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전환:시험준비를 하다가 성찰을 하게 되다니
금요일에 시험을 봤습니다. 토익, 토플, 자격증 시험 아니고요, 승진시험도 아니에요. 제가 다니는 회사의 박사특채로 입사한 전문직들은 10년 또는 5년에 한 번씩 채용시험을 다시 봐야 합니다. 박사학위자를 계약직으로 뽑기 때문이지요. 짐작하셨듯이 계약기간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10년이 지나면 공개채용시험을 봐야 하지요. 제도가 그러하니, 제가 일하는 연구원의 박사들은 5년이나 10년마다 마음을 졸이며 공채시험을 봅니다. 이번에 제 차례였구요.
까닥 잘못해서 시험에 떨어지면 짐을 싸야 합니다. 회사는 특수분야를 연구하는 국내에 단 하나뿐인 연구소이고 저는 그곳에서 18년 간 근무했기 때문에 그 어떤 학력과 경력으로 무장한 경쟁자가 오더라도 거뜬히 물리칠 자신이 있지요. 하지만 시험은 시험인지라, 아무리 독보적인 경쟁력이 있더라도 채용시험을 앞에 두고는 걱정이 안 될수가 없어요. '채용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잘못이 해서 큰 실수를 하거나, 정말 운이 없어서, 예컨대,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이 면접위원이 되어서 이상한 결정을 하면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이 되더라고요. 특수분야라서 유리한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다른 연구기관으로 이직하기가 쉽지 않아서 시험에 떨어지면 낭패를 겪겠구나 하는 불안감까지 생겼어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떨림과 압박의 시간을 견디며 면접을 마쳤고, 지금은 2주 후에 발표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험은 괴로웠지만 준비하면서 의외의 소득을 얻었습니다. 경력란을 채우기 위해 그간 했던 일을 정리해야 했는데, 그 과정은 강제로 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 일은 이렇게 하는 게 바람직했는데 실수였네, 요건 좀 더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지금 보니 아쉽네, 저건 안 하는 게 나았어'라는 반성과 성찰하게 된 거지요. '8년 전의 나는 여기에 관심이 있었구나, 오! 이거 내가 쓴 거 맞아? 글 좀 쓰는군, 맞다, 그때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 밤을 좀 새웠었지'라는 추억 소환은 덤이었고요. 성찰의 시간을 마칠 무렵에는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있는 성장한 나를 발견하여 뿌듯했고. 수고로움을 견디며 잘 버텨온 내가 장하고 기특해 보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면 더 잘 살아갈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시험을 본다는 건 민낯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민낯으로 밖에 잘못 나가면 꽤 아프죠. 8월 한창 뜨거운 여름날에 모자도 쓰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작렬하는 태양에 이마와 콧잔등이 벌겋게 익어버렸을 때의 따갑고 쓰린 느낌처럼요. 그래서 가능하면 시험과 마주치지 않길 바라지만, 크고 작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잖아요.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그 일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력을 정리하다 강제로 성찰을 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경력정리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 점이 성찰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생각을 조금 바꿔 의외의 소득을 얻은거라 할 수 있네요. 관점의 전환이 이렇게 중요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