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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턱시도 고양이와의 밀당

셋에서 넷으로 되는 고양이 입양이야기

by 양다경

새끼 턱시도 고양이는 우연히 찾아들게 된 그날부터 우리 집에 머무는 고양이가 되었다. 먼지가 엷게 내려앉은 바닥을 사뿐사뿐 걸어 햇살이 돋아나는 마당에 온 새끼 턱시도 고양이. 화분이 있는 마당을 지나 베란다 유리통창까지 와 걸터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유리창 너머 세 마리의 고양이(캐리, 해리, 몽수구리)와 눈 마주침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캐리는 저항의 눈빛으로 제압하며, "으르렁" 하는 신경전도 벌였다. 하지만 새끼 턱시도 고양이는 으름장을 놓아도 싸울 의지가 그다지 없다는 듯 하품을 크게 하며. 그저 친근함의 표시로 모서리에 머리를 대고 비비적거렸다. 가끔은 다가와 유리벽을 발로 '탁탁' 쳐보기도 했는데, 그러면 베란다 유리통창의 두께가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머물게 된 새끼 턱시도 고양이는 다음에 올 것을 넌지시 예약하듯 화단에 소변을 보고 앞발로 흙을 덮고 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때로는 나는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해리, 캐리, 몽수구리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묘했다. 그래서 호기심이 스며들어 안 보이는 날엔 '밀당인가?' 하며 마당을 나가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러면 낮에 보이지 않다가도 어김없이 저녁 어스름할 즘, 귀를 쫑긋 세우고 통창 옆,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새끼 턱시도 고양이. 나를 보고도 심드렁하며 딱히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오면 의례 근처에 물과 참치 캔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서로 낯가림이 많이 풀어진 상태가 되어 쌍방 간의 살짝 곁눈질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지키는 철칙은 있었으니. 내가 있는 걸 감지하면 배가 고파도 참고, 내 발소리가 사라질 때쯤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이다. 나는 그러면 사라지는 척하다, 발길을 돌려 벽 사이에 숨어 있다, 그 모습을 탐색하고는 했다. 그러면 캔을 다 먹고, 배부른지 움츠렸던 몸을 길게 펴고. 또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턱시도 고양이 역시, 미스터리가 가득 찬 눈망울로 나를 살피곤 했다.


