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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N May 13. 2020

만남에서 비롯된 시야의 '확장'

동물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타인과의 만남이 세계의 확장을 의미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떠올리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스치듯이 들은 말이라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어떤 맥락에서 나온 문장인지,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굳이 원문을 찾아보지 않아도 ‘나’라는 편협한 주관으로 세상을 보다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 사람의 입장을 포함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문장만 보면 인간과 인간만의 관계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개념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라, 노리와의 만남으로 변화한 자신을 보며 이 개념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Image by Reinhardi from Pixabay.



  밤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인기척에 재빨리 도망가는 길고양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 책임감을 유독 중요시하는 반려동물 보호자. 이전까지 일상 속에서 접하던 많은 것들을 미신에서 비롯된 꺼림칙함, 오지랖, 예민함 등으로 취급하던 나의 무신경함은 경험하지 못한 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양이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과정은 내가 이전까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왔는지를 깨닫는 과정과도 같았다.


  또한 고양이에게도 성격, 감정, 취향이 있다는 사실은 비단 고양이라는 특정 종에 국한되지 않고 동물 전반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시야를 더욱 확장시켜 주었다. 돌이켜보면 이전까지 나의 사고의 기반에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다른 동물들의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일종의 우월감 같은 것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내가 누리는 수많은 것들이 자유와 권리를 상실한 수많은 동물들을 착취해 얻어낸 결과임을 외면한 채 말이다.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뉴스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이전의 나였다면 별 관심 없이 지나쳤겠지만 아라와 노리와의 만남으로 ‘우리’의 범위가 넓어진 나는 그런 사건을 보면 더 분노하고, 더 슬퍼하고, 더 미안해진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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