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집으로 알고 들어 온 고양이 누리
낌새도 없이 겨울이 바짝 다가왔다. 엊그제만 해도 가을 향기가 코끝에 맴돌며 앉았더랬는데. 아침나절에 마당에 나가니 찬바람이 목 언저리를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몸이 차가워진 탓에 불현듯 따뜻한 국물 요리가 떠오르는 그런 하루였다. 그래서 닭을 사다 곰탕을 할 요량으로 우려내고, 우려내면 아마도 가족들과 고양이들의 기 보충하는 날이 될 듯도 하다.
그래서 닭을 사서 고우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부엌 안에 냄새가 배어들고 보글보글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공기 순환 차 방충망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사실 방충망을 열지 않아도 되지만, 부쩍 줄무늬고양이가 그리로 자주 왕래 하니, 오는 것을 자세히 보고 싶어 열기도 했다. 그래서 국물을 우려내는 동안 식탁에 앉아 창 너머 넌지시 고양이 그림자를 확인하기도 하며. 왠지 줄무늬고양이가 집 출입을 또 시도할 것만 같아 카메라를 켜둔다. 만약 집으로 들어온다면, 하는 모종의 설렘. 오늘부터 줄무늬고양이와 가족이 되는 1일이 될지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인연의 기대감은 늘 창가에 머무는 햇살처럼 다정하게 느껴지고. 그런 생각을 반복하는 중에 갑자기 밖에서 익숙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부엌까지 와닿았다. 나는 가스 불을 끄고, 잠시 부엌을 비우고 밖으로 나갔다. 우체국 아저씨였고 사인이 필요한 물품을 챙기며 인사말을 하는 동안 잠깐의 십여 분이 지났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거실이 보통날보다 고양이들의 '아웅' 소리가 커지고 후닥닥 뛰는 격양된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거실을 뚫어져라 보니 줄무늬고양이가 성큼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제 집처럼 탐식이와 에너지 넘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설마? 그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나는 이런 상황을 대비한 듯 켜놓은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런데 잠깐 부엌을 비운 사이 뒤쪽 방범창살 쪽으로 줄무늬고양이가 유유히 접근한 것이다. 접근해 앞발을 살그머니 넣더니 망설임 없이 집으로 느릿하게 들어온다. '어떤 것이 동기부여가 되어서 서슴없이 줄무늬고양이가 들어왔을까?'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줄무늬고양이가 빠르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줄은 몰랐던 상황에 나는 사뭇 당황했다. 그러나 줄무늬고양이는 나와 다르게 혼돈스럽지도 않고, 원래 식구였던 것처럼 노니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천연덕스러운 줄무늬고양이. 나는 슬며시 줄무늬고양이를 가족에 입성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삶은 닭가슴살과 참치를 번갈아 주고, 줄 장난감으로 놀아주었는데, 정말 애초에 함께였던 것처럼 그렇게 잘 먹고 잘 노니 기쁨이 두 배였다. 오죽하면 남편은 집에 퇴근해 와서도 내가 말하지 않는 동안 줄무늬고양이 존재를 몰랐을 정도였다. 문득 남편은 화장실을 가다 "원래 우리 고양이가 이리 많았나? 어! 쟤는 뭐냐? 언제 들어왔노? 야~ 나는 원래 키우는 냥인 줄 알았네" 하며, 남편도 태연한 줄무늬고양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 가족의 협의고 합사고 뭐고 필요 없고, 그저 우린 그렇게 줄무늬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때는 캐리, 해리 12살 몽수구리 11살 탐식이가 들어온 지 3년 되던 해였다. 그 줄무늬고양이 이름은 온누리에 착상하여 누리라고 짓고 불렀다.
누리, 마치 내게 늦둥냥이와도 같은. 나이차가 있는 형, 누나가 있어도 그저 마이웨이 하는 세상 달관한 스타일. 그것은 서열 상위 고양이들이 '카악' 하악질을 한다 해도, 누리는 능청스럽게 그 앞을 보란 듯이 태연자약(泰然自若) 지나가니. 서열이란 건 의미 없고 누리는 어떠한 경우도 일말의 분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히려 눈치가 없는 편이라 그런 것도 같은 댕청함. 또 그동안 넷 고양이들은 누리와 은근슬쩍 안면을 트기도 해서 서로 왈가불가 없는 것도 같은데, 누리는 그런 모습이 매력이었다. 그 매력에 탐식이는 첫눈에 반하던 때보다 더 누리를 추종하고 맹신하기 시작했다. 누리와 함께 온종일 놀았고, 가는 곳마다 쫓아다녀 가족들은 한편으로 누리가 탐식이의 귀여운 동생이 된 것 같아 흐뭇했다.
그런데 막내 누리가 들어오고, 복잡다단한 일이 발생했다. 그건 누리가 아기 길냥이로 있던 때에 아직 대소변의 위치 설정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앞서 빨리 대소변을 가렸던 넷보다 느렸으니 조금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마도 밖에서 화분 위 부드러운 흙에 소변을 보고, 변을 보았던 모양인데. 그래서 이불이 보드라우면 흙으로 착각하고 소변을 보고, 대변도 정정당당하게 그 정체를 드러내곤 했다. 누리의 유유자적한 모습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비밀 행보였다.
때문에 고양이 소변 냄새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독하기도 한 탓에 가족들은 '킁킁'거리며 향내를 발견하고 코를 버무렸다. 것도 그렇고 이불빨래도 자주 해야 하니 힘들었기에 우선 다섯째 누리의 집냥이로써 보완적 교육이 절실했다. 일단 화분의 흙과 같은 부드러운 모래 찾기 삼만 리를 하고, 뒤지고 뒤지어 누리가 흙으로 인지할 모래를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누리의 대소변의 가림이 성공한 첫날, 우린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도 어딘가 있을까, 하는 이불의 소변 지림의 걱정은 당분간 싹 없앨 순 없었지만 훈련병 누리는 교육을 거듭한 끝에 감을 서서히 잡아갔다. 그리고 누리에게 또 한 가지 남은 숙제가 있었으니 그건 중성화가 주는 심리 안정의 도모였다. 매번 중성화를 시키면서도 마음의 혼란은 많으나 여러모로 건강을 생각해서 이루어졌는데. 계획한 날 양순한 누리를 빠르게 이동장에 넣고, 병원으로 향했다. 누리는 병원으로 가면서도 하늘도 보고 바깥도 보고, 사람들도 구경하며 정말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얌전해도 너무 얌전해서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척척 진찰을 받았다. 오죽하면 누리가 검사를 받는데 병원에 있는 분들이 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칭찬할 정도였다. 누리는 누가 업어갈 수도 있는 성격이라 넷째 똥꼬 발랄한 탐식이 병원 가는 전쟁과는 사뭇 달랐으니 또 한 번 고양이들 성격은 다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럴 정도로 누리는 가볍게 수술실로 들어갔고, 야무지게 수술을 받아 순한데 더 순한 냥이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마친 후 누리를 자기가 데려가고 싶다고 고백할 정도로 아이가 의젓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씀에 또 냥 자식 자랑 팔불출이 되어 해맑게 웃으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탐식이의 열정적인 애정을 받으며 선비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누리. 누리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빠르게 회복해서 넷 고양이랑 뛰어놀았다. 이로써 누리의 합류로 다섯 고양이가 된 오냥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