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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May 14. 2024

나를 위한 아침식사

인생이란 아침식사에 담긴 정성의 문제

아침에 두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집안에는 기분 좋은 적막이 흐른다. 이 적막은 달콤하고 황홀하다. 특히 정신없는 주말을 보내고 난 후의 월요일 아침은 더욱 그렇다. 결혼 후 가장 간절히 바란 것은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그 단어들은 절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기도 하는 양가적인 단어다. 자유가 모두 박탈당하는 육아 기간에는 격렬하게 혼자가 되고 싶어진다. 제발 외로워지고 싶다고 울부짖게 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엔 정말 힘들었다. 남편은 주말 출근으로 밤 10시가 되어 들어오고, 시댁도 친정도 없어 어디 갈 때도 도움 청할 때도 없이 혼자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하루는 억겁의 시간 같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이제 아이들은 커서 학교에 다니고 웬만한 일들은 엄마 손 없이 해내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에겐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노력이 하나 있다. 지금을 절대로 당연하게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분명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간절히 바랐던 순간을 누리고 있다. 지금 내가 절대적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그때의 내가 억울해할 일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지금을 행복하다고 느끼기가 어렵다. 과거의 나를 위해 나는 절대로 지금에 적응하지 않고 계속 행복할 예정이다.




조용한 아침의 적막을 즐기며 청소한다. 창문도 활짝 열어 밤새 갇혀있던 공기에도 자유를 준다. 가득 찬 빨래통을 세탁기에 비워놓고 나면 마음도 비워지는 기분이 든다. 가족들 아침 먹은 그릇까지 정리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샤워를 한다. 몸과 마음 모두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새롭게 태어나 외출복으로 갈아입고서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냉장고 앞이다. 양배추, 당근, 파프리카, 사과, 오이. 냉장고에 있는 기본 채소와 과일을 꺼낸다. 포크로 떠먹기 좋게 채를 썰어서 드레싱과 함께 모두 섞는다. 빨강, 노랑, 초록. 알록달록 예쁜 과채들이 담긴 접시를 보면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산뜻해진다. 거기에 때에 따라 구운 계란이나 낫또를 곁들인다. 그렇게 하면 환상적인 한 그릇 아침이 완성된다.


오늘 아침은 특별히 더 맛있었다. 배경으로 택한 재즈 음악과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살이 맛에 한몫 더했다. 조용히 혼자 먹는 나만의 아침 식사. 내가 나를 위해 선택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건강한 음식이라서 더욱 맛있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감정이 많이 작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어떤 마음으로 먹는 건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다른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작가인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스함의 문제"라고 했는데, 나에게 인생이란 나를 위해 준비한 아침식사가 주는 정성의 문제다. 하루의 시작은 그날의 좌표가 된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나와 함께 맞이하는 정갈한 아침은 언제나 나를 행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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