 챙기기도 어려운 걸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나에게 제일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두 번째 사춘기 ‘사십춘기’가 왔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웠던 사춘기와 달리 사십춘기는 내 의지로 나에 대해 이해해 보기로 했다. 내 미래에 대해 주도적으로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다특히나와 같은 40대 싱글녀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평균 수명을 80세 기준으로 산다면, 40대는 인생의 중반을 지나버린 노년의 삶을 생각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40대쯤 되면 애써 미뤄왔던 노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료 기술을 생각하면 정말 100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100살까지 산다면 40대는 아직 청년 쪽에 더 가깝고아직은 삶을 진취적으로 살아야 할 시기이다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40대지만 외적으로는 아직 젊어 보이면서도 내적으론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나이의 숫자만큼 나이 들지 않은 느낌이랄까? 다들 사십춘기를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사는 편이다. 그래서 마흔이 넘어서도 내가 마흔하나 인지 둘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내 맘과는 달리 내 몸은 틈틈이 나를 사십 대라고 알람을 울려준다. 잠을 좀 잘 못 자면 다음 날 너무 일어나기 힘들고, 굶고 있는 시간이 좀 길어지면 당이 떨어짐을 느낀다. 피부는 나날이 중력을 받아들이고, 눈가의 잔주름이 무서워 눈웃음 짓는 것도 왠지 신경 쓰인다. 거기에 내 몸의 살들은 지방들과의 낯가림이 줄어서 나잇살이라는 친구가 찾아오고 있다.     

 

그래난 40대다나이 들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노화구나인정하기로 했다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그래, 사십춘기 시작해 보자.     



#40대싱글녀#마흔#싱글라이프#불혹#사십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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