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프리랜서 Oct 13. 2021

#15 코로나 이후의 삶 EP.02

그 두 번째 변화. 원룸 월세에서 투룸 전세로 이사

코로나 이후 크게 바뀐 것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두 번째.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한 것.


세 번째.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직전 에피소드에서 풀어냈고

오늘은 그 두 번째.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014년 8월.


내가 프리랜서로서 첫 프로젝트를 의뢰받아 작업을 시작했던 시기다.

그로부터 약 반년 후인 이듬해 2월

우연한 기회로 사업자를 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프리랜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아무래도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일을 하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업무 관련 통화를 하는데 부엌에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들이라던지.. 새벽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부모님 눈치가 보이는 등.

서서히 작업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한 지 약 반년만에 작업실 겸 자취방을 구해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진 예산은 겨우 천만 원 조금 넘는 정도.


사실 첫 해의 수입의 대부분은 부모님을 드렸기 때문에

첫 만원이란 돈도 어렵게 모은 돈이었다.

그렇게 보증금 천만 원이란 예산을 잡고 방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전부터 홍대나 강남 등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살던 동네를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고자 논현동, 홍대, 합정동 등 다른 동네로 범위를 넓혀서

집들을 알아보았지만 뭔가 꼭 하나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이 넓으면 위치가 좀 별로라던지, 인테리어가 깔끔한데 집이 좁다던지..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은 예산이 안 맞고..


그런데 사실 동네 근처에 약 10년 전부터 오며 가며 봐왔던 그 지역에서 제일 큰 오피스텔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열심히 알아봐도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었기 때문에 일 단 한 번 보기나 해보자란 마음으로 그 오피스텔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망이며 채광이며 집 상태며 크기며.. 모든 것이 나무랄 데가 없었다.

정면으로 북한산이 보이는 정말 뷰 하나는 끝장나는 집이었다. 심지어 오피스텔 정문에서 열 발자국만 걸어가면 바로 지하철 4호선 쌍문역 2번 출구가 있었다.

이 오피스텔의 이름은 삼성쉐르빌 퍼스티.

6년동안의 작업 공간


실평수 약 10평 정도의 이 넓은 오피스텔의 계약금액은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55만 원, 하지만 난 사업자용으로 들어가기로 해서 부가세를 더해 총 60만 5천 원이란 돈을 월세로 내고 들어가게 되었다.

집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지만  60 원에 관리비까지 달마다 15~20  정도가 기본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매달 80  정도의 고정지출이 발생하는  감당해야 했지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충분히 감당 가능할  같았다.

정 안되면 다른 걸 아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5년 4월.


독립을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그 집과 함께 6년이라는 꽤 긴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여러모로 나에게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집이었다.


그러던 중 2020년 초 코로나가 창궐했다.


코로나와 집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론 사람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조금 특별하다.

코로나가 터진 덕분에 월세를 탈출하고 전세로, 그것도 투룸으로 이사를 했으니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싶을 테니 바로 설명 들어가겠다.


이전 에피소드를 쭈욱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프리랜서 시작 후 사업소득이 늘어났지만 한참 동안 부모님의 빚 갚는데 쓰이는 돈의 비중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돈이 모일리는 만무하고 몇 년 후 서서히 집으로 들어가는

돈의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보상심리가 작용한 건지 해외여행에 맛을 들리면서 무지하게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오늘만 사는 욜로와 같은 이미지로 비쳤다.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다.


돈을 굳이 모으지 않아도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월세로 나가는 돈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고 버는 족족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여행 가고 싶으면 여행을 갔다.

일하는 환경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 더 이사에 대한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을 거다.


한 마디로 현재에 안주하며 살았던 것.


그런데 코로나가 창궐하고 자연스레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고 참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을 넓혀가거나,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한 친구가 방 3개짜리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집들이에 초대했다.

이 넓고 깨끗한 곳에 혼자 산다니.. 처음에는 그냥 조금 부러운 정도였다.


