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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Nov 25. 2023

6화 - 졸업

 "수현아 너 이번 엠티 중간에 거라며? 왜? 무슨 일 있어?" "아,,,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해서 주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선배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나니 손이 착잡해지는 수현이었다. 건강하신 할머니께는 거짓말을 해 죄송하지만 지금 정말 위독한 사람이 있긴 했다. 당장 2개월 내 영어 점수를 못 만들면 졸업을 못하는 수현 자신이었다. 졸업 학기가 코 앞으로 다가와 심사 준비 기간까지 2개월 남은 상황이었다. 졸업 자격이 주어지는 영어 점수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교수님도, 그토록 친하던 선배도, 후배도, 엄마 아버지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수현은 매사에 똑 부러지고 자신감 있는 모습의 사람이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못난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가 원하겠는가, 자신의 못난 모습이 까발려지기 직전인데.

 "영어를 못해서 졸업을 못해요." 말하게 되는 그런 상황은 안 만들어야지. 수현은 독한 마음을 먹으며 엠티에서 나와 바로 다음 날 시험을 치러 갔다.


 "교수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수현 무슨 일인가?"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점심 먹고 올라오도록 하세요." "네"

교수님과의 면담 이후 연구실로 돌아온 수현에게 선배들의 시선이 꽂힌다. "수현아 교수님 뭐라셔?" "한 소리 듣고, 또 한 소리 듣고 계속 들었죠. 그것도 미리 준비 못했냐고 어이없어 하 ㅎ시더라고요. 일단 박사 진학도 생각하면서 내년 상반기 졸업에 맞춰 영어 점수 만들어 놓으라 하셨어요." "와, 다행이네. 너 이제 임마, 너." "야, 됐어, 잘 해결되었는데 왜 그래? 옆 방 막내는 이번에 영어 점수 커트라인 넘어서 졸업 준비 들어간다고 하더라. 넌 괜찮아, 연구 잘하니깐 박사가면 돼." 옆에서 선배들끼리 서로 말리면서 말들을 건네온다. 안 그래도 정신 사나운데 많은 말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와중에 들린 말이 있긴 했다. 옆 연구실에도 같은 처지의 못난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무사히 졸업 준비에 들어간다고.

 "휴"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연구실 문을 나온다. 지금 이 순간 제일 부러운 사람은 미리 영어 커트라인을 넘겨 졸업 준비를 하고 있는 대학원 입학 동기들이 아니다. 이번 학기 졸업을 위해 마지막이었던 이번 달 시험에서 점수를 바로 넘긴 그 애가 제일 부러웠다. 서한대 졸업-대기업 취업행 특급 열차가 떠났다. 바로 앞에서 수현은 타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인다. 졸업이 한 학기 연장되었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과 논문 등 모두 준비해 놓았는데 영어 점수가 안 돼서 졸업을 못한다. 대학교 졸업 때 취업이 안 돼서 졸업을 한 학기 연장했던 동기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 애들도 이렇게 비참했을까? 남들 다 졸업하는 거 보면서 무슨 심정이었을까?

 "다음 학기 취업 되지, 걱정하지 마, 넌 꼭 잘 될 거야." 지는 서한대로 합격해 놓고 동기들한테 그 딴 소리나 지껄였던 수현 자신이 생각나 창피해진다. 뭘 안다고 위로 따위를 건넨 것인지. 버스 유리창에 구질구질한 수현 자신의 모습 보인다. 오늘따라 캠퍼스를 내려가는 버스가 끝없이 산을 돌고 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점점 어두워다.


 "수현은 연구실 오늘부터 나오지 말고 도서관 내려가서 점수 만들어와." 교수님의 한 마디에 발표 시간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번 달 영어 점수를 물어보신 교수님이 수현의 대답에 노트를 책상에 팍 내려놓으셨다. 매달 한 번씩 볼 수 있는 영어 시험이라 점수가 나올 때마다 죄인의 심정으로 연구실에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달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문제 차이로 졸업 점수 커트라인을 못 넘었다. '이런 제길! 열 문제도 아니고 문제 차이로 낙방이라고. 으악'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수현은 점점 무서워졌다, 이러다 그 점수를 못 채우는 게 아닌지, 졸업을 못 하는 건 아닌지. 매월 시험을 보고 점수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누가 자신의 목을 죄여오는 것만 같다. 점점 점수 발표 날이 사형 선고의 날 같이 느껴졌다. 자신이 준비하는 게 졸업인 건지 삶의 구렁텅이인지 헷갈렸다. 문자가 띡 전송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핸드폰으로 확인 한 점수 너머로 아찔하게 눈이 감긴다. '어떻게 하지? 또 어떻게 말하지? 나 정말 왜 이러지? 어쩌려고 이러지? 정말 병신인가?' 핸드폰 작은 화면 속으로 우왕좌왕하며 사색이 된 수현 자신이 보인다. 낯설다. 

 도서관으로 내려오니 연구실이 있는 건물과 달리 봄꽃이 한창이다. 예쁜데 예쁜 걸 즐길 수가 없다. 수현은 마음이 시궁창처럼 느껴졌다. 작년 이맘 때는 학회 가서 강연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그야말로 봄을 만끽했는데, 올해 봄은 수현에게 꽃샘추위같이 매섭다.


 점수가 발표되는 날 수현은 도서관 연구실에 가지 않조용히 방에 있었다. 띡 문자가 전송되었다.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다. 불합격 통보다. 커트라인 점수를 또 넘지 못했다. 이번 달 시험이 상반기 졸업 심사 준비를 위한 마지막 기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하반기 졸업으로 가야 한다. 졸업이 1년이나 유예되었다. 연구실에 교수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어떻게 말씀드리지? 이번 달도 낙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해야 하나?그런데, 누구에게 죄송한 거지?

 머릿속이 아찔해진다. 순간 몇 달 전 유명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연예인 일가족 한 명 한 명이 자살한 뉴스였다. 남은 가족은 다시 자신을 추스르고 새로운 분야에서 활약하고 인정받는 가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했다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분명 새로운 분야에서 상도 받고 잘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당시 수현은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불현듯 수현은 그 뉴스가 떠 올랐다. 베르테르 효과인가. 수현은 갑자기 자신의 방이 답답하고 무게 느껴진다. 이 방에서 나갈 수 있을까? 못 나가는 거 아닐까? 이 방에서 내가, 내 발로 나갈 수 있겠지? 수현은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교수님께 보고를 해야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핸드폰을 다.  


 "엄마, 나 집에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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