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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Dec 18. 2023

10화 _ 삼X전자 카페테리아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와 어묵 세트를 보자니 군침이 꿀꺽 넘어간다. 어제 회식이 있어 술 한 잔 거하게 했으니 오늘 점심은 떡볶이, 튀김, 어묵 분식 세트로 정했다. 동기들이 아저씨처럼 매일 한식 코너에만 있냐고 해서 놀림을 받고 나니, 다른 것도 먹어보자 하던 참이었다.

회사 카페테리아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한다. 아침에는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5~6가지 식사 메뉴와 셀 수도 없이 많은 테이크 아웃 메뉴가 있다. 베이커리 종류만도 10개가 넘고 주먹밥, 샐러드, 과일, 샌드위치, 떡 등 없는 게 없다. 점심에는 12개의 식사 메뉴를 제공한다. 한식, 일식, 중식, 도시락, 양식, 면류 등 12개의 다양한 메뉴가 매일 바뀌는 것을 보고 처음 수현은 진심으로 놀랐다.

집에서 나온 대학생 시절부터 식사는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한 간단한 행동이었다. 살기 위해 먹는 몸부림치는 정도. 영양가가 웬 말인가, 김에 밥만 먹던 세월도 많았다. 수현의 최애 반찬은 소고기가 버무려진 튜브형 고추장이었다. 햇반에 고추장 짜서 밥을 먹으면 순식간에 빨리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사 먹었던 음식은 주먹밥이었다. 멸치와 참치 중 선택을 할 수도 있었고, 무언가를 씹을 수 있으며 맛도 좋았다. 무엇보다 양이 많아 자주 애용했다. 주먹밥 사서 버스에 올라 야금야금 먹다 보면 관악산 등산코스 정류장에 금방 도착했다. 그리고 실험실로 올라가면 배 부르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작년 집에 다시 돌아갔을 때 엄마 밥을 먹을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쫓겨나듯 들어간 그 상황에서 밥맛 따위는 느끼려야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입사하고 식당에 와 보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수현이 한식 코너에서 항상 발견되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집밥의 느낌이라서 배도 부르고 무엇보다 든든했다, 몸도 마음도.


어제 회식은 동기들끼리 뭉치는 자리였다. 어느덧 현업에 배치받은 지도 6개월이 지나고, 각자 여름휴가 보내고 명절 잘 지내고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서 수현도 오랜만에 회사 생활 속 긴장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사르륵 풀렸다. 술 따르고 고기 구우며 등 꼿꼿이 펴고 있어야 하는 불편한 회식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들 술도 많이 먹었고 왁자지껄 웃음소리는 더 많이 내뱉었다. 이래서 동기가 좋은 거지, 회사 생활 힘들어도 동기 때문에 도움받고 버틴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어 수현은 흐뭇했다.

"오늘 술 너무 마셔서 내일은 떡볶이로 해장해야겠다. 분명 아침은 못 먹을 거고."

"떡볶이가 뭐야? 해장에는 피자가 최고지. 은근히 잘 어울린다고, 한 번 먹어봐."

"떡볶이? 피자? 너네 뭐 다른 나라에서 왔어? 해장은 라면이나 김치찌개 아니야?"

수현이 한 마디 하자 픽픽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얘두라, 이해해 줘라, 우리 수현이가 회사를 늦게 와서 저기 과장님 뻘이라 그래. 말 안 통해도 이해해 주고 데리고 놀아줘야 한다. 에구구."

"뭐야, 너도 동갑이잖아. 그리고 과장님 뻘은 아니거든?"

동생들의 웃는 소리가 더 커진다.


같은 해에 들어온 동기들 사이에서도 나이대가 아주 다양하다. 학부 바로 졸업한 여자들과 군대 다녀온 남자들에 어학연수, 취업 준비로 졸업 연장, 대학원까지 각각의 케이스가 더 해지니 나이가 열 살 가까이 차이 나기도 하다. 막역한 동기 사이에서도 나이 차이로 인해 해장 음식 하나를 두고 떡볶이와 김치찌개로 갈리는데, 사무실 내는 더 하다는 것을 수현은 몸소 느끼고 있다.

신입 사원이지만 나이가 많은 수현을 나이가 어린 선배들은 불편해한다. 같은 나이인데 직급이 한참 차이 나는 선배들을 보며 수현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을 볼 때면 '나는 뭐 하며 살았나?' 자조 섞인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온다. 취업했다고 해서, 대기업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삶의 비교와 그로 이어지는 한탄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것이구나. 수현은 이미 벌어진 현실은 보내주기로 했다.

눈앞의 떡볶이가 김이 모락모락 난다. 머리가 핑핑 도는 취기가 느껴지는데 떡볶이와 튀김이라니, 왠지 오늘 점심은 어묵국만 먹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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