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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실험러

by 빛작



여기저기서 끓고 흔들리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서도 시계 초침에 민감했던 건 당연했다. 익숙했다.


전자저울이 영점을 이루는지, 저울의 문은 제대로 닫히는지, 핀셋은 깨끗한지 소수점 무게에도 그랬다. 실험러들의 '눈과 손'의 섬세한 의무감이 발휘되어야 했다. 시료의 무게를 재서 샘플링하는 일, 열처리 가마에 일정 시간 넣는 일, 휘발성분을 뺀 무게를 재는 일. 돌고 도는 그 과정은 사람들의 반복된 하루와 같았다.


나에게 실험실은 특별했다.

기기를 다루는 매뉴얼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온전히 익힐 때까지는 그랬다. 그 번거로움을 뺀다면 모든 과정은 즐거웠다.


비어있는 비커에서 반응 결과물을 얻기까지가 나에겐 놀이였다. 실험도구들은 놀잇감이었는데, 숫자는 재미 요소임에 틀림없었다. 시료를 적정하는 손은 숫자에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날이 과정을 꿰뚫어 나갔다. 순서와 방법이 내게 최적화되었다.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냈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웠던 그곳은 나에게 유치원과 같았다.

시료와 시약, 실험기기 앞에 앉아있는 나, 실험 준비부터 끝날 때까지 노력은 '반복'을 가르쳐주었다.

철저하게도 나의 움직임에 결과가 달려있었다. 긴 시간은 '기다림'을 가르쳐주었다.

몇 장의 보고서로 완결될 때마다 주체적인 시공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정신을 맞바꾸었을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다음 실험의 영감들이 뒤따라 솟아올랐다.

올바른 관심, 지속적인 기억, 친밀한 호기심은 '사랑'을 키워주었다.

시작과 끝의 '쾌감'을 배웠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동시다발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체감했던 바가 아직 생생하게 기억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나 궁금해진다.


이곳에 가져와 쓸모 있는 감각 활동을 한다. 나는 글의 재료인 낱말 하나의 무게를 잰다. 맥락에 맞도록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게 손끝을 움직여야 한다. 부사와 조사를 덜어내고 문장을 적당하게 휘발시켜야 한다. 실험보고서에 때와 장소와 대상이 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글 안에 때와 장소를 담는다. 가설과 결론을 갖는 대상을 드러낸다. 실험러가 실험 순서를 따르듯이, 지금은 글의 순서와 방향을 익혀간다. 의도를 고민하고 다듬고 실천해 간다. 이번 글의 아쉬움을 다음 글에 반영하는 '글의 실험러'가 아닌 듯싶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쌓여가는 '결과값'처럼 다가온다.


'다작'은 분명히,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읽고 쓰는 일에는 새로운 환경설정이 필요하다. 어떤 관점으로 관찰하고 분석해야하는지 작가가 되어서도 실험한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새로운 발견을 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단지, 지금은 무형의 것에서 유형을 끌어내는 에너지를 발휘하고자 한다.



*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한겨레출판사, 2025

. 실천러: 실천을 하는 사람, 신조어 행동의 실행력과 실천의지를 강조하는 말

. 이미지: Pinterest

#과정 #놀이 #재미

[빛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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