그렇게 집들이에서 재밌게 잘 놀고 집에 왔는데… 좋아서 6년 동안이나 살고 있던 내 원룸 오피스텔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 여태 뭘 하고 산 거지?


남들은 열심히 일해서 저렇게 발전해가는 동안에 여행이나 다니며 너무 생각 없이 살았던 건 아닐까?

갑자기 지난날이 후회가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도 들었고 뒤쳐졌단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혼자 방 안에서 혼술을 하며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다.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제 원룸보다는 투 룸에서 살고 싶었고 침실과 작업실이 분리된 공간이 갖고 싶어졌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인해 살면서 빚(대출)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마음먹은 나였지만 전세로 가기 위해서 대출은 필수였다. 결국 대출 없이 이사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신념과 가치관을 뒤집어엎었다.


그렇게 억대의 돈을 대출받기로 했다.


이사 가기로 확실하게 마음먹은 게 2020년 9월.


그로부터 약 한 달간 지역 상관하지 않고 서울권 안에서 내가 정해놓은 예산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인터넷 부동산을 통해 매일같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월세 구할 때도 힘들었는데 전세는 훨씬 더 어려웠다.

대출도 알아봐야 했고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대출상담사가 있었는데 혹시 사기는 아닐까 온갖 걱정을 다 해 가며 집을 알아봤다.


거기다 예산도 맞춰야 하고 지역이 넓어지니 봐야 할 집들은 많아졌고 집에 융자는 없는지. 전세대출이 가능한 집인지 확인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심지어 현재 사는 집 근처 부동산 5군데를 직접 발품도 팔아봤지만 하나같이 전세매물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어느 날처럼 새벽에 네이버 부동산을 뒤적이는데..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설명 중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단어가 있었으니..


뷰 좋음.


솔직히 가진 예산안에서 서울권에 투 룸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은커녕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가 최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보던 뷰는 기대하기 힘들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산이 정면으로 보이던 집에서 살다가 앞이 막힌 집으로는 도저히 가고 싶지 않아서 뷰까지는 아니어도 앞이 그래도 막히지는 않은 곳을 위주로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투 룸 빌라인데 뷰 좋음이라니..

사진도 몇 장 올라와 있었는데 지어진지 약 2년 정도밖에 안된 거의 신축이어서 깔끔했다.


바로 다음날 부동산에 전화해서 집을 보러 갔고 역시 설명대로 뷰가 꽤 괜찮았다. 사실 빌라인데 뷰가 좋은 이유는.. 예상하시다시피.. 집이 꽤 언덕 위에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매일 출근하는 사람도 아니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 상태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가계약금을 걸었고


그렇게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직접한 셀프 페인팅




한 번 하고자 하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다 보니

결국 마음먹은 지 약 한 달만에 원하는 조건의 집을 구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 무사히 입주를 했다.

살던 곳은 계약기간이 남아있었지만 다행히 이사날짜에 맞춰 새 세입자가 들어오게 되어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처리되었다.


물론 가구며 이사 쓰레기, 이삿짐업체 구하기 등 정말 남은 한 달 동안 기사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크긴 했지만..

생애 첫 전세라니. 그것도 방 2개로.

뭔가 인생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 같아서 스스로가 너무 대견스러웠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느낀 점은

역시 사람은 다양한 환경의 사람을 만나봐야 할 것

마음먹었을 때 행동에 옮길 것.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


그리고.. 타이밍


만일 코로나가 터지지 않아서 이전처럼 계속 여행을 다녔더라면.

내가 그 친구의 집들이를 가지 않았더라면.

적당히 알아보다 집 알아보기를 포기해버렸더라면.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이사를 가라고 등을 떠밀기라도 하듯이 비슷한 타이밍에 일어났고 결국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알아본 덕분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작은 월세였고

두 번째는 월세에서 전세로

이제 다음 목표는 내 집 마련이다.


전국의 모든 무주택자들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14 코로나 이후의 삶 Ep.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