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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스더 May 17. 2024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봤나요?

왜 미국인은 파리에 열광할까?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착한 미국인은 죽으면 파리에 간다고. 착한 사람이 사후에 천국에 가듯 착하게 산 미국인은 파리에 가게 된다는 재미있는 비유다. (그럼 나쁜 미국 사람은 어디로 가냐고? 미국에 남는다고.) 미국인 감독이 만든 파리 배경의 드라마라니.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스러운 클리셰 파국이리라는 예상에 단 한 번도 클릭조차 하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미국에서 발행하는 유명 패션 잡지를 보면 "프랑스 여자처럼 시크해지는 법", "프랑스 여자들이 공유하는 뷰티 시크릿"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에서 부유한 주인공들이 반드시 유학 가는 곳이 미국인 것처럼 미국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멋지게 떠나는 곳은 언제나 프랑스, 그것도 파리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관능적인 여자도 프랑스 여자, 질투 나는 회사 동료는 언제나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오죽하면 영어에는 Francophile(프랭코파일)이라는 단어가 있다. 친불 태도를 취하는 프랑스 애호가를 칭하는 단어다. 그만큼 수많은 미국인이 파리에 열광한다. 알고 보면 과거 미국에서는 프랑스 유학을 장려했고 과학자, 의사, 사업가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난 곳이 파리였다고 한다.


이런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인은 오래전부터 파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비판가들이 흔한 해외여행을 "돈 자랑하는 거 꼴 보기 싫다"라고 말하듯 미국에서도 프랑스 파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재력이 있다는 분위기를 풍겼다고. 부러움의 대상, 파리.


그런 파리를 대놓고 홍보하는 드라마, 파리 홍보대사상을 줘도 좋을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드디어 봤다. 진부함에 몸부림치기 싫어서 관심을 차단한 드라마였는데 대런 스타(Darren Star)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신뢰감에 정주행했다.


세계 뭇 여자들처럼 나도 <섹스 앤 더 시티>를 재미있게 봤다. 그땐 영어도 잘 몰랐고 주인공들은 엄마뻘인 데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었으면서 화면에 나오는 뉴욕과 커리어 우먼들이 얼마나 멋지던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하이힐 신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쥔 채 대도시로 출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 여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 <섹스 앤 더 시티>의 감독, 대런 스타가 제작한 드라마가 바로 <Emily In Paris>다.


- 영어를 하지 않는 프랑스인

- 아침부터 와인을 들이켜는 여인들

- 미국인을 무시하는 태도

- 여자들의 줄담배 


예상만큼 고통에 가까운 클리셰였지만 내 안의 소녀 감성이 이내 부르짖었다. "나 파리 좋아하네." 아름답게 보이려고 작정하고 만든 드라마답게 <에밀리, 파리에 가다> 속 파리에서는 어딜 가나 에펠탑이 보였고 예쁜 골목길은 낮이든 밤이든 아름다웠다. 유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한 향수를 남길 만한 소재가 가득했다.


어렵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뻔한 스토리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자극적인 영상물이 넘치는 시대에 어쩌면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내 시간을 고통 없이 잘게 분해하며 흘러가게 해줄 이런 단순한 드라마였던 것일지 모른다.


내 반응이 그랬듯 넷플릭스가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공개하자마자 전 세계 10-20대 여성 사이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시즌 1은 파리를 지나치게 이상화했다며 혹평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 비평가들은 부끄러운 수준의 드라마라고 비판했다. 꼭 파리가 배경이 아니더라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륙에 출장 간 20대 여성의 이야기치고는 비현실적인 것이 사실이다.


- 현지인 친구를 그렇게 빨리, 많이 사귄다? 심지어 인기 폭발!

- 어딜 가나 칭찬 일색!

- 얽히는 모든 남자가 미남이며 모두 나를 좋아한다!


Oh, no... 절세 미녀가 와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땡전 한 푼 없이 태어나 의지 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해 재벌 2세에게 청혼받는 금잔디 이야기가 넘치는 우리나라 드라마를 생각하면 비현실적일 것도 없다. 어쨌든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세계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시즌 2는 첫 방영 이후 4일간 시청 시간만 무려 1억 시간을 돌파하며 94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고정관념을 극대화한다는 단점만 빼면 킬링 타임용으로는 차고 넘치는 시리즈라 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는의 평균 제작 기간이 6-8개월인 것과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 촬영이 두 달 만에 끝났다는 점 등 시즌 4가 언제 공개될지 많은 이가 궁금해하던 중 넷플릭스는 시즌 4를 올여름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조금 뻔하면 어때. 귀여운 눈썹 미녀 릴리 콜린스와 가브리엘 역 루카스 브라보의 '브라보'를 외치고 싶은 외모만 보더라도 이 드라마는 개꿀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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