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을 만드는 나는 누구인가?
MBTI검사가 이 정도로 대유행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강사과정을 들을걸. 다 지나서 아쉬움을 가져보지만 어차피 나는 진실을 안다. 내가 원한 건 남들의 성격유형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내 성격을 아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15년 전 처음 MBTI를 만났다. 검사지에 직접 체크해서 나온 나의 첫 유형은 ISTJ였다. 나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검사지에 경이로웠다. 완전 나였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한 나라는 사람이 가진 부분들을 검사지가 공감해 주는 기분이었다.
MBTI를 접한 뒤로도 에니어그램, DISC, 휴먼디자인 등 다양한 검사 도구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나를 나타내주고 내 특성을 구체화해놓은 것 같은 결과지들을 보물자료처럼 보관했다. 다양한 심리검사나 성격유형검사들이 있었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나에 대해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나라는 한 인간, 인간이라는 큰 우주는 그 어떤 검사로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처음 ISTJ였던 나의 MBTI는 그 뒤로 ISFJ가 되었다가 INFJ가 되었고, INFP로 마침표를 찍었다. (마침표가 찍힌 이유는 더 이상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리는 나의 정체성이었다. 그때의 내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내가 그때의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검사는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격검사가 가능한 전파를 몸에다 꽂는 것도 아니고 질문지 몇 가지로 나를 파악할 수는 없다. 사람은 매 순간 바뀌고 있다. 어떤 사건을 맞거나 계기를 통해 스스로를 바꿔낸다.
나의 MBTI는 한결같을 수 없었다. 직장에 다닐 때와 다니지 않을 때가 달랐고 마음이 평온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도 달랐다. 집에서 엄마가 되면 ESFJ가 되었고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땐 ENTP가 되었다. 그 어떤 것도 내가 될 수 없었고 그 어떤 것도 내가 될 수 있었다. MBTI는 지금의 나를 표면적으로 나타내 줄 뿐이고 그러한 경향성을 현재 가지고 있다는 표식일 뿐이다.
한 사람을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절대 단언해서 설명할 수 없다. 너무 다양한 것들을 지니고 있는 게 사람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사람이다. 그렇다면 대체 나에 대한 이해는 무엇으로 한다는 말인가?
MBTI보다 더 나에게 신임을 주었던 건 바로 글쓰기다. 매일 주저리주저리 목적 없이 쓰는 글들이 나를 나타내주었다. 글을 쓰고 나면 현재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욕구를 가졌고 어떤 두려움을 가졌는지 그래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모두 글 속에 있었다. 매 순간 쉼 없이 돌아가는 생각을 관찰하는 일은 어렵다. 그런데 내가 가진 생각을 그대로 글로 쓰다 보면 형체가 없던 생각이 글이라는 물성을 갖는다. 내 생각을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버크만 검사, 갤럽강점 검사 등 여전히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검사도구들이 나온다. 더 전문적으로 심리상태를 점검하는 MMPI나 TIC검사 같은 것들까지 합치면 수두룩하다.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인지 어떤 유형을 지녔는지 알아보거나 당장 해결이 필요한 심리상태의 개선을 위해서는 분명 검사도구들이 유용한 것이 사실이다. 한 인간을 이해하려면 평생을 함께 해도 어려운데 도구들을 이용해서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분명 이용가치가 있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는 스스로 해나갈 때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한순간에 파고듦으로 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로 태어나 나로 죽는 그날까지 평생 나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 이 유일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나로 살아가는 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MBTI 같은 성격유형검사도구를 기웃거린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나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