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생일 선물

아내에게 받고 싶은 생일 선물

by 밝음

신랑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했다. 일단 편지는 필수다. 연애 4년, 결혼 11년을 보내며 매년 빼 먹지 않고 챙겨준 생일 선물은 편지였다. 다른 선물을 못 해주더라도, 하물며 미역국을 못 먹는다 하더라도 편지는 빠트리지 않았다. 평소 하지 못했던 쑥스러운 말들도 편지지 위에서는 자연스러웠다. 사는 데에 급급해서 평소에는 전하지 못하는 말들이 참 많다. 편지는 그 마음들의 고백이자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는 이정표이기도 했다.


일단 편지는 준비하기로 하고 그다음이 문제였다. 좋아하는 음식들로 생일상을 차려준 날도 있었다.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을 사서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올해는 뭔가 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신랑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생일자 맞춤 선물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신랑은 평소에 가족들에게 잘 맞추는 성격이다. 뭐 먹고 싶냐는 질문에 늘 한결같이 ‘아무거나’라고 대답해서 별명이 ‘아무거나 씨’다. 이번 생일에는 ‘아무거나 씨’를 ‘이것저것 씨’로 바꿔주고 싶었다.


“여보, 이번 생일에는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다 당신 마음대로 정해. 나는 군말 안 하고 무조건 당신을 위해 동행하고 당신한테 맞출게.”

“응? 너무 어려운데…….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냥 아무거나 하면 돼. 그리고 생일 굳이 안 챙겨도 돼”

“아니 자유가 열렸는데 왜 누리지를 못하는 거야? 그동안 애들 키우면서 당신도 마음대로 못 한 거 많잖아. 생일이니까 왕 놀이라고 생각해 봐.”

“아, 뭐 그렇긴 하지만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이런 걸 생각해 본 게 오래돼서”


신랑은 며칠 내내 고민했고 대망의 생일날이 다가왔다. 대체 어떤 데이트를 원할지 궁금했다. 뭔가 좋은 걸 사달라고 할까? 엄청 맛있는 음식 코스를 대접받고 싶다고 할까? 어떤 것이든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건 그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게 하는 거니까.


신랑은 생뚱맞은 선물을 요구했다. 그건 바로 ‘만화방 데이트’

그렇게 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 만화방이라는 곳을 가보게 되었다. 낯설지만 신기했다. 만화라는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와 걸맞게 소파도 있고 칸막이가 있는 단독 좌석도 있었다. 밥이나 간식이 될 만한 메뉴들도 있었다. 우리는 짜장라면 하나와 과자도 함께 시켜 먹었다. 배도 두둑하고 편하게 앉아서 재미있는 만화책을 들춰보고 있자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신랑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시간 내내 미소를 머금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신랑을 보고 있자니 부부라도 그 사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참 많구나 싶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그동안 한 번도 만화방 가자는 이야기를 안 했어?”

“당신은 만화방 안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지. 당신이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가자고 그러겠어.”

그 순간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밀려왔다.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그동안 많이 받으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신랑의 사랑을 눈치챌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있어 준다는 게 큰 선물이라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만화방 생일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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