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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l 19. 2024

살아온 이력의 굳은살

나의 굳은살은 삶을 걸어온 시간들이겠죠.

"에고, 예뻐라."

차를 타고 가다 창밖에 보이는 여고생들을 보며 말이 입을 타고 저절로 흘러나왔다. 길을 지나다 어린 학생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자체로 빛이 나서. 어릴 땐 그게 복인 줄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예쁠 때였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몸도 변한다. 탱탱한 살들이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탄력을 잃고 나서야 당연한 게 아닌 줄 알았다. 세월도 흐르고 몸도 흐른다. 얼굴도 쳐지고, 엉덩이는 넓적해진다. 하지만 가장 걸리는 건 뒤꿈치의 굳은살이다. 삶을 걸어 낸 만큼 발의 굳은살도 자꾸 단단해졌다.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굳은살이 느껴질 때마다 싫었다. 마음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싶지만, 머리는 젊었던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엄마 아빠 두 분다 살찌는 체질이 아니셨다. (나는 누굴 닮은 건가) 과하게 몸매가 망가지는 스타일들이 아니셔서 그랬는지 나이를 드셔도 부모님의 추함은 보기 힘들었다. 아빠는 깔끔한 성격이었고, 엄마는 꾸미는 걸 좋아하셨다. 그런데 그런 부모님 두 분의 모습 중에 딱 한 가지 내 눈에 걸리는 모습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발뒤꿈치였다. 


가뭄에 땅 갈라지듯 흉물스럽게 변해있는 뒤꿈치를 볼 때면 미간에 주름이 졌다. 신체의 일부임에도 제 기능을 못 한 채 사람을 귀찮게 구는 불필요한 퇴물 같았다. 아빠는 쉰이 넘어가자 급기야 발의 굳은살을 커터 칼로 도려내는 작업을 하셨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끔찍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제 살을 도려내는 그 모습에 주인은 느끼지 않는 고통을 나 혼자 상상 속에서 느껴야 했다. 




아빠는 임종 한 달 전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셨다. 분명 처음 들어갔을 땐 말은 잘 못해도 우리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는데 섬망이 심해지자, 소통의 끈은 매정히 절단되었다. 결국 눈만 껌뻑거리거나 그마저도 볼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가 숨만 쉬셨다. 병동에는 자원봉사 어르신들이 계셨다. 아빠의 부모뻘 되는 연세임에도 매일 들러 아빠를 씻기고 돌봐주셨다. 의식도 없는 아빠의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닦아 주셨다. 그때의 감사함은 잊을 수가 없다.


얼마 안 있어 아빠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병실을 정리하는데 어르신께서 오셔서 위로를 전했다. 

"천국에 가서 행복하실 겁니다. 어휴, 굳은살을 마저 정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굳은살 따위가 뭐라고 그걸 아쉬워하실까. 어차피 아빠의 몸은 며칠 뒤 곧장 사라질 텐데 어떻게 그걸 안타까워하실 수 있을까. 내가 살아온 세월의 값으로는 그 뜻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곧 눈물이 핑 돌았다. 삶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굳은살마저 소중히 여겨진 것 같아서, 아빠의 전부를 귀하게 여겨주신 것 같아서. 살아계실 때 발의 굳은살을 열심히 떼어냈던 아빠였기에 분명 행복했을 것 같다. 비록 언어로 표현하지는 못하셨지만 분명 마음으로는 좋아하셨을 것이다. 




중력을 이겨내며 나의 육중한 몸을 떠받치고 있는 발. 수많은 마찰과 압력을 받으며 학대당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아래에 있기에 가장 먼저 조용히 죽어간다. 막으려고 해도 거스를 수가 없다. 해가 갈수록 굳은살은 더 딱딱해지고 있다. 부모님의 발에서 보았던 그 굳은살을 내 발에서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무섭게 단단해져 갈라진 굳은살은 이젠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리로 그리고 온몸과 동조하여 걷는 시간 보다 누워있는 날들이 길어질 것이다. 향하는 시간보다 쉬어가는 시간이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영혼의 걸음을 영원히 멈출 것이다. 살아낸 흔적의 증거이며, 생과 멀어지는 표식인 애증의 굳은살을 오늘도 조용히 매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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