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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Oct 20. 2023

출입 환영, 바닥 공사 중

첫 번째 브런치북 완성의 마침표

 

 옛 동료들을 만나면 내게 물어본다."좀 어때? 요새는 뭐 하고 지내?" "애들 키우지" "애들 원에 보내면 뭐 하고?" "... 책 읽어." 살면서 가장 많이 책을 본 시기가 딱 두 번 있었다.

 

 대학원 다닐 때 학교에서는 논문만 계속 보니까 집에 와서까지 논문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자니 안 그래도 똑똑한 이들 속에서 더욱 뒤처진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불안해져서 무슨 글자라도 읽어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책을 봤다.

 퇴사를 하고 아이들을 원에 보내고 나면, 일주일에 평균 한 번은 도서관을 갔다. 미니멀리즘 책으로 시작해서 경제서, 자기 계발서, 육아서 가끔, 인문학 조금 이런 식으로 많이 봤다.

 

 어느 순간 문득, 이러다 책만 읽는 바보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책을 읽는다고 당장 그럴듯하게 바뀌는 것은 하나 없었다. 그저 책을 읽으며 적어도 뒤쳐지지만은 않으려고 애썼다.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니깐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계속 봤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상실감에 허무함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책 읽었다.




 책에서는 다들 글을 써 보라고 했다. 성공의 뒤에는 글이 있었다고들 했다. SNS에 시간 쓰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있는 SNS도 없앤 상황인데 글을 쓰라고 했다. 이왕이면 온라인에 글을 써서 누구든 그걸 볼 수 있게 하라고, 그래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하였다. 내키지 않았고 귀찮았다. 그런데 시작했다. 그래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하니깐,

 

 새로운 길을 열어보고 싶었다. 남편의 해외출장에 대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EBS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글의 조회 수가 10명 남짓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기가 막히게도 EBS 작가님이었다. 그래서 EBS 저출산 다큐 프로젝트 육아로 인해 대기업 퇴사자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편지 글 하나로 MBC 인터뷰를 한 적이 있지만, 다큐멘터리 내 한 분량으로 아이들까지 나오는 긴 영상을 찍으며 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그때 알았다. 와, 오픈된 글로 이렇게 연결될 수가 있구나.

 

 

 이후 삶에 대한 느낌이 좀 달라졌다. 당시 PD님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퇴사 전후 지금의 삶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하다 보니, 내 자신이 생각보다 많이 잘 정리했고, 다듬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가 이미 아물었는데 계속 대일밴드를 붙이고 있었나 보다. 다시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경제서 위주로 보던 책에서 분야가 조금 넓혀졌고, 블로그에도 글을 조금 더 신경쓰게 되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라는 책의 문구를 보고 코로나 대유행이 끝날 때쯤 실천으로 옮겼다. 쓸데없는 모임이라 생각했던 독서모임에 난생처음 나가보았고, 정말 우연히 기회가 되어 일주일에 하루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책의 실행력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느끼며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후 블로그에 일주일 한 개라도 글을 올리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4개월 전 브런치에 글 하나를 응모했다가 덜컥 작가가 되었다. 차근차근 준비한 것도 아니고 오래 글을 쓴 것도 아니고 정말 한 개 글에 작가가 되고, 생전 보지도 못한 조회수를 기록해 보고, 방송 인터뷰를 해 보고 하니 슬슬 재미있어진다, 다시, 인생이, 내 삶이.


 그리고 돌아보니, 지금의 아이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 경력 단절이 아니라, 세컨드 라이프를 위한 기초 공사임을 느낀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튈지는 몰라도 한 가지 사실은 명확히 알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책을 읽어서 그리고 실천하기 시작해서 무슨 행동이라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음을. 그래서 해 보는 거다. 브런치북 한 개를 완성해서 응모해 보는 일도. 지금은 열심히 바닥 공사 중이니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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