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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Nov 26. 2022

어쩌면 모든 그리움의 이름은 단골

"단골"

  이따금씩 나의 단골 가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몇 년 전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ㄹ' 카페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 당시 살던 동네를 산책하다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노란 불빛의 건물과 창문에 붙여진 청록색 개구리 일러스트. 맘대로 '개구리 카페'라는 별명을 붙여버린 이곳은 사장님이 드립 커피를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전문점이다. 그가 유학생 시절 직접 해 먹었던 샌드위치 레시피도 선보이는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드는 상쾌한 예감. 아마도, 드디어, 여기로구나.



  그때는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던 해이기도 해서 무언가 일정한 작업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그리고 'ㄹ' 카페는 글쓰기 공간으로는 딱 맞음직한 장소였다.


  우선 적당히 후미진 곳에 위치한 데다 규모도 꽤 넉넉했기에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가장 컸다. 디자인 전공자 출신답게 사장님의 손때 묻은 소품들 예컨대 바스키아, 이중섭, 피카소의 그림 포스터와 디자인북으로 가득한 점도 퍽 마음에 들었다. 우드톤의 가구들은 통창 유리를 통해 들어온 햇빛에 반사되어 잘 구워진 빵처럼 은은하게 빛이 났고 공기는 커피향을 머금어 고소한 내음을 풍겼다. 벽면엔 종종 사장님 지인인 사진작가분을 통해 구매한 작품들이 새로이 걸리곤 했는데 간혹 어느 사진이 벽에 더 어울리는지 사장님이 넌지시 물어보면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하나를 추천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 드립 커피의 맛을 알게 된 곳도 여기다. 어떤 원두는 꽃 향기가 나고, 또 어떤 것은 과일의 산미가 느껴지며, 견과류와 초콜릿의 묵직함이 감도는 종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게다가 사장님의 무심한 듯 센스 있는 톤 앤 매너는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아 자주 찾기에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에드워드 호퍼, 카페테리아의 햇빛, 1958


  단골은 언제 탄생할까. 단골집이 생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든 단골의 시작에는 어떤 사연이 있으려나.


  이곳의 단골이 되리라 마음먹었던 처음 순간을 기억한다.


  아침부터 글을 쓰겠다고 부랴부랴 노트북과 짐을 싸들고 카페에 자리 잡은 어느 토요일 오전. 그날따라 글이 잘 풀리지 않아 멍하니 고개를 돌려 창문에 붙여진 개구리 스티커의 테두리를 눈으로 따라 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늘은 그저 시간만 죽이고 가려나 싶었던 그때 차분히 다가오는 그림자. 새로 들어온 원두로 내려봤는데 맛이 꽤 괜찮아서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말투와 태도로 사장님이 두고 간,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직감했다. 아 나는 여기 단골이 되고야 말겠구나. 단골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장면이랄까.


  이후 그곳에서 여러 맑은 날과 흐린 날, 덥고 습한 계절과 춥고 메마른 계절을 보냈다.


  어떤 날은 이슬아와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었고, 또 어떤 날은 팀 아이텔과 김환기에 관한 글을 썼다. 마음 맞는 이를 불러내어 수다를 떨기도 하고 언젠가는 그저 커피와 오이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 무작정 들리기도 했다. 단골집과 단골손님 사이에 존재하는 적당한 느슨함과 모호한 끈끈함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것이어서 철이 자성에 이끌리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향했다. 모든 기억이 다정하고 생생해서 지금도 개구리 일러스트가 붙여진 창을 지나 빈티지한 초록빛 대문을 힘껏 열면 익숙하고 친근한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지만. 그 카페는 작년 여름 훌쩍 문을 닫아버렸고, 그 도시를 떠난 나는 이제 새로운 곳에서 '한때 단골이었던 곳'을 추억하며 글로 흔적을 되짚고 있을 뿐이다.


  시인 김연덕의 에세이 『액체 상태의 사랑에는 '단골'을 주제로 쓰인 글이 있다. 그중 단골이 생기는 기분에 대한 아름다운 구절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어쩌면 모든 사랑의 이름은 단골. 한 군데에 내 계획이나 무게 중심보다 오래 머물게 되는 말과 몸, 모든 형태는 사랑. 그렇기에 카페나 와인 바, 식당이나 서점, 목욕탕과 운동장과 꽃집 외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습관들 역시 어떤 면에서 내 구석진 단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다 골라 읽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만 다 찾아 듣다가 어느 순간 읽기와 듣기를 멈추게 되는 순간들도, 단골의 시작, 단골의 소멸과 닿아 있는 부분 아닐까.  - 김연덕,『액체 상태의 사랑』, 84-85p


  '어쩌면 모든 사랑의 이름은 단골'이라니. 기가 막히게 절묘한 문장이 아닌가 싶어 절로 감탄이 나왔다. 자주 찾는 특정 장소뿐만 아니라 애정하는 책, 작가, 영화, 음악까지도 어쩌면 '단골스러운' 지점에 맞닿아있다는 게 너무나도 자명하다 여겨지면서도,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지라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몇 번이고 한참을 반복해서 읽었다. 나도 모르게 오래 머물게 되는, 무게 중심이 치우쳐진 어떤 공간과 대상과 존재들을 떠올려본다. 단골 카페 'ㄹ'과 'ㅇ'과 그리고 'ㄱ', 종종 시간을 보내는 어느 독립 책방, 10대와 20대, 30대를 함께한 영화들과 특정 감독의 작품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몇몇 작가의 책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살가운 얼굴들. 아마도 나는 그것들을 긴 시간 공들여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여기에 조심스레 덧붙여, '어쩌면 모든 그리움의 이름도 단골'이라고도 얘기하고 싶다. 언제고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된다는 건 어떤 공간을, 사람을, 대상을 '그리워한다'는 것과도 같을 테니까. 그것이 건네는 분위기와 그로 인해 건드려지는 어떤 감정과 기분에 자꾸만 압도당하고 싶어서, 기꺼이 단골로 삼고 단골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올해 초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를 오고는, 단골 같은 건 아마도 만들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낯선 공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익숙했던 장소를 향한 예견된 향수. 하지만 섣부른 막막함이 무색하리만큼, 지금은 제법 자랑할만한 단골집이 두세 개쯤 생겼다. 세상 일은 이렇듯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살면서 그리워지는 무언가가 늘어간다. 자주 곁에 두고 싶고, 눈과 마음과 손길과 발걸음이 자꾸만 찾게 되는 뚜렷한 단골의 흔적들이 나이테처럼 자리 잡는다. 그건 분명 좋은 징조일 것이다. 그만큼 지금, 여기를 충실하고 충만하게 만끽하고 있다는 증표일 테니까. 어떤 단골들은 아무런 사연 없이, 또는 어떤 이유로 홀연히 사라진다. 서서히 찾지 않게 되다가 결국 삶에서 멀어져 가버린다. 나쁜 징조는 아닐 거다. 때론 삶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게 불현듯, 어쩌면 우린 '단골의 시작과 단골의 소멸'의 사이에서 그리움을 붙잡아가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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