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냥이 몽수구리
익숙한 길을 걸어 딸과 함께 몽수구리를 데리고 병원에 들어섰다. 늘 그렇듯 병원의 색과 향기는 동물 병원의 특유의 느낌을 받는다. 따뜻하면서도 청량한, 그 화사한 색의 가운데 카운터가 있고, 우린 다가가 몽수구리가 예약묘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양이 진찰 대기실, 거기에 이르니 별도의 냥이가 없었기에. 대기하면 의사 선생님께선 곧 몽수구리의 이름을 호명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은 바로 "몽수구리" 하며 나오시고, 모니터에 몽수구리의 예전 차트를 올리시며 면밀히 살피셨다. "몽수구리, 아이가 어디가 불편할까요?" 의사 선생님은 답변을 바라는 모습으로 딸과 나를 번갈아 보며 질문하셨다. 딸은 즉시, "몽수구리의 변에 피가 보여서 왔어요" 하고 말하곤 찍어 온 몽수구리 변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핸드폰의 몽수구리의 변을 확인하시고 "음, 몽수구리 몸무게가 어느 정도 되죠?" 선생님은 말씀하시면서도 고개를 몽수구리 쪽으로 돌리며 체중을 대략 가늠하는 듯도 하시다. 그런 선생님께 나는 8킬로까지 저울이 간 것도 같은데, 좀 줄여서 "7.5킬로 정도? 나가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으시자 선생님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변의 생김새를 다시 눈으로 진찰하시고, 몽수구리를 빤히 쳐다보셨다. 나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내심 몽수구리 체중을 속인 것도 같아 죄의식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민 끝에 "몽수구리는 배 초음파와 혈액검사가 필요하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딸과 나는 바로 동의했고, 멍 때리던 몽수구리는 검사를 위해 간호사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내부 진찰실로 들어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진찰실에서 나온 몽수구리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 탓에 가슴에서 배까지 속절없이 털이 밀려, 분홍 뱃살을 들어내고 있었다. 다소 까칠한 모습의 몽수구리. 몽수구리 배는 연분홍색에다 허연 빛깔의 향연, 생각보다 넉넉하고 예뻐서 그 배는 시선을 한 몸에 받기 충분했다. 하지만 몽수구리는 그러든지 말든지 화가 나 있었고, 그 내부 진찰실 일이 악몽이었는지, 원망의 "캬르릉"소리를 냈다. 딸과 나는 그런 눈빛으로 경계하는 몽수구리를 애써 외면하고, 심기일전해서 얼른 이동장에 넣었다.
선생님은 바로 몽수구리 진찰 결과를 말하려고 컴퓨터 모니터에 손을 댔다. 그리고 몽수구리 속 내부 사진을 올리셨다. "음…….” 하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배 초음파는 이런 모습입니다."라며 복부 안을 보여주셨다. 모니터 속 복부 사진은 마치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 같기도 한, 곳곳에 구름사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딸도 그 사진을 몰두해서 보고 있고, 나도 뚫어져라 세심히 살펴봤다. 그때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 들려왔다. "아주 조그만 결석이 보이는 듯도 한데, 워낙 이곳저곳 지방층이 많아요. 그 부분이 두텁기도 해서, 육안으로 보기 쉽지 않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우리는 그 무릉도원이 지방층이고, 그동안 음식만 보면 달려들어 흡입하던 몽수구리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몽수구리가 말로만 듣던 '뚱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다소 듬직하게 느껴진 몽수구리를 실은 이동장. 그 감촉도 깨닫게 되며. 그렇게 생각이 미치는 중, 선생님은 그 배 내부, 구름 사진을 더욱 확대시키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근데, 결석이라 해도 수술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니고요, 흠… 물을 많이 마시게 하고, 약도 먹이고 일단 지켜보죠, 소변 배출로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러려면 다이어트도 필요한데" 하며 의견을 피력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에 몽수구리가 '뚱냥이'가 될 때까지 방치한 책임. 뱃살을 치켜세우며 귀여워했던 사실, 그 생각에 뜨끔하고 자책이 올라왔다. 그런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선생님은 살포시 미소를 띠시며 "뱃살이 조금 빠지면 정확한 검사가 이루어질 듯도 합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희망을 주셨다. 그래서 다이어트 한 뒤, 재검사를 하고 혈액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확인하세요,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해 주셨다. 그러는 사이 몽수구리는 자신에게 닥친 이 가혹한 시간들에 의문점이 한가득인 표정으로 의기소침해 있었다. 간혹 갇힌 이동장 속에서 밖의 딸과 나를 번갈아 쏘아보기도 했다. 딸은 그런 몽수구리에게 "괜찮아~ 몽수구리야~" 하며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몽수구리를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몽수구리는 썩 믿지 않는, 불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갸오웅'거렸다.
일단 그날, 그 정도의 진찰 결과를 듣고, 신장에 좋은 약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 됐건 뱃살이 좀 빠져서 그 작은 결석이란 놈을 찾고 없애고 볼일이다. 집에 온 몽수구리는 배신감에 두어 시간 숨기 바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바깥으로 몽수구리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는데.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려는 듯 뒤뚱거리며 사료가 있는 곳으로 바삐 가고 있었다. 아마도 몽수구리는 또 습관적으로 사료를 다 먹어 해치울지 모른다. 나는 순간, 몽수구리의 널찍한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털이 밀린 몽수구리의 배. 그쪽으로도 시선이 가고. 층계 층계 계단처럼 접혀 있고 출렁댐도 크게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출렁대는 그 지방을 없애버릴, 앞으로 몽수구리의 건강 다이어트 작전이 중요할 것이다. 속 사정을 모르는 해리, 캐리는 몽이에게 병원 냄새가 나는지 낯선 고양이로 간주하고, 사방을 경계태세로 갖췄다. 그런데도 몽수구리는 아랑곳없이 이미 사료 그릇에 코를 박고, '챱챱'먹고 있었다.
나는 이번 일로 몽수구리뿐만 아니라 고양이들의 체중 관리를 전에 없이 분명하게 설정해야 하고. 또 그것은 고양이 셋의 건강을 면밀히 신경 쓰는 일로 거듭나며. 반성해야만 했다. 그러나, 셋외에 고양이가 더 있을 거라는 그런 미래가 있을지 모르는 그때, 잠깐의 한정된 사고였으니. 그 후, 고양이 넷으로의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