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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Jun 20. 2023

그 겨울의 알바는 따뜻했다

 그 곳은 원래 차 정비소였다. 아파트 후문 상가지역의 큰 도로 코너 부분오랫 동안 자리 잡고 있던 정비소였다. 후문으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사람만 지나다니는 유동인구가 아주 많은 곳이었지만, 언제나 거무튀튀한 기름과 차 바퀴들이 즐비해 있어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곳이었다. 그 곳에 정비소가 나가고 파리바게트 빵집이 들어왔다. 장사가 정말 아주 잘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목 좋은 곳을 지난 관습에 빠져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에 빵집이 생겼냐며 그 전의 가게와 비교하며 달라진 인상에 분위기에 아주 만족해했다. 그 곳이 그 겨울 나의 알바 장소였다. 다행이었다, 차 정비소가 아니라 빵집이 알바장소라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무료해서 빵집을 시작하셨다던 사장님은 고생 한 번 안 한 사람의 느낌이 물씬 났다. 그래도 눈매가 예리하셨다. 인상은 좋고 친절하셨으니 알바에게도 손님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풍족한 사장님 덕분에 빵을 많이 먹다. 팔려면 직접 맛을 알아야 한다고 많이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아량이다. 나는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궁지에 몰려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서 대학원을 피해, 집을 피해 알바하러 도망갔다. 비를 피하기만 해도 감지덕지 해서 들어간 동굴에서 먹을 것 까지 제공해주니, 와우 ㅎㅎ 그래서 그 시절 알바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일까? ㅋㅋ 아니면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었나?스크루지 사장님과 일했으면 안 그래도 하기 싫었던 알바가 더 하기 싫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장님은 내가 알바 2~3일만에 빵 이름을 거의 다 외운 것을 보고 신기해하셨고, 일주일도 안 되 가격까지 거진 외운 것을 보고는 이렇게 빨리 외운 알바생은 처음이라 하셨다. "빵이 맛있어서 빨리 외웠어요." 하니 좋아하셨다. 다른 알바 동생들도 어찌 그렇게 빨리 외웠냐며 궁금해했다. 난 똑똑하지 않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 워낙에 똑똑한 사람들 틈 속에 있다보니 저절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다른 부류구나. 그런데 다행히 눈치가 빠르고 일머리가 있다. 살다보니 나의 장점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이후에도 똑똑한 사람들 잔뜩 있는 곳에서 똑똑하지 않은 내가 함께 일한 적이 많았는데, 문득문득 그들의 똑똑함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땐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나의 장점을 계속 되새겨야 한다. '난 일을 빠르게 하고 그들 사이에서 분위기 조율을 할 수 있어.' 그럼 의기소침이야 하더라도, 기 죽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알바 생활은 점점 안정되어 갔다. 또 한 번의 대학원 졸업을 놓친 시기니 겨울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그래도 알바 덕분에 춥 않았다. 1년 전 겨울은, 대학원 정규 기간에 졸업을 못한다는 사실에 막막하고 쪽팔려 시리고 시립기만 했다. 알바를 하는 겨울, 많은 위안을 받았다. 움크리고 있던 몸과 마음이 풀어지니, 차츰차츰 머릭 속이 정리가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간직해 온 꿈이었다. 환경연구원이 되는 것. 비커를 흔들면서 플라스크를 보고 관찰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멋져보였던 것 같다. 과학자가 연구원이 장래희망이 되었다. 꿈을 일찍 찾았다는 게 참 행운이었고, 다른 곳으로 눈 안 돌리고 그 방향으로 올곧게 직진해서 서울대 공과 대학원까지 갔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해보니 꿈꾸던 삶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혼자 골똘히 물질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만들어가는 일이 더 즐겁고 재미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질을 변형시키며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물을 창조하거나 개선시키는 방향의 일을 더 좋아한다. 안타깜게도 이건 지금에서야 명확하게 알게 된 나의 성향이다. 20대 중반에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겪어보고 해 봐야 알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나의 성향에 대해서 느끼게 되었고, 슬슬 정리가 되었다. 오랜 연구원의 꿈을 놓아주기로. 경험해보았으니 알 수 있었고 그걸로 선택할 수 있었다.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부터 가져온 꿈이라 놓는 것 자체가 약간 어려웠는데, 전혀 색다른 새로운 환경인 빵집에 오니 오히려 결정이 쉬웠다.

 

 한 때는  전공을 살려 꿈을 좇고 싶어 안달 났었는데 이제는 연구 분야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곳을 찾아 다녔다.  같은 과 대학원 사람들이 연구하러 가지 않는 곳을 찾아 새롭게 떠났다.그렇게 삼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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