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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스더 Oct 14. 2022

하루 비건도 괜찮아.

가짜 비건의 구실 찾기 여정.

먼저 나는 화제의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제주도에 사는 톱스타도 아님을 밝힌다. 유행을 주도하기는커녕 흉내 내지도 못하고 집에 인센스 스틱도 없고, 요가나 필라테스도 안 하고 유기농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매일 운동하는 대신 집에 틀어박혀 누워서 포테이토 카우치가 되어 TV만 보기도 한다. 뭔가 있어 보이는 요즘 비건들처럼 완벽하지 않고 즉 트렌디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려서부터 우유와 고기를 먹고 자라며 먹거리가 풍족한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육식 끊기란 단순히 어려운 일을 떠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당장 나부터 작년 조카 생일에 비건 케이크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1년 내내 초등학생 조카에게 구박을 당했으니 이처럼 비건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알고 싶지 않고, 왠지 못마땅한 문화가 되고 있다.


비건이란 동물에 피해가 가는 일이라면 전적으로 피하는, 육식을 철저히 끊고 채식을 하는 완전 채식주의를 뜻한다. 식문화뿐만 아니라 동물 가죽도 쓰지 않고 동물 노동을 착취해 만드는 제품도 소비하지 않는다. 이유는 동물 복지, 환경 보호, 개인 건강 증진이 대표적이다. 비건이라는 단어는 채식을 실행하는 사람이자 그 문화 또는 생활 방식 그 자체다. 채식이 내 몸과 이 땅에 이롭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아직 충분히 납득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직접 만든 식빵. 이런 평범한 식빵에도 우유와 버터가 들어간다.


채식 인구를 고깝게 바라보기 이전에 비채식인들이 알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많다. 젖소는 인간에게 우유를 제공하려고 몸이 기능을 다 할 때까지 끊임없이 강제 임신을 당해 우유를 생산하며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면 결국 개 사료용으로 도살장에 끌려 들어간다. 우유 때문에 생기는 줄 알았던 여드름은 알고 보면 내가 마신 우유를 짜낸 소가 생전에 맞은 각종 화학물질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올해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이다. 가르쳐 주는 곳도 없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저녁으로 한 번 먹을 불고깃감 소고기 500g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물이 1만 리터다. 아무리 양치할 때 물을 아끼고 설거지할 때 수도를 꼭꼭 잠그며 쓴다 한들 4인 가족이 소고기 500g 한 접시를 먹는 즉시 1만 리터 콸콸이고, 점심에 간단하게 햄버거 한 개 먹었다면 물 2,500리터를 첨벙첨벙 쓴 셈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일주일간 물을 2천 리터나 아낀다고 하니 이는 1.5리터짜리 생수 1,500병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뿐 아니라 채식만 하면 콜레스테롤과 작별하고! 혈압도 낮추고!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지고! 심장병에 당뇨에 특정 암 발생률까지 낮아지고! 한 번 사는 인생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데! 왜 우리는 매일 고기를 외치고 소화 불량과 고혈압, 여드름에 시달리며 아프게 사는 걸까.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비건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나 자신, 가족, 친구,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 생각을 3년간 했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진짜 비건도 아닌데, 내가 명문대 박사도 아닌데, 내가 무슨 자격이 된다고...' 즉 "내가 뭔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미국 비건 여성의 메시지에 용기를 얻었다.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완벽한 채식주의자 몇 명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육식을 줄이는 사람들이다.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환경 보호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이 두 사람의 발언에 힘입어 우리가 왜 육식을 줄여야 하는지, 채식을 하면 우리가 뭘 아끼고, 살릴 수 있는지 하나씩 풀어가고자 한다. 내가 읽은 채식, 비건 관련 도서들은 아주 잔인하거나, 아주 어렵거나, 아주 음울했다. 나는 쉬운 말을 사용해 실질적인 이유를 들어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을 억지로 채식의 길로 인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가끔이라도 행동하면 우리 몸과 세상이 달라진다는 그 좋은 내용을 함께 알고 싶을 뿐이다.


- 식은 치킨 먹고 비위 상해 본 사람.

- 새우 대가리와 다리 뜯으며 왠지 모르게 징그러웠던 사람.

- 고기 먹으면 꼭 커피가 마시고 싶은 사람.


당신은 이미 하루라도 비건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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