​​그다음 날 그다음 날도, 새끼 턱시도 고양이와 나의 썸 타는 생활이 지속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이 새끼 턱시도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동네에 옴므파탈 중년 턱시도 고양이가 있었는데, 분명 그 고양이의 새끼였다. 누가 봐도 아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똑 닮은 아우라. 그 아빠로 추정되는 옴므파탈 중년의 턱시도 고양이는 때가 되면 암 고양이를 쫓아다녔다. 그러던 몇 달 후, 이 어린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출몰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 집에 터를 잡기 전, 그전에도 아주 어릴 때 설렁설렁 마주쳤던 것. 아마도 내가 고양이 셋을 키우는 입장이 되다 보니, 고양이를 보는 시선의 애정전선이 맘대로 덜거덕 거린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보는 새끼 냥이들마다 다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신중함이란 단서를 달고 자중하며 지나쳐야만 했다. 그리고 새끼 턱시도 고양이도 어미가 있었기에, 나는 오고 가는 고양이들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고 그럭저럭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려 하며. 하지만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서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만 남겨져 있었다. 막 홀로서기를 시도해 이른 것도 같은 새끼 턱시도 고양이. 아마도 안식처라 생각하고 후미진 주택에 찾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새끼 턱시도 고양이 혼자만의 안식처가 될 수 없었기에, 차츰 클수록 아빠로 추정되는 중년 턱시도 고양이와 밤이면 치열한 영역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턱시도 고양이는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인 줄 모르는 듯했으니. 그 싸우는 소리는 고막을 멍하니 만들 만큼 날카로웠다. 가족들은 그 소리에 한 번씩 나가 싸움을 말리기도 했는데, 고양이들은 그 서열을 정해 자신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 본능적이어서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리다고 생각해 막연히 질 거라 생각한 새끼 턱시도 고양이는 의외로 아빠 턱시도 고양이에게 지지 않고, 눈과 어깨를 치켜세우며 싸웠다. 그래서 싸움은 시간의 연장선상에 달리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아니 우열의 의미보다 권력의 선수를 치고 싶은 두 고양이라, 그렇게 저녁쯤이면 쫓고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 맞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쫓는지 누가 잡고 잡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당 쾅쾅하는 소리가 들리는 하루였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날도 종료를 알리려는 시간이 다가왔으니. 어느 날 새벽, '캬악악 카악' 하는,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는 고양이들의 굉음이 들렸다. 나는 놀래서 나가보니 어둠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밖, 음산하리만큼 사방이 조용했는데. 그 순간, 그 조용함을 뚫고, 갑자기 '야옹' 소리가 구슬프게 났다.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지치고 아픈 몰골로 통창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새끼 턱시도 고양이에게 눈길을 줬다. 아무래도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구역 싸움에서 진 것 같았던 그날. 하지만 그 승리와 패배는 어느 쪽도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그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새끼 턱시도 고양이를 눈에 담고 그냥 막연히 십여 분간 서 있었다. 새끼 턱시도 고양이는 아마도 이제 이곳을 떠나 못 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생각에 그동안 아픈 시간을 보냈을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잔잔히 마음에 들어와 경계의 빗장을 녹여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음날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너져요, 근처에서 맴돌았던 시간이 있으니… 데려와야 할 것만 같고…" 나는 풀 죽은 모습으로 남편에게 먼저 속내를 드러냈다. "왜 그래, 더 이상의 입양은 곤란해" 남편은 그동안 예상을 했는지 내 말을 듣자마자 그 입양의 무게 강도를 새삼 상기시키며 반대를 내비쳤다. 그건 몽수구리를 세 번째로 데려온 날, 암암리에 반려묘는 여기까지라고, 모두가 끄덕였기 때문이다."마음 약해질 때마다 길냥이를 다 데려올 거야? 많은 책임을 자처하지 마!" 남편은 빗발치는 원성을 쏟아냈다. 의견을 들은 딸아이들은 차분히 셋과 넷의 차이는 감당의 차이가 있다, 얘기하며 마찬가지로 조금은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다 서로를 걱정하는 목소리였고, 반려동물에 대한 깊은 의무의 중책 같은 것이었다. 반려동물 입양은 매번 새로운 가족의 출발선상에 서야 됨을 알기에.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주변을 맴도는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제 발로 다가오던 그 호기로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아니라,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나를 예정된 선택권으로 쓴 것만 같은. 나는 기대를 가지고 가족들의 합의와 해답이 있으리라고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반대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던 남편은 "내 참, 내가 나가든가 해야지" 하며 간간이 무언의 압박의 말을 하는데 그 표정은 점차 물러지고 희미해지는 듯 보였다. 딸들도 "괜찮겠어? 엄마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힘을 보태야지" 하며 나의 마음을 보살피는 말과 함께 턱시도 고양이 입양에 한발 자욱 다가오는 말을 넌지시 건네고.


그래서 조금 더 의견을 타진하고 기다리니 "막는다고 되겠어? 턱시도 고양이 이름은 정했고? 이제 넷이네~" 하며 가족들이 그 턱시도 고양이와 나와의 저울에서 그 무게 중심을 꽉 잡아주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생각보다 명쾌하고 승낙의 표면화된 답이었다.


​드디어 햇살이 넘쳐 개나리도 방긋 웃을 때,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주며, 안팎의 통제인 현관문을 열게 되고, 그 새끼 턱시도 고양이가 슬그머니 들어와 가족에 합류했다. 그 이름은 탐식이. 탐식이라고 하고, 애칭은 타미, 탐이라고도 불렀다.


근데 희한하게도 이름을 반대로 하면 식탐이 되는데, 그 이름처럼 다 먹고도, 먹지도 못할 음식을 숨기는 식탐이 있는 습관이 있었다. 아마도 밖에서 산 자신만의 축적된 방식이리라. 이름, 참 맛깔나게도 지었으니.


그러니 문제는 탐식이는 집에 오자마자 깔끔한 식사를 원하는 캐리, 해리와 음식의 애착이 있는 몽수구리와 긴밀한 협상을 위해 선 긋기에 들어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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