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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28. 2023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네

회사 생활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임을 매일 증명하는 과정인 것 같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늘 내가 어떤 식으로든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저는 A라는 프로젝트에서 a'의 업무를 최고로 잘할 수 있어요. 자, 이것 좀 보세요. 제가 만든 것이 과장님이 탐내하는 옆팀의 똘이가 만든 것보다 10센티미터는 더 길죠? 만드는데 1시간이나 적게 들었는데도 말이죠. 어때요. 저 괜찮죠? 과장님, 다음 프로젝트에도 저를 불러주실 거죠?" 


이런 말을 하는데 거침이 없어야 한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일을 억지로 할 때에도 내가 참말로 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능력과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거나 최악의 경우 짐을 싸야 한다. 자리가 위태로워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내가 잘났음을 드러내야 한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더 늘어나서 증명하기 위해 더 뛰고 더 영악해져야 하기에 독하고 치열하게 노력하곤 했다. 


밥벌이가 적성에 맞거나 원하던 일은 아니라서 가끔 지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내 능력을 증명하며 잘 지내왔다. 그런데 작년에 너무 뛰었나 보다. 최근 몇 달 동안은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에 지쳤다. 지쳐서인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때 크게 위축된다. 위축은 종종 불안으로 이어져서 잠을 설치는 날이 늘고 있다. 쉬어야 할 때인 것이 분명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푹 쉬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고 했는데, 자꾸 회사일이 생각난다. 소파에 누워있어도 체육관에서 바벨을 들어도 요리에 집중하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문득문득 일이 생각이 난다. 생각하지 말자고 도리질을 하고 아무리 생각을 눌러도 생각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코끼리가 생각나듯, 일이 자꾸 생각난다. 아, 이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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