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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l 09. 2024

혼자만의 일주일이 생긴다면

빼앗긴 세 가지 자유를 되찾으러 가야지

엄마가 됨과 동시에 하늘은 세 가지 자유를 빼앗아 간다. 그건 바로 먹고, 자고, 노는 것에 대한 자유.

 엄마가 되면 그 세 가지 자유가 사라진다.


원초적인 자유 박탈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원초적인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일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신생아 땐 수유 때문에 음식 선택의 자유가 사라진다.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니 먹고 싶은 시간에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다.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것도 곤욕이지만, 더 싫은 건 먹고 싶지 않은 때에 먹어야 하는 것이다. 욕구와 걸맞지 않은 때에 먹는 음식이란 생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애들이랑 먹어야 하니 또 억지로 먹는다. 아이들은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 들숨과 날숨의 적절한 조절과 리듬은 안정감을 제공한다. 예측할 수 있는 일상생활은 심신을 편안하게 함은 물론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그러다 보니 삼시 세 끼를 제때 먹어야 한다. 음식 냄새 맡기도 싫고 부엌에 들어가기도 싫을 때 밥을 해야 한다는 건 최악이다. 먹는 것도 모방을 통해 배우게 되므로 교육상 함께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마음으로 먹는지, 어떤 태도로 먹는지는 모두 배움이 된다.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안 먹지 못하는 삶. 먹는 자유의 박탈은 음식 자체에 대한 마음을 잃게 만들고 그저 배를 채울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것을 능가하는 자유의 박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잠'이다. 아마 부모들이 공통으로 경험한 고통 중 가장 큰 것이 마음대로 자지 못하는 삶일 것이다. 신생아의 식사는 밤에도 이어진다. 배가 고프지 않고 엉덩이가 보송한데도 밤만 되면 누가 잡으러 오는 것처럼 울어댔다. 앉아서 재우고, 서서 재우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우울증이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잠만 마음 편히 자도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지금은 애들이 많이 커서 새벽에 깨는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은 초등학생들이라 일찍 재워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다 함께 9시 조기 취침이다. 기상에도 자유는 없다. 어쨌든 애들 학교를 보내야 하니 아무리 더 자고 싶어도 등교 시간보다 늦게 일어날 수는 없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은 크나큰 자유다.




마지막으로 강탈당한 자유는 놀 권리다. 마음대로 놀 수 없다. 놀아주는 놀잇감이 되거나, 지켜주는 보안관이 되어야 한다. 결혼 전에는 통금시간도 없었는데 지금은 오후 2시에는 집에 돌아와야 하는 신데렐라 신세다. 하루 이틀 정도는 신랑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아이들끼리 있게 해도 되겠지만, 원하는 건 마음의 걸림 없는 자유다. 돌봐야 하고 챙겨야 하는 존재들이 버젓이 눈 뜨고 있는 상태에서의 바깥 놀이는 어차피 정신을 놓을 수 없다. 귀가할지 말지 결정하는 자유 따위는 내게 없는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깊어지면 연애 때처럼 신랑과 둘만 나가서 여름밤 맥주도 즐기고 싶건만 그것도 아직은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다.


빼앗긴 세 가지 자유. 만약 나에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일주일의 시간이 있다면 정말 미친 듯이 자유롭게 먹고, 자고, 놀 것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오직 본능과 직관만으로. 내 영혼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무엇이든 해도 되는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특별한 곳으로 떠나거나 거창한 게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내겐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난 원초적 자유만 있으면 될 뿐이다. 남은 십 년. 자유를 박탈당한 나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갈 것이다. 십 년 뒤 나는 소원을 이루고 무계획인간의 끝판왕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일주일을 만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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