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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Oct 18. 2023

비빌 언덕이 없으니 내가 잡고 있는 것을 내려 놓는다

퇴사

 

 아이 하나와 아이 둘은 키우는 것은 차원이 달랐는데 복직해서 회사에 다녀보니 그 힘듦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엄마가 출근 한 것을 귀신같이 안 아이들은 바로 아프기 시작했다. 첫째가 먼저 아파서 남편이 휴가를 냈는데, 결국 둘째까지 아파서 복직하자마자 또 휴가를 내야만했다.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아이 둘이 아프니 일주일을 넘어가는 건 기본이다. 코로나라 열이 나면 무조건 등원 불가라 매일이 풍전등화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돌봄 이모님이 너무 힘들어하신다. 딸 둘을 키우신 분이라 자매, 형제의 관계를 잘 이해해주실 줄 알았는데 아들 둘은 상황이 다른것 같다. 퇴근 후 얼굴을 뵈면 너무 힘들어하셔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퇴근할 시간이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정신없이 출근하고 바뀐 업무에 새로 적응하면서 배우고 쏜살같이 근무하다 퇴근할 때 되면 편두통이 심해진다. 아이들이 하원해서 집에 있는 모습을 cctv로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한 쪽에서 지쳐 앉아 계시는 이모님과 정신없는 아이들, 놀고 있는 모습, 울고 있는 모습 등. 어느 날은 이모님이 "엄마랑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아이에요. 저한테 우리 집에 오지마, 저리가 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어른이어도 너무 상처가 되네요." 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아무 영혼 없이 아이들과 멀찍이 앉아 계시는 모습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가 퇴근하고 이모님을 퇴근시켜 드리는 길 "오늘 힘드셨죠? 고생하셨어요." "네" 짧은 대답의 정적이 계속 된다.


 다른 이모님을 구했다. 아들 하나 키우신 분이라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어린이집 선생님 하셨던 분이라서 안심이 되었다. 경험이 많으실테니 안심이 되면서 걱정이 줄었다. 그 사이 나는 회사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었다. 새로운 파트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업무를 익히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몸이 힘들었던지, 여기저기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통은 기본에, 눈의 기름샘이 막혀서 충혈되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잠 못 잘 때마다 생겼던 피부 염증이 여기 저기로 번지기 시작했다. 손에 물이 닿을 때 마다 아팠지만 남편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말하면 회사 그만두라고, 그렇게 힘든데 왜 다니냐고 말할 것만 같아서 꾹 참고 혼자 아팠다. 

 

 나는 참고 다니면서 적응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이모님과 영 적응을 하지 못했다. 돌이 갓 지난 둘째가 바닥에 누워 한참을 울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로 보았다. 이모님은 우는 둘째를 냅두고 첫째와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땡깡부리고 우는 아이를 모두 보살펴 줄 수 없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셨으니 그러려나보다 하였지만 그런 모습이 자주 보였다. 내 아이가 문제겠지만 마음이 안 좋았다. 고작 15~16개월의 아이였다. 퇴근하는 길 무건운 마음, 복잡한 머리에 눈물이 핑 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 도전인지 의문스럽다. 그래도 지나가는 시간이겠거니, 이 시간을 버티는 적응의 시간이려니 생각해본다.


 어느 날 퇴근 후 뵌 이모님은 첫째도 둘째도 참 힘들게 한다며 이러면 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힘든 아이들인가?첫째가 어린이 집 다니는 내내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의문스럽긴했다. 처음의 낯설음이 지나가면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하고 잘 놀고 참여도 잘 하는 아이였지만 당시 상황이 어렵긴 했다. 늦은 개월 수의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낮잠을 끊으려다 보니 늦은 오후부터 졸음이 찾아오면서 온갖 짜증이 심했다. 한 번 자면 두시간을 자니 밤에 늦게 자고, 중간에 깨우면 온갖 짜증과 울음 섞인 아이와 전쟁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나도 주말을 함께 보내니 알고 있었다. 다음 날은 "내가 참으면서 아이들이랑 잘 해볼께" 라고 이모님이 말씀하시면서 "나도 그만두면 아이들이 불쌍하잖아" 라고 면전에서 말씀하신다. 월급은 내가 드리는데 내가 더 굽신굽신하게 되는 아이 맡기는 자가 세상에 약자다. 나는 더 버티고 싶은데, 아무도 내 맘을 알아주질 않는다.

 


 애 둘 낳으면 회사 그만둬야해 라는 말을 깨 부수고 싶었다. 애 둘 낳아도 회사 다닐 수 있다. 자기 일 하면서 멋지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깨 부서졌다. 소위 말하는 양가의 도움을 받아 혈육 육아를 할 수 없었던 나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 회사에 일하는 워킹맘은 애 둘 자체가 드물었고, 한 명을 키우는 80% 정도가 친정어머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그 외 이모, 고모의 도움도 있었다. 남편과 아내 둘만 오롯이 육아를 하는 비율은 과연 20%가 될까.. 그마저도 남편이 같은 회사일 경우 가능한 케이스였다. 나의 남편은 왕복 3시간 거리의 회사를 다니고 있었으니.. 평일 공동육아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아무리 둘러봐도 비빌 언덕이 없었다. 친정 엄마는 허리 수술을 하셔셔 돌 지난 아이를 안을 수 없는 상태셨고, 시어머니는 수술 후 계속 입원 중이셨다. 회사 동료들이 거의 모두 엄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커리어를 살리고 유지하는데 왜 나에게는 그 '엄마'가 없는 것인가.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나도 '엄마'가 필요하다. 어리석은 마음에 괜한 생각까지 했다.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이 사회가 나를 절벽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면서 비빌 언덕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 놓아야지, 나와는 상관 없을 줄 알았던,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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