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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Jan 03. 2024

12화 _ 외나무다리

"Nice to meet you."

"Hello, Nice to meet you, too. I`m Soo" 올 것이 왔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배치되었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업체로부터 기술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내가 담당자가 된 것인지.

이번 프로젝트는 관려 부서에서 한 두명씩 뽑혀서 새로운 팀이 꾸려져 1년 단기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수현이 담당했던 모델이라 은연 중에 팀 이동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많은 부서 중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수현이 직접적인 외국 업체 담당 업무를 맡게 될 줄은 몰랐다.


일을 할수록 손에 익기도 했고 직접 받아들여지는 부분, 나아지는 방향을 보면서 수현은 점점 회사 생활이 재밌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업무를 더 안 받기 위해 푸념과 불평을 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뿌듯함도 생기고 보람도 있었다.

회사 생활 초기에는 진심으로 불만이 많았다. 1년정도 업무를 익히니 큰 흐름이 보였다. 회사 내에서 일들이 너무 분업화된 탓에 기계적인 일거리만 반복적으로 하는 단순 업무의 연속이었다. 창의성을 요구하던 숱한 면접들은 본격적인 업무 시작에서 하나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기존의 흐름을 잘 유지만 하면 되는 일들이 로봇 같이 느껴졌고 기계 부품 같았다. 이래서 회사 생활 3년차에는 많은 염세적인 생각과 회사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고 하는 것인가

"야, 원래 회사는 그런거야. 이런 생각 없는 일도 하다 보면 그 안에서 질서도 보이고 고쳐야 할 것도 보이고, 보람도 느끼고, 그 안에서 자기가 찾아가면서 하는거야." 수현의 업무 태도가 부쩍 이상해진 것을 느낀  선배는 지나온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

"그래도 선배 너무 재미가 없어요."

"재미? 재미는 나도 없어. 돈 벌려고 다니는거지. 회사는 돈 주는 곳이야. 재미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지."

"진짜 그래야 하는 걸까요? 회사도 일도 재밌을 순 없을까요? 내 일을 하면 재밌으려나?"

"내 친구들 보니까 벤처하는 대학 동기들 보니깐 그것도 쉽지가 않아. 그 똑똑하고 열정많은 애들도 한 두 번 꺾이니 힘들어하더라고. 오히려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을 부러워해. 그래서 난 그냥 다니기로 했지.  무엇보다 일찍 결혼해서 쉽게 움직일 수가 없어. 애 한 명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 매달 월급 받는 거 그게 최고야"

회사라는 곳은 그런 곳이다. 언제나 "내가 여기서 왜 이런 일을?"이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지만 적응하다보면 관성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곧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으로 만족하며 수긍으로 안주하는 삶의 반복적인 곳.


선배는 조기 진급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연수의 기회 역시 받게 되었다. 한 번 잘나가는 사람은 그 자리를 계속 이어가기가 비교적 쉽다. 물론 노력이 필수지만 자리와 평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수현은 떠난 선배의 자리를 대신해 배워온대로 열심히 일했다. 배운대로 수현 역시 조기 진급을 하였다. 그렇게 평판이라는 게 생기면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선발된 팀에서의 문제는 영어였다. 대학원을 영어 때문에 졸업하지 않고 뛰쳐 나온 후, 은연중에 '영어를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빠져 콤플레스에 갇혀 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잘 숨겨온 것 같은데 느닷없이 외국인과 1년 내내 붙어서 담당이라니.. 어디 도망갈 곳이 없나? 한숨을 쉬다가도 '이번에는 도망가지 말자' 생각하는 수현이었다. 아니 언제는 도망간 적이 있었나? 수현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막상 시작한 새로운 팀 생활은 생각보다는 순조로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걱정할 틈이 있었다. 하루 하루 외국 담당자들과 부딪히고 정리하고 내부 팀 자료를 만들고 회의들을 챙기고 오랜만에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보니 따로 두려움을 느낄 틈조차 없이 바빴다. 모든 것이 시작하기 전의 걱정이었을 뿐이었다. 업무에서 쓰이는 어휘는 정해져 있다보니 반복적인 사용으로 자신감도 생기고 친숙해져갔다. 영어로 인생의 큰 파도를 겪었던 수현에게 어느 새 영어가 삶에 베여들고 있었다. 돌고 돌아서 마주한 외나무다리는 건너보니 생각보다 넓고 튼튼한 다리였음을 느낀다. 때로는 잔뜩 걱정하는 것보다 그저 맞닥뜨리는 일이 더 진취적인 행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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