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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21. 2023

취향은 존중하고 비용은 현명하게

저와 남편은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라 덜 싸울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서서히 발견하면서 싸우기도 자주 싸웠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남편과 덤덤한 성격을 가진 나, 외동으로 자라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사색하기를 즐기는 남편과 딸 넷이 복닥거리며 시끌벅적하게 자라 외로움 하고는 거리가 먼 나는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나는 남편이 방에 들어가면 문을 닫고 있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는 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하시며 딸들이 방문을 닫고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거든요(첫째와 막내가 10살 차이가 나는 네 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관리하기에 방문을 열어두는 것이 유용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 남편에게 방문을 닫는 것이 싫다고 하고, 반대로 남편은 혼자 있고 싶은데 왜 자꾸 방문을 열어두라고 하느냐면서 쓸데없이 싸웠습니다.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참 잘 지내는데요, 사실 맞는 것이 그리 많지 않죠.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몇 개 있는데, 커피와 와인에 대한 취향이 바로 그것입니다. 커피, 와인......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그럴싸해 보이죠? 오해는 마세요. 커피와 와인의 맛과 향을 섬세하게 즐기는 마니아라는 뜻은 절대 아니랍니다. 그냥 두 사람이 커피와 와인을 대하는 방식이 동일하다는 이야기예요. 좀 더 쉽게 말하면, 커피나 와인이 좋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싫어서 거부하는 방식이 동일하다는 겁니다. 그 모습이 어떠한지 커피의 예부터 들어볼까요?


우리 부부가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은 절대적으로 커피의 맛입니다. 카페 분위기가 아무리 멋스럽고 운치 있고, 유명세가 전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라 하더라도 커피가 맛이 없다면 우리의 선택지에서 제외됩니다. 영혼을 달래주는 커피의 맛! 커피의 첫 모금이 주는 황홀한 향과 다음 한 모금을 절로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쌉쌀함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안함을 주지요. 그래서 집 주변에는 나와 남편의 영혼을 달래주는 단골 커피집 두어 군데는 꼭 마련해 둡니다. 빡빡한 일상에서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찾으려면 반드시 맛난 커피집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일까요? 저희 부부에게는 여행지에서도 맛집 검색보다 우선하는 것이 커피 맛집 검색이랍니다. 커피만 맛이 있다면야 식사를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워도 행복하고 풍요롭답니다.


순전히 저와 남편의 기준이지만, 최근에는 대체로 예쁜 찻잔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카페들이 커피를 잘 내린다는 점도 발견했어요. 오늘도 점심 먹고 산책을 하면서  이 기준에 맞는 동네 커피 맛집을 찾아보았습니다. 영하의 추위를 무릅쓰고 탐색했는데, 영혼을 달래기 위해 주말에 꼭 들러봐야 할 새 커피집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커피 맛은 물론 좋았고요, 커피 마실 때 주인장이 틀어준 음반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커피를 마시며 바로 온라인으로 음반을 주문하는 재미도 맛보았답니다. 당분간은 이 커피집에 정착할 것 같아요.


와인도 비슷합니다. 이태리 와인을 사랑하는 남편과 모든 지역의 와인을 가리지 않고 다 마시는 나(는 술을 너무도 사랑하는 술꾼이에요) 사이에 와인 취향의 간극은 매우 큽니다. 남편은 내가 와인 맛을 1도 모른다고 하고, 나는 남편에게 새로운 맛을 시도하지 않는 겁쟁이라고 대응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의 지적이 다 맞습니다. 와인을 마셔본 경력이 남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혀가 예민한 편도 아니지만, 그냥 지고 싶지는 않아서 박박 거리는 거죠. 그래서 취향에 대해 서로 각을 세울 때에는 와인 한 병을 나누어 마시지 않고 각자 원하는 와인을 각각 한 병씩 마시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가 통하는 지점 하나는 맛이 꺾인 와인은 절대로 더 마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와인이더라도(사실 그리 비싸지도 않지만) 와인 맛이 꺾였다는 느낌이 오면, 바로 버립니다. 쓰레기 같은 와인을 먹고 취하는 것처럼 슬프고 불행한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우리 부부가 함께 주장하는 바이죠.


취향은 바꿀 수 없기에 가끔 서로가 그 취향을 트집 잡아 싸울 수도 있지만, 취향을 대하는 태도가 동일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헐뜯을 게 없네요. 오히려 취향을 대하는 태도가 같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후 산책 후 귀갓길에 동네에 새로 생긴 와인할인점에 들렀습니다. 남편과 나는 '사면 안 돼!'라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건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저희는 와인 3병을 껴안고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술은 나쁘지만 와인은 술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주는 훌륭한 도구인 것 같아. 와인 한잔을 옆에 두고 쓰면 글도 술술 잘 풀리지(오늘도 그러고 있지요)? 금요일 저녁 식사 때 가족과 함께하는 와인이 없다면 일주일을 어떻게 버티겠어?' 등 나름의 이유를 들어 와인구입에 지출한 카드값을 정당화합니다.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이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네 남편 은퇴했다며. 이제 외벌이네. 지출규모를 줄여야지. 그렇게 커피, 와인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야." 네, 맞습니다. 커피와 와인에 드는 비용은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하고 줄일 수 있는 지출항목입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저희 부부에게 주는 영혼의 풍요로움과 행복감을 생각하면 정말 불필요한 지출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향마저 못하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갑자기 뚝 끊을 용기도 없고요. 하지만 지출 수준을 줄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 가계운영에 타격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소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남편에게 와인 한잔을 따라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제 노트북 옆에 와인잔이 비었네요. 한 잔 더 마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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