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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12. 2022

응원하고 후회하고...

"선배는 아이 유치원 보낼 때 방과 후 수업 뭐 보냈어요?"     


점심 산책길에 3살짜리 딸을 키우는 남자 팀원 C가 물었다.     


"방과 후 수업? 무슨 방과 후?"

"유치원 끝나고 애엄마나 제가 퇴근할 때까지 애를 맡길 데가 없어서 퇴근 전까지 미술학원이든 피아노든 보내야 할 것 같아서요. 선배는 그때 어떻게 했어요?"     


나? 나 그때 어떻게 했었지? 우리 팀 막내가 아이 돌봄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내 딸의 어린 시절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C의 말대로 유치원은 어정쩡한 시간에 하원을 시키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유치원을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10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취학 전까지 그곳에 보냈다. 집 앞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구립 어린이집이 두 군데나 있었지만 그곳들은 내가 퇴근하기 이전인 7시까지 밖에 아이를 봐주지 않았다. 우리 애만 7시에 데려간다고 엄청 눈치를 주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늦게까지 아이를 봐주는 어린이집이 회사 근처에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집은 방배동, 나의 직장은 삼청동, 남편 직장은 여의도, 어린이집은 광화문인데도 고민할 것이 없었다.    

 

아침 7시면 외출복을 입힌 채로 재운 아이를 들쳐 엎고 카시트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내가 운전을 안하기 때문에 남편은 광화문에 나와 아이를 데려다주고 다시 여의도로 향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마련한 방에서 집에서 싸온 주먹밥이나 과일, 요거트를 먹이고, 여린 머리카락에 물을 발라 정리한 후 쫑쫑 땋아주었다. 나처럼 아침 도시락을 먹이고 머리를 빗겨주고 출근 전에 잠시 놀아주는 엄마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8시 40분이 되면 아이와 저녁에 보자고 인사하고 택시를 타고 삼청동 회사로 향했다.     


퇴근 시간에는 다시 택시를 타고 광화문 어린이집으로 갔다. 아이에게 저녁으로 쌀국수, 햄버거, 자장면을 번갈아 먹여가며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귀가시간은 거의 9시, 씻겨서 재우기도 바빴다. 야근하는 날에는 아이를 데리고 주로 택시를 탔는데, 피곤해서 칭얼대는 아이 입에 사탕과 과자를 물리고 택시 안에서 잠든 아이 등을 토닥거려주었던 기억도 난다. 나중에는 조카를 무척 사랑하는 나의 언니가 아이의 하원을 도와주어 수고로움을 많이 덜었지만, 아이가 4살 때부터 7살 때까지 아침 전쟁은 매일매일 겪어야 했고, 야근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내가 아이를 데리고 늦게 귀가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C의 한숨이 깊어졌다. '그렇게 어렵게 다녔군요. 저는 어쩌죠? 아내는 저보다 일찍 출근해야 해서 아침에는 제가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고, 집 근처에 늦게까지 봐주는 곳도 없네요. 선배 얘기를 들으니 회사 근처 어린이집으로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라고 한다.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다. 내 이야기를 해주는 의도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육아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하면되고 책임감 있는 부모이니까 잘 해낼 것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인데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 같았다.     


어깨가 축쳐진 C에게 '요즘 젊은 아빠들이 얼마나 야무지게 잘하는데, C도 요즘 젊은 아빠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아. 겁먹을 필요도 없어. 정말 정말 힘들고 조마조마한 시간들이지만 아이는 별 탈없이 잘 크니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라고 답해주었다. 나도 내가 없는 사이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달달 떨었는데, 아이는 탈 없이 잘 컸고 그 과정에서 부모들은 인내하는 법, 일을 요령껏 처리하는 법, 마음을 넓게 가지는 법 등을 배우면서 내면을 더 채워갈 수 있었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C는 그저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 보낸 나를 부러워했다. 갑자기 부러운 눈으로 나를 보는 C의 모습과, 입시준비를 걱정하며 이미 입시를 끝낸 친구와 선배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나도 아이키우기는 처음이라 모든 게 두렵고 잘 모르는데, 누구를 훈계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애 하나 겨우 키우면서 뭘 안다고 나댔는지, 그냥 짧게 말하고 말 걸. 괜히 나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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