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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묘와 줄무늬 새끼 고양이의 등장

줄무늬 새끼 고양이와의 만남

by 양다경

여름에 강해졌던 식물의 뿌리가 여기저기 가을의 기운을 타고 잎이 무성할 때쯤이었다. 무성한 잎은 거듭 색을 교차하며 물들기 시작하고, 또 그 잎 덕분에 계절이 바래지더니 점차 가을비를 머금던 잎들이 떨어져 주변 곳곳을 차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니 화분도 작은 텃밭도 정리할 생각에 마당 청소라는 깔끔한 기획을 계획했다. 매서운 겨울이 오기 전, 묵었던 식물을 걷어내 바스러진 흙을 정리하며 여기저기 쌓인 먼지도 흘려보낸다. 그 생각에 바지런히 또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고. 그러다 구석으로 다가가 청소하니 넓은 화분 위에 느릿느릿한 형체를 느끼게 되었다. 그건 한눈에도 나이가 좀 있는 털이 듬성듬성 빠진, 힘없는 탓에 피할 생각도 없는 노령의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그 노령의 고양이는 길에서의 생활이 피곤했는지 죽은 식물의 빈 화분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노령의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의례 눈을 서서히 감았다 뜨며, 안심의 눈짓을 보낸다. 이제 낯선 고양이와 마주친다 해도 그들을 바라볼 집사로서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고양이가 인사를 받아주던 안 받아주던 상관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눈짓은 이어져 끔뻑이는 눈인사로 이어지게 되고.

그런데 마침 그때였다. 화분 위 노령의 고양이 외에 그 뒤로 3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삐죽 고개를 내민 것이다. 호랑 줄무늬를 자랑하는 아주 귀여운 아기 고양이, 그러고 보니 화분 위 노령의 고양이는 젖가슴이 늘어져 있고, 분명 암고양이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그 고양이와 닮은 모습이 엄마와 새끼 고양이로 추정되었다. 사실 집이 후미진 주택이라 오고 가는 나그네 냥이가 더러 많았기 때문에 둘이 가족이라는 것이 신기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에 홀연히 나타난 노령묘와 아기 고양이는 어떠한 연유에서 이곳까지 발길이 닿았을까, 하는. 왠지 알싸한 느낌의 설렘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이미 고양이 넷을 데리고 있었으니, 고양이들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이곳까지 왔을 때는 큰 모험을 감행한 것임을 눈치채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벼운 눈인사를 다시 번갈아가며 두 고양이에게 흐뭇하게 보냈더랬다. 그러니 엉겁결이지만 나의 인사를 여러 번 받고 본 노령의 고양이와 줄무늬 새끼 고양이. 고양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특별히 하는 행동 없이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침에 쓰레기 분리수거 차, 남편이 기지개를 켜고 마당에 나갔을 때 일이다. 문득 화분 위에 미동 없이 축 늘어져 있는 한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다. 남편은 왠지 이상함을 직감하고 부랴부랴 나를 불렀다. 나는 또 뭔 일인가 싶어, 밖을 나가 가까이서 보니 일주일 전 본 그 노령의 고양이였다. 노령의 고양이는 이미 험난한 생을 마친 뒤였으니. 지나온 세월이 아팠는지 연약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노령의 암고양이. 세상에 태어나 온갖 여정의 가시밭길을 밟고 갔을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죽음을 맞이한 노령의 고양이 모습에 괜스레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아파졌다. 왠지 하루가 여삼추 같은 시간을 보냈을 그 고양이가 부디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기를 빌며. 남편과 나는 서둘러 널브러진 박스를 찾고, 두 개를 포개 또 부드러운 종이를 깔고, 생을 다한 노령의 고양이를 살포시 담았다. 담고 마당 한 귀퉁이에 흙을 파며 자리를 마련해 묻어주었는데. 만물이 상생했던 이곳에서 수고한 노령묘의 마음을 위로하듯 땅을 다독인다. 그런데 그렇게 마무리한 순간, 인근에 그 노령묘의 새끼로 추정되는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멀찍 감치 이곳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다. 나는 그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이쪽으로 보는 것을 느끼니 나도 무심결에 언뜻 바라보게 되고,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어미를 잃은 모습에 가련함이 다가와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주변을 맴돌고 특히 부엌 쪽 미닫이 창문에 앉아있었다. 부엌 창문은 방범창이 있고 방충망이 고정 없이 열리고 닫는 구조로 생선을 구울 때나 사골을 끓일 때 잠시 열어놓는 곳이었다. 그래서 방충망을 열면 창살 사이로 손이 들락날락할 정도였는데. 때문에 그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오는 것을 안 나는 가끔 작은 접시에 참치를 담아 음식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면 먹고 또 어디선가 놀고 간혹 들리기도 하는 줄무늬 새끼 고양이. 뭔가 보면 볼수록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과묵하면서도 가끔 찾아와 먹는 모습이 넉살 좋은 고양이로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심한 듯 방충망을 열어놓을 때가 자주 있었다. 방범창의 창살의 먼지를 닦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줄무늬 고양이를 은근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보통의 날처럼 오던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깜짝 쇼'처럼 가까이 다가와 창살 사이로 고개를 넣어보는 것이다. 놔두면 '쑥' 하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처음엔 놀랬지만 곧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고개만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자꾸 보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충망이 열린 방범창의 창살로 고개를 밀고, 자신의 머리가 통과해 들어갈 수 있나 없나, 타진했던 것일까. 그때마다 탐식이는 어디선가 눈치채고 부스럭 소리에 날름 튀어왔다. 새로운 친구에 대한 치기 어린 장난인지, 매번 줄무늬 새끼 고양이의 머리를 '콕콕' 때리며 앞발로 장난을 친다. 그러면 또 줄무늬 새끼 고양이는 한 끗 차이로 다리까지 내밀다 말곤 가버리곤 했는데, 그럴 땐 나는 뜻 모를 아쉬움에 방충망을 닫지 못하고 열어두기도 했다. 그건 나도 왠지 집으로 고개를 들이민 모습이 기대되기도 해서 과연 그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제 발로 집에 들어올 것인가, 하는 막연한 의구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물론 집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영상을 몇 번 접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겁이 많은 고양이가 제 발로 들어올 만큼 의기양양하다고?' 하는. 그러니 날개 돋은 나의 호기심은 날이 갈수록 궁금해져만 갔다.

그래서 이제는 대놓고 의도적으로 하루 종일 방충망을 열어놓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럴 때면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고개를 넣었다 접었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다리까지 슬쩍 넣어보고 급기야 몸의 반 정도까지 들어오는 줄무늬 새끼 고양이. 그 모습이 무척 신기하고 앙증맞기도 했다.

그러다 캐리, 해리, 몽수구리도 그런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들락날락하는 광경을 보기도 했는데, 딱히 관심이 없었고, 넷째 탐식이만 줄곧 줄무늬 새끼 고양이를 반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내게 '우리 집 아이니까 빨리 데려와요~' 하는 것 같이 "앙앙"거리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애써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탐식이를 말리는 척했지만, 그럴수록 탐식이와 나는 줄무늬고양이에게 집착하는 증상이 날로 심해지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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