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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sat Oct 05. 2020

그녀는 나의 엄마가 될 수 없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배려였다.


시어머니는 명절이 다가오면 보름 전에 웬만한 장을 봐 놓으신다. 마트는 비싸기만 하고 물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재래시장을 오가며 대목으로 비싸질 명절 음식 재료들을 미리 사다 두시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수일을 보관한 재료 중 한두 개는 상태가 나빠져서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며느리로서의 속마음은 장을 보는 것도 큰일인데 그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굳이 미리 사다 놓아서 재료를 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장을 함께 봐 드리지 못해 살짝 찔리는 마음에 명절 삼사일 전엔 의례 것 안부를 핑계 삼아 전화를 한다. 올해도 장은 보셨냐는 질문에 장은 모두 봐 놨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며 물가가 너무 올라 조금씩밖에 준비를 못 했다고 하시는 말씀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다. 물가는 항상 오르고, 명절이면 더 오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올핸 잦은 태풍의 영향인지 예년보다 훨씬 물가가 상승한 것 같아 마음은 더 부담스럽기만 하다.     






시댁과 가까운 거리에 살다 보니 명절 전날 음식을 만들기 위해 홀로 시댁으로 향한다. 차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댁에 오전 10시쯤 도착하면 일을 두고는 잠을 못 주무시는 유별난 성격의 시어머니께서는 음식 대부분을 해두신 상태다. 며느리는 어머님이 다듬고 준비해둔 재료로 전만 부치면 된다. 전 담당인 것이다. 매년 남아서 버리니 조금만 만들자는 전은 줄여도 줄여도 한 바구니가 나온다. 재료에 밑간하고 달걀 한 판을 풀고 밀가루를 묻혀 3시간은 쪼그리고 앉아 큰 전기 프라이팬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가 온몸을 베야 끝이 난다. 말 그대로 전만 부쳤을 뿐인데 혼자 모든 명절 음식을 요리한 것처럼 생색내기 딱 좋은 명절 음식인 것이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18년 동안 제사를 포함해서 한 해에 3번은 부치는 것을 전담해 왔으니 전을 부치는 요령도 제법 늘었다. 전을 부치는 동안 내 옆에는 맥주 캔이 놓여 있다. 뜨끈뜨끈할 전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면 기름의 느끼함이 캬~~  소리와 함께 톡 쏘는 청량함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은 명절의 맛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 마음을 아시는 건지 며느리에게 눈치 주지 않고 맥주는 명절 장에서 빼놓지 않고 사다 두시는 품목 중 하나이다. 맥주 마실 때 눈치 보지 않고 뻔뻔하게 마실 수 있는 이유는 전은 생색내기 좋은 명절 음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감사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18년 동안 맥주의 맛은

늘 같지 않았다.


어느 해에는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도 싫을 때가 있었고 또 어느 해에는 톡 쏘는 청량함보다 김빠진 밍밍한 맛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명절 보름 전부터 재래시장에서 재료를 사다 나르고 재료를 버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이 되는 것도 일거리를 두고 잠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새 명절 음식의 대부분을 해두어야만 성에 차는 유별난 성격도 바꿀 수는 없다. 맥주를 좋아하는 며느리는 명절에 전을 부치며 몰래 맥주를 마시고 싶지도 않고 그 마음을 바꿀 마음도 없다. 가끔 만나 굳이 좋지 않은 감정으로 서로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잠시 머무르면 되는 것이다.이 마음을 갖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어머니는 당신은 딸이 없어서 나를 딸이라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 말에 진짜 그녀의 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고 그녀의 딸이 되어가고 있다고 착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저 생각이었을 뿐 현실은 그녀는 나의 엄마가 될 수 없었고 나 또한 그녀의 딸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고 시어머니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불변의 법칙을 깨닫고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 비우게 되면서 명절에 마시는 맥주의 맛은 더 깊어진 것일 것이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그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감사한 마음이 함께 시원한 맥주 한 모금씩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추석 명절 전과 맥주는 유난히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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