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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진심인 형제 고양이

내성적 몽수구리와 천방지축 탐식이의 기싸움

by 양다경

냥이들도 생활 가운데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줄 서로의 이해관계가 필요하고 멋스러운 지혜도 필요하다. 의외로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기에.

​회색의 몽수구리는 성격이 MBTI로 볼 때 I 성향이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쓸쓸함을 즐기는 편이고 다른 냥이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옴쏙옴쏙 뭘 먹거나 대부분 수면으로 일상을 보냈다. 간혹 너무 미동이 없는 날에는 흔들어 건강을 확인하며 때론 아픈 건 아닌지 염려할 지경이었다. 턱시도 탐식이는 E 성향으로 외향적이고, 사방을 주시하며 소통을 달가워하는 냥이였다. 그래서 움직임의 동선이 일정하지 않았고 쉴 틈이 없이 바빠 보였는데. 아무래도 집안이 낯설기도 하고 궁금해서 그런 듯했다. 그런데 가끔 그 호기심이 넘쳐 직접 뜯고 맛보는 경험으로 이어져 집 안이 어수선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둘 공통점은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편식이 없고 '와구와구' 잘 먹는 편이었다.

​그렇게 서로 특이점과 공통점이 있는 몽수구리와 탐식이의 나이차는 딱 좋을 것만 같은 7살 차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밀착해서 냥이들을 보지 않으면 크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이고 둘은 친구 같기만 했다. 아마도 냥이들은 다 동안인 것 같기도 한. 그래서 냥이들 세계에서 마주치면 맞먹기도 하나, 싶은 추측이 들 정도이다. 실제 고양이들을 접해봐도 어느 정도 성묘가 되고 중년까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이 있었다.

​아무튼, 셋째 몽수구리는 넷째 탐식이가 들어오기 전, 첫째 캐리, 둘째 해리에 비해 음식에 무척 진심이어서 식욕이 강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몽수구리는 양을 많이 원했을 뿐, 크게 목소리를 낸다거나 보채지는 않는 성격으로 음식을 정중하게 대했다. 그저 내가 음식을 주려는 낌새를 보이면 가까이 다가와 바라보는 정도였는데. 병원에서 몽수구리가 뚱냥이 검진을 받은 후,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참치 캔을 주고 먹는 식이었다. 그런데 탐식이, 넷째가 들어와서 상황은 전에 없이 달라졌다. 탐식이가 몽수구리와는 다르게 기다리지 않고, 보다 다양하게 음식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자신이 다 먹고 난 후도 몽수구리의 음식을 캐치하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음식을 향한 마음은 같을진대 서두르지 않는 몽수구리는 탐식이에게 먼저 먹을거릴 내주기 십상이었으니. 몽수구리는 그럴 때면 이내 "아아 앙" 하며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러니 워낙 말 없는 몽수구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짜증을 내는 것으로 봤을 때, 스스로 아주 고된 모양이었는데. 그래도 탐식이는 그런 몽수구리를 아예 신경 쓰지 않았고, 자기 주파수대로 움직였고. 그래서 몽수구리는 점점 불신의 벽을 쌓더니 "캬"'하며 안절부절못한 형태로 흘러갔다.

​그러다 엎치데 덮친 격으로 탐식이는 점차 집안 분위기가 익숙해지자, 몽수구리가 만만한지 부쩍 태클을 거는 일도 빈번했다. 몽수구리가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닌 것이 살짝 서열 3위가 알쏭달쏭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몽수구리가 서열의식의 일환으로 맘먹고 탐식이를 공격했던 적이 있었는데 불발이 된 솜방망이 사건 때문이었다. 그래서 몽수구리는 허울뿐인 자신의 3위 자리를 탐식이가 겨냥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도 꾸역꾸역 감수하며 놀아주곤 했는데. 그마저도 성향과 나이 탓에 응대하는 것도 점차 힘들어 보였다. 그러니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몽수구리에게 탐식이는 여러모로 번거로운 동생 냥이였다.

​그런데, 몽수구리는 어느 날 탐식에게서 후광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건 탐식이가 음식을 여기저기 숨기는 탓에 내가 음식 무한리필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바깥 생활에서의 탐식이 습관을 끊기 위해 당분간 실행하는 거였는데, 몽수구리는 제법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몽수구리가 마음에 아주 위안이 되는 일로, 탐식이가 이제 음식을 나오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다. 몽수구리는 어느새 몸가짐을 가벼이 하며 탐식이를 살짝 뒤따르고 있었다. 아마도 병원에서 뚱냥이 검진을 받은 후,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던 몽수구리는 그 다이어트 일과가 곧 끝날 것을 암시한 일이었으니, 마냥 반갑고 유쾌하게 임하는 듯했다. 그래서 음식이 전에 보다 풍성해지자 더 이상 탐식이의 행보에 복수의 의미가 사라진 몽수구리. 문득 형제의 대결구도는 무의미해지고. 어쩌면 넷째 탐식이가 들어온 이 상황을 얻게 된 것이 몽수구리에겐 마냥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밥시간이고 뭐고 시시때때로 탐식이가 앞서면 몽수구리가 뒤서거니 하고 꼭 같이 따라붙는다. 둘은 마치 용감한 형제처럼 서로 왈가불가해도 음식 앞에서는 마음을 함께 했으니 영원한 우정도 맹세할 참이다. 그건 냥이들의 최애 츄르를 줄 때도 마찬가지로, 탐식이가 먼저 먹어도 몽수구리는 곁에 바짝 다가와 있을 뿐 차례를 느긋이 기다렸다. 결국 집사 양반은 탐식이에게 맛난 걸 주고 나면, 몽수구리 자신을 외면할 수 없고, 음식은 전에 보다 차고 넘친다,라고 인지했으니. 결국 새로이 가족이 된 탐식이의 장점을 발견한 몽수구리는 동생 탐식이에 대한 마음속 이물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하루 몽수구리는 탐식이가 아주 기특하고 참한 녀석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이어트를 끝내고 만찬의 세계를 열어 준 멋진 녀석, 제대로 된 녀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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