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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넷의 합사 그리고 허당 매력 탐식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

by 양다경


탐식이를 입양한 건 탐식이가 6, 7개월쯤 추정되고, 막내 몽수구리를 입양한 날로부터 8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하루는 지루할 틈이 없고, 봄볕이 유난히도 하얀 날, 그래서 너도 나도 꽃들이 만발하여 또 그 사이로 난 새 풀들도 생경한 그날, 그렇게 새 식구인 탐식이를 버선발을 걷어붙이고 나가 가족들은 환영했다. 탐식이가 오직 건강하고 쾌활하기를 바라며.

그런데, 가족들이 그렇다 하더라도 낯선 냥이에게 흔쾌히 가족의 자리를 내어줄 세 고양이(첫째 캐리, 둘째 해리, 셋째 몽수구리)들과의 합사가 중요했으니. 잠깐 서로 알아가는 마음의 출입 시기를 허용하고, 우린 기다려야만 할 때였다.

​탐식이 외향의 모습은 흑과 백의 색의 조화로 누구나 알만한 턱시도 고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턱시도 고양이가 양복과 비슷한 느낌의 신사를 연상한다고들 해서, 왠지 그 생김새가 주는 느낌이 여유롭고 포근함이 나올 것 같은 첫인상. 그러나 탐식이는 그런 선입견과는 조금 다르게 말괄량이처럼 발랄함이 넘치고, 집에 들어와선 아주 명쾌하게도 뛰어다녔다. 할 말도 주절주절 꽤 많은 편이라 듣다 보면 하루가 실시간으로 움직여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먹을 것을 넉넉히 내어 주어도 자신이 허가한 만큼 요깃거리를 달라, 하는. 무척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거침없는 냥이었다. 그런 탐식이를 보면 나는 고양이를 입양할 때마다 저마다 다른 냥이들의 성격에 신기했고, 탐식이가 개구쟁이라 정감이 넘쳐났다. 어쩜 싫은 냥이는 하나도 없는지. 하지만 해리와 캐리, 몽수구리는 그런 탐식이가 조금은 수다쟁이로 여겨지고, 쟤는 '우리 셋과 너무 다른데?'라는 생각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고양이 의식인 똥구멍 교감 탐지기를 통해 그 거리를 좁히려 하는 것처럼 바빠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나이 차이에서 오는 스타일과 체력도 있었기에 영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삶을 조용하게 음미하려던 중년쯤의 해리, 캐리, 몽에게 탐식이는 어리기도 했고, 성격도 밝아도 너무 밝아 분위기 훼방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탐식이 입양 초에 넷이 맞지 않고 서로 엇갈려서 상처를 받을까, 나는 때때로 우려하기도 했다. 그 우려가 더해진 건 탐식이가 수다 냥이기도 했지만,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챙기고 숨기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소는 대체로 이불과 방석 곳곳이었는데, 그건 밖의 생활 동안 여러 고양이들과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했다. 때문에 세 고양이가 일상처럼 이불 위에 안거나 그 속에 들어가려고 하면 난데없이 간식이 나오기도 하였으니, 그들 세계에서 탐식이는 약간 더티한 색깔을 가진 냥인 셈이다. 그 모습은 아마도 몽수구리의 급발진 식욕하고는 차원이 다른, 음식을 넉넉히 두고 저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 다람쥐? 같은 욕구였다. 당연히 인간인 우린 수용 가능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깔끔한 성격의 해리, 캐리, 몽은 준비 못 한 난관으로 서열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되어갔다. 나는 개선을 위해 음식을 듬뿍 주곤 했는데, 돌아서면 탐식의 행동은 별다른 수확이 없었고, 탐식이는 그저 식량비축을 위해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니 나는 더 노력해 음식을 원할 때마다 뷔페식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으로도 취향을 저격해야 했다. 그런데도 또 여러 차례 불발이 있었으니. 그래서 탐식이가 어떻게 하면 음식을 숨기는 것에 미련을 버릴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 서두르지 않고, 맞춤형 서비스로 식단을 마련하고, 무한리필을 통해 순차적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더랬다. 그랬더니 조금은 그 행동이 잦아들기도 했는데, 그런데 이 계획을 알 리 없는 넷 고양이는 그 사이 감정의 농도가 짙어져 그들만의 서열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열 1위인 캐리는 빠르게 그 흐름을 눈치채고, 거실 무대를 누비며 탐식이의 의도적인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방어를 계획하고 작전이 있을 모양이었다. 매일 시시때때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사방을 주시하고 있던 캐리. 그래서인지 준비된 냥이었던 캐리는 탐식이의 공격이 들어오자 납작 엎드려 날카로운 음색과 있는 힘껏 공격 높이뛰기를 했다. 그러자 탐식이가 놀라서 다가가지 못하고, 캐리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게 됐는데. 그래도 알게 모르게 1위 서열을 노리고 다시 한번 밀어 부칠 기세로 일관했다. 하지만 캐리는 질리 없었고, 자리를 사수하고픈 막강 파워, 쌓아온 내공이 있어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열의 열쇠를 쥐고 있던 캐리는 탐식이가 여러 번 옆구리 공격을 할라는 찰나, 무력화시켜 탐식이를 질겁하게 했으니. 결국 캐리는 집 안 내부를 잘 아는 계획된 밑장 깔기의 승리로 탐식이를 한판승에 주눅 들게 한 것이다. 탐식이는 그제야 제대로 덤비지 못하고, 약간의 허당끼를 발산하며 캐리에게 머리를 수그렸다. 그래도 한결같이 여전히 음식이 나오면 그 싸움 자리를 바로 털어버리며, 음식을 또 입에다 넣고 집 안 어디론가 사라졌다.

2위 서열 해리도 탐식이의 공격을 받긴 했는데, 해리는 별생각 없이 여전히 밖의 세상, 그 염탐의 기회를 노리는 것에 집중했다. 마치 밖의 세계 로망이 있는 마냥 무척 동경하고 있었기에 탐식이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고, 한낱 무상개념으로 받아들이고, 탐식이가 지나가도 딱히 별도의 교섭이 없었다. 그래도 탐식이가 다가오면 해리는 '종종 목소리를 너무 내는 건 피곤해요' 하듯 "앙앙앙" 엷게 화를 짓누르며 최대한 탐식이와의 맞대응만은 피하기도 했다. 그러니 무상무념 자유냥 해리에게 압박을 가하던 탐식이는 제대로 캐리에게 빈축만 사더니 그냥 무관심의 승으로 해리가 서열을 유지했다,

​그리고, 서열 3위 몽수구리가 남았으니. 몽수구리는 탐식이가 자신과 비슷하게 음식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눈치채고 무척 당황한 모습이었다. 뭔가 취향이 같은 것을 알아가는 모양인데, 마음가짐이 같기에 애초에 서로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그건 탐식이가 들어오기 전, 캐리, 해리가 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자신이 다 음식을 컨트롤할 수 있었고, 막내였기에 귀염둥이로 인지도를 잡아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탐식이가 다짜고짜 막내가 되고, 음식도 경쟁이 붙으니 짜증이 폭발해 처음엔 몽수구리는 매번 내게 다가와 토로했다.
'저 봐요 탐식이가 내 음식 다 뺏어가요' "아아 왕" 하는 압박의 불만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둘을 분리하며 상응하는 대처를 하고 식단을 나누어 준비하곤 했으나, 취향 저격 음식의 냄새가 똑같이 맛났으니. 어김없이 원스톱 탐식이는 날아다니며 달려왔다. 몽수구리는 그 모습을 보면 신중한 느낌으로 계산을 하고 빠르게 몸을 돌렸으나 나름 앙심이 쌓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때론 탐식이를 견제하는 눈빛으로 날을 세워 한방을 벼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하루, 탐식이가 음식을 독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또 보이자, 몽수구리는 전에 없는 화를 내며 재차 탐식이에게 항의에 돌입했다. 아무래도 음식이 사라지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순간들이 장기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탐식이가 이를 수렴할 리가 없고, 그래서 몽수구리는 나름 절권도를 가지고 탐식이를 마음먹고 한대 치게 되었는데. 그러나, 자신의 생각보다 몸이 가볍지 않았던 몽수구리.

탐식이에게 타격감이 1도 없는 솜방방이 수준으로 부딪힌 듯 끝나버리고. 그러니 몽수구리는 새로 온 탐식이로 인해 음식을 뺏길 것 같은 우중충 불안감과 우울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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